생활/문화 > 책 / 등록일 : 2014-01-16 15:32:09 / 공유일 : 2014-03-07 19:00:15
찻잔에 고인 하늘
repoter : 안무월 ( dsb@hanmail.net )

그곳에 가면 나무처럼 사는 친구가 있다. 산골 깊숙한 마을에 칩거하면서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흉내를 내다가 잦아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하늘과 땅과 
찻잔에 고인 하늘 
안재진 시집 / 우리책 刊

  숲들과 어울려 풍류를 즐기는 그런 삶이다. 눈비가 내리면 묵묵히 젖어있고 햇볕이 두터우면 꽃처럼 활짝 웃다가 된서리가 내리면 나뭇잎이 떨어지듯 마음을 비우고 우주 밖의 우주를 읽는 자세로 이치를 묵언하는 그런 자세가 나무를 닮았다는 것이다.
  어느 한가한 날, 그는 느닷없이 하늘과 땅, 바람과 계절, 산과 바다와 들녘과 시냇물이 더 할 수 없는 지고의 예술인데 어쩌자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며 가슴앓이를 하는지 모를 일이라 했다. 물론 나를 향해 꼬집어 한 말은 아니다. 몇몇 사람이 모여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불쑥 뱉은 말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으며 오늘까지도 울림처럼 귓전을 맴도는 충격에 젖어있다. 마치 마술사의 손끝에서 이상한 변화가 풀어지듯 세상을 속이고 자연과 우주를 희롱하며 살았다는 깊은 자괴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온 습성 때문인지 차마 온전히 가슴을 털지 못하고 낙서처럼 적어 둔 낡은 수첩을 뒤적이다 눈에 뜨인 것들을 정리한 것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놈의 허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렇듯 또 한 번 나를 괴롭히며 부끄럽게 책으로 엮는 우매를 범하는지 모르겠다.
안재진, 책머리글 <自序> 중에서

  안재진 시인의 시는 작품의 주체인 ‘나’에 대한 자아 인식이 삶의 명상을 통해 드러나는 특징을 보여준다. 작품의 주체란 얀 무카 로브스키의 지적대로 발화인 문학작품을 전개시키고 또 작품에 담겨져 있는 모든 감정과 사상을 가장 본질적으로 전달해주는 것으로 지각되는 ‘나’다. 따라서 안재진 시인의 이러한시적 특징은 “어느 사이 / 칠십여 년 살다 보니/ 나는 내가 아님을 알았다/ 바람이 땅끝을 흔드는/ 서늘한 풀밭 어귀에서/ 수 없이 작별하는 가운데/ 나도 가을이 되어 있었다”(「나도 가을이 되어 있었다』)고 고백할 만큼 세계와 현실에 대한 태도나 감정의 표현, 나아가 시의 정신적 깊이까지도 남다른 데가 있어 보이는 것 같다.
허형만(시인, 목포대 교수), 해설 <삶의 명상과정신적 깊이> 중에서


     - 차    례 -

시인의 말 

제1부
그대여 
방 안에 산 하나 들여놓고 
거울을 보노라면 
그래도 할 말이 남아 
골목길 
들녘의 소리 
너와 나의 빈틈 
내 길 하나 열었으면 
가장 낮은 곳으로 
침묵의 언어 
송포역 
소주를 마시며 
사람은 아픈 것이다 
산길을 걷다 

제2부
길이 없어도 별은 빛나고 
오월에 
회상 
먼 이야기 
갯마을 풍경 
오늘 밤은 
등나무
허무•1 
허무•2 
찻잔에 고인 하늘 
우리들의 길바닥 
외딴집 
아무도 모른다 
사람이 흐른다 
산골 마을 골목길 

제3부
창세의 침묵 
하늘을 마신다 
저녁 바다 
운명 
연꽃과 나비 
안개는 걷히지 않는다 
산다는 건 
부활의 빛이여 
바람이 되었다 
들판을 거닐면서 
서울역 
뒷골목 
노귀재 단풍 
내 마음 산등에 기대어 
나는 가을이 되어 있었다 

제4부
뒷모습 
길은 어디에도 있다 
봉승아 
벚꽃
꽃밭
민들레 
구룡산 이팝꽃 
개나리 
작약꽃 
시를 쓴다는 게 
겨울 들녘에서 
가을 변주 
겨울밤 
눈 내린 아침 
어느 겨울날의 묵상 
독도는 

제5부 
그 바닷가 
그날처럼 보이는 게 없다 
하늘 구멍 
내 안의 눈물 같은 
까치집 
공사장 식당 풍경 
벚꽃 길에서 
봄을 기다리며 
신발 닦는 청년 
타인의 옷 
담쟁이 
산마을에 아침이 열리다 
목각인형 
우물 속에서 울리는 소리 
나뭇잎은 그 길을 알아 

해설 | 삶의 명상과 정신적 깊이_허형만

[2013.09.30 초판발행. 142쪽. 정가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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