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 책 / 등록일 : 2014-01-16 15:05:42 / 공유일 : 2014-03-07 19:00:15
꽃을 솎는 저녁
repoter : 안무월 ( dsb@hanmail.net )


꽃을 솎는 저녁 
이혜숙 수필집 / 소소리 刊

  기억에서 사라진 날들은 어디에 남아 있을까.
  어제, 한 달 전, 일 년 전, 십 년 전, 그보다 더 오래전…. 참으로 많은 시간들이 지났다. 그날 그때는 내 것인 게 분명했던 생각과 행동들이 큰 조각, 작은 조각으로 남거나 먼지처럼 부유하며 시나브로 잊혀졌다. 지금 이 시간도 그렇게 얼마 후엔 잊힐 것이다.
  살아온 자취는, 그때 두고 온 것이라 생각했었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처럼 점점 멀어지며 저 뒤에 남았거나 지워졌을 것이라고.
  그런데 책을 준비하면서 과거의 발자국이 지워지지 않고 지금까지 같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 발자국 따라 온 발걸음은 경쾌하기도 했고 흔들리기도 했고 때로는 한참을 멈추어 있다가 이어지기도 했다.
  잠시 멈추었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좀 길었다. 내가 쓰는 것이 무익한 것이라는 생각에 쓰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뜨거운 것이 목구멍에 가득 차 토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이 절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쓰지 않는 시간이 편하지도 않았다.이제는 수필 쓰는 일이 즐겁다거나 행복한 일이라는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수필이 ‘치유의 문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고맙다. 떠오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말 생각을 활자의 그물로 건져 올리고 그것을 손질하는 동안 외롭고 불안했던, 춥고 허기졌던, 슬프고 막막했던 감정들이 잦아들었던 것이 소중하다.
  한 문장이라도 당신의 시린 손을 감싸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나는 이제 겨우 내 언 손이 조금씩 녹는 중이다. 한 문장이라도 당신의 답답한 속을 풀어줄 청량제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이제 겨우 한숨을 돌리는 중이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물에 만 밥 같은 것을 내놓아 몹시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래도 숟가락을 들어주는 당신이 있어 다시 용기를 낸다.
  세상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한 축복인가. 내게 당신이 그 누군가이듯, 당신에게도 내가 그럴 수만 있다면,
  참. 좋. 겠.다.
이혜숙, 책머리글 <책을 내면서> 중에서


      - 차    례 -

1
겨울나무 
매화 
목련나무 아래에서
여름 나비 
꽃을 솎는 저녁
찔레꽃 
풍경 소리는 어디서나 들린다 
사라지는 것들 
날아라, 새 
나비와 트럭 

2
다시 쓰는 '양치기 소녀' 
지금도 쓰고 있는 '인어공주' 
신발 일일야화

3
남자의 특별한 시력 
수탉 
친절한 컴퓨터 
춤바람 난 여자 
매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손 
가을에야 봄을 보다 
살아야 할 이유 
병은 무엇으로 고치나 
던진 돌은 어디로 갔을까 
글방 아이들 
무사 귀환 보고합니다 
간고등어 한 손의 전설 
주인 
내게 없는 '사흘 동안' 
아이가 울고 있다 
꿈과 기억 사이 
노래가 따라 왔네

4
가을 애호박 
무드 잡으러 간다 
아들의 첫 여자 친구 
착한 엄마 되기 힘들어 
그것과 산다 
아들 사러 가는 길 
벌이 된 무지개 
큰누나
나의 '집으로' 
낙타 유정 
감옥

5
붉은 카네이션의 기억 
은행나무 그림자 
눈동자 
금곡에 남은 아이 
시인이 너무 많았다 
등 뒤의 따뜻한 손

[2013.11.30 초판발행. 251쪽. 정가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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