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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사회일반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프랑스의 중심 수도 파리에 있는 지하철의 내부 플랫폼 승강장 사람들의 소리와 지하철의 이동 소리만 들려야 할 이곳에 별안간 한 외국인 남성의 엄청난 괴성이 플랫폼 전체에 울려 퍼지며 무언가 심각한 일이 발생한 것을 암시하는 듯 두렵기까지 했어요.   파리 지하철의 역무원은 그러한 비명을 따라 남자를 찾았지만 이미 해당 남성은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에 몸이 빠져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역무원은 급작스러운 상황에 공황 상태에 빠져버린 채 주위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지만 바로 직전 승강장의 인원들은 전부 떠나 버렸기에 근처의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데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한 한국인 남성이 ‘아임 코리안’ 단어를 외치며 기관사의 운전석 쪽으로 달려가 절대 출발하지 말라는 경고를 남긴 뒤 자신의 휴대폰을 이용해 몸이 끼어버린 외국인 남성을 촬영하고 어딘가로 급하게 전화를 거는데 1초가 급박한 순간 너무나 당황한 채 그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파리 지하철의 역무원은 곧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갑자기 엄청난 눈물을 흘리며 한국인 남성의 바지를 붙잡고 기도를 하는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과연 지하철의 몸이 끼어버린 프랑스 남성과 곧이어 달려온 한국인 남성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저는 지금 프랑스의 수도 피리에서 사는 서른 살 청년 레지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잃을 뻔했던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이기에 사실상 저는 제 주위 시험들에 제의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하고 다니며 사고를 겪기 전에 인생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아무런 꿈과 목적의식도 없이 살아오던 저였지만 정말 하루아침에 아무런 이유 없이 내가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그때의 사고는 제 인생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제 가치관과 생각마저 송두리째 바꿔 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저는 지금 그때의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를 하늘이 준 마지막 기회로 생각하고 정말 미친듯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나 제가 그때 겪었던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는 한 한국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저는 지금 1년 안에 제가 태어난 나라 프랑스를 떠나 한국에서 정착해 살아가기 위한 저의 최종 인생 목표를 준비하고 있는 상태인데요.   그날에 우연한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주위에서는 혼이 볼 수 없는 지하철을 광적으로 사랑하는 특이한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뚜렷한 직업도 없었고 돈을 벌 생각도 없 던 상태로 저는 그저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지하철을 경험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만 가진 채 제가 살고 있던 파리의 지하철은 물론 근처에 존재하는 나라들의 지하철까지 어느 시기에 개통하고 어떤 기술로 운행되고 있는지 전부 외우고 있을 만큼 정말 지하철이라는 특이한 이동수단에 푹 빠져버린 지하철에 미친 사람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나 이러한 저의 지하철 사랑에 더욱 큰 불씨를 댕겨 버린 것은 바로 한국이라는 나라였는데 아무래도 여러 나라들의 지하철을 경험하고 눈으로 보아온 저로서는 처음 마주하게 된 한국의 지하철 시스템이 지금껏 제가 겪어오고 알아 오던 다른 나라들의 지하철과 정말 차원이 다르다는 수준의 말이 나올 정도로 조용히 이동하는 신기술은 물론 지하철 내부와 외부의 플랫폼까지 말도 안 되는 청결함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점점 한국의 지하철 시스템과 한국의 그 아름다운 지하철이 가진 미래 도시적인 외모에 더욱 빠져들어만 같습니다.   한국의 지하철을 알기 직전까지만 해도 저에게는 아무래도 제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인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이 제 마음속 순이었지만 한국의 지하철을 알고 난 뒤부터는 파리에 존재하는 모든 지하철이 한국의 지하철에 비해 심각하게 더러워 보이고 기술적으로도 뒤처지는 것을 매우 현실적으로 마주하게 되어 기 때문에 저는 어느 생각부터 다른 나라의 지하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 오직 한국의 지하철만 사랑하는 매우 이상한 취미와 집착으로 번져 나가게 되었죠.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국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저와 같은 지하철을 너무나 사랑하는 특이한 한국인 친구들을 매우 많이 사귀게 되었는데요.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는 서울의 한 지하철 승강장에서 무려 3시간이 넘는 시간을 그저 묵묵히 지하철 의자에 앉아 지하철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구경하거나 지하철이 잠깐 정차하게 되었을 때 지하철의 사진을 계속해서 찍고 지하철 외부의 디자인을 조용히 관람하는 행복한 시간을 자주 보냈었는데 한 한국인이 그러한 저의 모습을 보더니, 자신처럼 지하철을 좋아하는 취미를 가진 사람이냐면서 말을 걸어왔고 그렇게 저와 한국인 친구인 김은 매우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죠.   특히 프랑스에 계시는 부모님께서는 아무런 직업도 없이 그저 지하철에 미쳐 있는 저를 보면서 앞으로 직업을 가질 생각 자체는 있는 것이냐는 잔소리와 이럴 거라면 당장 가족과의 연을 끊자고 저를 압박하기 때문에 저는 정말 처음 느껴보는 저와 똑같은 취미를 가진 한국인 친구인 킴과 보내는 자유로운 시간에 무한한 행복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인 친구인 킴에게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화되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특이한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었는데 저는 그저 킴이 상당한 패션 감각을 가진 실험이라고 생각하고 벌로 대수롭지않게 생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저를 처음 본 그날 킴과 저는 한국의 한 식당에 밥을 먹으러 들어가게 되었고 곧이어 선글라스를 벗은 그의 얼굴을 보고 저는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킴의 눈 한쪽은 보통의 사람들과 똑같은 눈이 존재해야 될 자리에 눈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시실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던 상태였죠. 저는 속으로는 매우 놀랐지만 곧이어 저의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먼저 자기 눈에 관해 설명해 준 킴의 말에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도 저처럼 지하철을 너무나 좋아해서 다른 나라의 지하철을 경험하기 위해 한번은 미국으로 여행을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얼굴과 이름도 모르는 한 중국인에게 길거리에서 휴대폰으로 눈 부위를 공격당했다면서 그날 바로 실명 위기로까지 도달해 결국 눈을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는 정말 충격적인 얘기를 해 주었죠 하지만 그런데도 킴은 언제나 저에게 한국의 지하철에 대해 잘 설명해 주고 저와 같은 똑같은 취미를 가진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은 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한쪽 눈이 불편한 킴을 위해 그와 함께 다닐 때 그가 조금이라도 더 편할 수 있게 평범한 일상들에 조금씩 그를 생각해 배려하기 시작했고 킴 또한 그러한 것을 느꼈는지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눈의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힘들 때가 많다면서 저에게 속 깊은 말들을 조금씩 해 주기 시작했죠. 그때 당시 저는 한국에서 한 달 살기와 비슷한 여행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는데 어느 날은 킴이 자신의 꿈은 저와는 반대로 제가 태어난 나라인 프랑스 파리에 있는 지하철을 경험해 보는 것이라면서 소박한 꿈을 얘기해 주더군요.   아무래도 그는 경제적인 문제가 제일 큰 것 같다면서 그래도 몇 년 뒤에는 아마도 프랑스 파리의 지하철을 한번은 타 볼 수 있지 않겠냐는 농담을 던지며 씁쓸한 표정을지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그에게 제가 프랑스로 돌아갈 날짜에 맞춰 함께 프랑스로 여행을 가보겠냐는 제안을 했고 그때 당시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저는 그에게 대부분의 경비를 지원해 줄 테니 함께 프랑스에 가서 파리의 지하철도 경험하고 승강장 플랫폼에 앉아 지하철 사진을 찍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조용히 제 말을 듣고 있던 킴은 너무나 놀란 표정을 지으며 왜 그렇게까지 해주는 것이냐고 저에게 물어 보았지만, 왠지 그때에 저는 킴의 소박한 꿈을 이뤄 주고만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그 저와 킴은 제가 파리로 돌아갈 비행기의 일정에 맞추어 조금 더 여유로운 한국에서의 여행을 마무리한 뒤 곧바로 또 다른 여행 일정을 준비에 함께 프랑스로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킴은 처음 떠나보는 프랑스 여행에 정말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저 또한 그러한 킴의 모습에 킴이 한국의 지하철을 여행하는 저를 도와주었던 것처럼 프랑스에 도착해서 킴의 지하철 관광 여행이 행복할 수 있게 잘 마무리 해야겠다는 굳은 의지마저 생기더군요.   저와 킴은 긴 시간의 비행을 통해 힘겹게 파리에 도착할 수 있었고 저는 파리의 지하철을 보여주기 전 프랑스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와 먹거리들을 킴에게 소개해 주며 첫 유럽 여행을 경험하는 그에게 파리의 구석구석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날 저와 킴은 파리에 한 지하철 승강장에 도착하게 되었고 언제나 그랬듯이 승강장 의자에 앉아 들어오는 지하철을 구경하거나 간단한 먹거리들을 먹으며 매우 흥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저는 킴에게 한국하고는 아주 다른 파리의 더러운 지하철을 보니 어떠냐고 물어보았지만 킴은 그저 나라의 차이일 뿐 지하철의 운행은 똑같다며 재밌는 농담을 하더군요. 그렇게 저는 킴과 함께 파리의 지하철에 탑승하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렸고 곧이어 플랫폼에 들어온 지하철에 올라 타려던 찰라 저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파리의 지하철은 대부분 엄청나게 낡아 있는데 저는 그러한 점을 순간적으로 잊어버린 채로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끝부분에 발을 뒤였고 곧 무언가 부서지는듯한 소리와 함께 발을 디딘 지하철 바닥이 파손되면서 제 몸의 반은 승강장과 지하철 사이에 완전히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단 10초도 되지 않는 사이에 벌어진 정말 충격적인 사건이었기에 저는 순간적으로 호흡이 되지 않는듯한 공포감을 느꼈고 바로 직전까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며 심각한 공황 상태가 시작되고 있었죠. 다행스럽게도 그때 당시 어느 정도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기에 몸의 부상은 심각하지 않은 듯했으나 그 좁은 틈에 갇혀버린 듯한 공포감은 말로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제 눈앞에 보여야 할 킴이 보이지 군요 이때의 상황까지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 흘러간 것처럼 느껴지고 있던 순간 갑자기 다시 제 눈앞에 킴이 나타나더니 자신이 한국인인데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하다는 고함을 영어로 플랫폼 전체에 소리치기 시작하면서 킴은 저를 보면서 계속 괜찮다는 말을 해주었고 일단 지하철의 운행은 멈추어 놓았으니 더 이상의 돌발 상황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자신에게 방법이 있으니 믿고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정말 용기 있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지하철 플랫폼 전체 내부 방송으로 저와 킴이 타려던 지하철에 지하철 내부에 모든 사람들은 모여 달라는 방송마저 나오더군요. 킴은 자신의 휴대폰을 이용해 파리 지하철 플랫폼 내부 신고소 상황을 알린 상태라고 말했고 곧이어 사람들이 오면 저의 몸이 갇혀버린 지하철을 직접 들어올려 저를 구할 것이라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점점 정신을 잃어가던 상황이었고 몸의 부상은 심각하지 않았지만 심각한 공황 상태에 호흡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죠 방송이 종료되고 킴은 자신이 한국인인데 이곳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며 지하철 전체를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모았고 약 5분 뒤 정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멈춰버린 지하철 앞에 모이게 되었고, 정신을 거의 잃을 뻔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킴은 그 엄청난 사람들 사이에서 원투 쓰를 외치며 지하철을 들어 올리는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저는 정신을 잃고 말았죠.   그리고 마지막 기억에서 눈을 떴을 때 저는 파리의 한 병원에서 눈을 뜨게 되었고 저의 옆에는 프랑스에 있던 저의 부모님과 키미 등을 벽에 기된 채 모두가 잠을 자고 있더군요. 다행스럽게도 몸에는 큰 부상이 없다는 것이 저 자신도 느껴질 정도였고 가슴 쪽에 근육에만 통증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하늘이 도왔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저의 인기척을 느낀 킴과 부모님은 저에게 운이 매우 좋았다면서 곧바로 의사를 데려왔고 의사분은 지하철이 들어 올려지면서 제 몸이 빠져나왔는데 그 순간 하체와 상체로 분리되어 있던 혈액 순환이 한 번에 진행되어 그러한 옆 로 기절을 했던 것이라며 몸과 내부 장기에는 큰 부상이 없으니 안심하라는 말을 해주더군요.   저는 킴에게 다시 한번 사고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고 전혀 처음 겪어 보는 타국에서 용기있게 사람들을 모아 지하철을 들어 올려 준 킴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며 오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킴의 손을 잡고 너무나 고맙다고 말하며 저와 함께 울음을 터트리셨는데 약 한 달여의 기간 동안 저를 끝까지 기다려 주었고 제 부모님의 안부까지 챙겨주면서 저와는 둘도 없는 목숨을 살려준 친구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몸은 빠르게 회복되어서 태어나는 날 킴과 저는 함께 제가 사고를 당했던 지하철 승강장으로 돌아와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천천히 플랫폼을 걸어 다녔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빠졌었던 구멍은 아직도 수리되어 있지 않았고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 한국과 유럽은 너무나 다른 도시 인프라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죠.   그렇게 킴은 그날 저와의 악수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저는 킴에게 정말 목숨을 살려 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또 한 번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약 여섯 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킴은 아직도 종종 저와 영상 통화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둘도 없는 친구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기게 되었죠. 혹시나 저와 같은 사람이 또 한 번 생기게 될까 봐 저는 그때에 킴이 보여주었던 용기 있는 리더의 모습을 보고 파리의 지하철 관리직으로 취직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킴과 같은 한국인이 프랑스에 있을 확률은 거의 없어서 저의 인생을 사는 저라도 저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그때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었죠. 그저 지하철만 좋아하던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어느 날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사고를 겪고 나니 저는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눈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모습을 보시던 부모님께서도 오히려 제가 아닌 킴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시면서 킴이 없었다면 그날 제가 살아나지 못했을뿐더러 새로운 꿈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직도 저를 공격하고 계십니다. 약 1개월 뒤 킴이 또다시 제가 사는 파리를 방문하기로 했는데 저는 그날만을 기다리며 제가 사고를 당한 그 날 용기 있게 사람들을 모아 지하철을 들어 올려 준 킴의 용기를 가슴속에 새긴 채 파리를 방문하는 또 다른 한국인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뉴스등록일 : 2025-03-28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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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사회일반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영국 헤리퍼드셔 주의, 작은 시골 마을 오코에 한 주택 마당 외국인 아이 두 명이 엄마의 눈을 피해서 마당에 나가 놀고 있습니다. 엄마로 보이는 외국인 여성은 태교 중인지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클래식을 듣고 있네요. 그런데 갑자기 어린 여자아이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옵니다. 외국인 여성은 흔들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비명이 들린 마당으로 달려 나갑니다. 그곳엔 온몸에 피가 철철 흐르는 딸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외국인 여성과 아이 두 명이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던 그때 이번엔 뒤에서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갑자기 어디서 커다란 짐승 한 마리가 아이들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오는데 도대체 영국 작은 시골 오코치의 주택 마당에서 그들에게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영국 해리퍼드셔주의 작은 시골 오코에 사는 로이하입니다. 제 남편은 오래된 건물을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저는 여섯 살인 첫째 딸 에밀리와 미운네 살이라 불리는 둘째 아들 에디, 두 아이를 집에서 돌보고 있습니다. 물론 일도 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로 아이들과 24시간 함께 할 수가 있어요. 남편은 아무도 직업이 저렇다 보니 집을 자주 비워야 해서 저라도 집에 있어야 했거든요. 두 아이만 키워야 하는 게 아니라 배속에 있는 셋째까지 잘 품고 있어야 하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습니다.   한창 뛰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감당하기엔 제 몸이 따라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마당으로 보내 놓고 조용하게 업무를 보면서 틈틈이 아이들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방 창문이 마당 쪽으로 나 있어서 아이들을 확인하기 딱 좋았습니다. 남편이 있는 동안 작업실방을 일부러 그쪽으로 옮겨둔 보람이 있었죠.   그러다가 남편이 출장을 간다고 하여 막막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제 걱정대로 남편이 출장을 가자마자 아이들이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아이들과 잘 놀아준 반면 통제도 잘해 주었거든요. 아이들을 잡아주는 사람이 집에 없으니까 집안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셈이었습니다.   제가 타이르는 목소리는 아이들 괴성에 묻히기만 했어요. 배 속의 아이 때문에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지르기도 힘들었습니다. 남편이 출장을 간 처음 며칠은 마당에 나가 놀더니 4일째부터 집안에서 순례 잡기 하며 뛰놀더라고요. 아이들은 변덕도 심하고 새로운 장소와 놀이를 좋아하니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았습니다. 그래도 제 아이들은 임신한 엄마를 배려할 줄 아는 아이들일 줄 알았는데 제 욕심이 과했나 봅니다.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었고 하루는 빨래하려고 빨래 바구니를 들고 거실을 지나가던 중이었습니다. 이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순례 잡기 하느라 2층과 1층을 구석구석 뛰어다니고 있었어요.   그때 그 순간 둘째 아들인 에디와 부딪히고 말았어요 하필이면 아들 얼굴과 제 배가 정면으로 부딪쳤습니다. 배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며 빨래 바구니를 떨어뜨렸습니다. 거실바닥에 무릎을 꿇고 옆으로 쓰러진 채 딸과 아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들은 깜짝 놀랐는지 울먹이면서 조금 떨어져 있던 딸 아이 등 뒤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나마 첫째라고 에밀리가 제게 다가와 주었어요. 그때 딸이 제 다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엄마, 엄마 다리에 피가 흘러요. 엄마 죽지 마세요. 설마 했는데 딸의 반응을 보아하니 제 직감이 맞더군요.   아들과 정통으로 부딪히는 바람에 하열을 하고 만 겁니다. 다리 사이로 흐르는 끈적한 액체가 느껴졌는데 정말로 그게 피일 줄이야 제다리 사이로 흐르는 피를 보며 끝내 딸도 눈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피를 보고 벌벌 떨면서 대성통곡하고 있었습니다.   눈앞이 흐려지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했어요. 남편이라도 있었다면 바로 응급실에 절 데려갔지만 집에 어른은 저 혼자였죠 여섯 살과네 살 아이들이 응급 상황에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피까지 본 상황에 침착하게 대처하기는 어른도 힘들잖아요.   딸과 아들은 배를 잡고 식은땀까지 흘리는 저를 붙잡고 엄마 죄송해요. 저희가 잘못했어요. 제발 일어나요. 우리만 버리고 가지 마세요. “엄마 미안해”라며 울부짖었습니다.   저는 혼신의 힘을 짜내어 첫째 딸 에밀리의 팔을 붙잡았어요. 에밀리 엄마 말 잘 들어 지금 바로 옆집 이사벨라 아줌마를 불러와 이사벨라 아줌마 그래 이사벨라 아줌마한테 엄마가 위험하다고 전해줘, 얼른. ‘네 엄마 아줌마를 데리고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딸은 제 부탁에 눈물 닦고 후다닥 뛰어나갔습니다.   현관문을 닫을 때까지 그렁그렁한 눈으로 절 쳐다보는 딸을 보니 저도 눈물이 나더군요. 아들은 제 손을 꼭 맞잡은 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눈을 감으면 아들이 절 흔들어 깨웠어요 눈을 감았다가 혹시나 뜨지 않을까 봐 두려웠나 봅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에밀리가 이사벨라를 데리고 와 주었습니다. 이사벨라는 하혈하고 있는 저를 보고 깜짝 놀라며 경기를 일으켰어요. 서둘러 응급차를 부르고 다리에 흐름 피를 닦아 주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수건의 물을 적셔와 달라며 부탁했고 아이들은 빠르게 젖은 수건을 가져다 주었죠.   이사벨라의 품에 안겨 있으니 자꾸만 정신을 놓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녀도 제 동공이 풀려가는 걸 느꼈는지 제 뺨을 때리면서 ‘정신 차려야지 자기 애들 생각하면서 버텨, 뱃속에 있는 아이도 버티고 있는데’ 자기가 이러면 안 돼라며 제가 정신을 놓을 수 없게 해주었습니다. 때마침 밖에서 올리는 구급차 소리에 마음을 확 놓아 버렸어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이들과 이사벨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렸는데 눈을 뜰 힘조차 없었거든요. 한참이 지나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병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는지 눈을 뜨자마자 제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였어요. 저는 절 걱정해 주는 아이들보다 배속의 아이가 먼저였습니다. 이사벨라 내 아기는 뱃속에 있는 아기는 괜찮은 거지 하지만 이사벨라의 표정이 오묘했던 불안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예민해져 그녀를 다그쳤습니다. 왜 빨리 대답해 주지않는 거야 혹시 내 아기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무슨 말 좀 해봐.   제 눈물 어린 호소에 드디어 그녀가 입을 열었는데요. 그녀의 대답을 듣자마자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괜찮대 배 속에 아기는 아주 건강하다고 하니까 자기 몸부터 생각해 나한테 애들 좀 봐달라고 부탁하지 혼자 어쩌려고 이런 일을 벌인 거야. 나 정말 놀랐다고 저는 그녀의 말에 고맙지만 사양했습니다. 남에게 의지하면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커서 쉽게 기대지 않는 성격이었어요.   이런 응급 상황은 어쩔 수 없었지만요. 배 속의 아이에게는 아무 타격이 없었으니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소중한 새생명을 잃는 큰 사고로 번질 뻔한 사고였어요. 이사벨라는 약속이 있다며 먼저 갔고, 안정을 취한 후에 병원을 나왔는데요 예민한 사고라 저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크게 호통을 치고 말았습니다.      에디 왜 이렇게 엄마를 속상하게 하는 거야 너희 때문에 엄마도 동생도 위험해지기를 원하는 거야 너희에게 정말 실망스럽다. 다시 이런 사고가 생긴다면 아빠가 없을 땐 할아버지 할머니 집으로 보낼 줄 알아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하면서 상처를 줬습니다. 다 말을 하자마자 후회했지만 이미 뱉은 말은 주어담을 수 없었죠.   아이들은 잔뜩 화가난 제 눈치를 보면서 자신들을 버리지 말라고 애원했어요. 그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당장은 풀릴 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날의 사고로 인해 아이들은 며칠째 제 눈치만 보길래 점점 미안해지더라 엄마로서 자격 박탈인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 분위기를 풀어야 하고 아이들에게 다 가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엄마가 처음이었으니까 결국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모든 사정을 설명 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했죠. 부모님은 제 말을 듣고는 곧 집에 오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습니다.   며칠 후에 정말로 부모님이 오셨는데 두 분만 온게 아니었어요 웬 이상한 개를 한 마리 데리고 왔더라고요 처음 보는 생김새의 개를 본 아이들은 겁을 먹었습니다. 부모님은 그 개를 진돗 개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게 궁금한게 아니었어요. 도대체 개를 왜 데리고 왔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아이들과 화해하도록 도와달라고 했더니 뜬금없이 개라니요. 부모님은 황당한 행동도 모자라서 더 황당한 말을 하더군요. 로이아 오늘부터 새 식구가 될 친구란다. 아이들 혼자 보기 힘들었지 이제부터 이개가 에밀리 에디와 놀아주고 지켜줄 거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아빠 친구가 한국에 살고 있는데 이 진돗개가 주인을 한번 섬기면 그렇게 충성심이 강한 더구나 혼자 있는 날도 많은 데 도움이 많이 될거다. 남편 없이 저 혼자 지내는게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제코가 석자인데 걔를 어떻게 키우냐는 거죠. 아이들 보기도 힘들다고 했건만 개까지 돌보라고 데리고 온 부모님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개를 보고 처음엔 무서워하더니 이제는 가까이 다가가 관심을 보였어요. 저는 부모님에게 제 상황을 호소하며 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진돗개가 으르렁 되더니 아이들에게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고 있더라고요. 깜짝 놀라 진돗개 앞에서 굳은 아이들을 제 뒤로 숨겼입니다.   이거 보세요 저 똥개가 우리 애들을 잡아먹게 생겼는데 애들을 지켜 준다고요 필요 없으니까 당장 데리고 가세요. 부모님은 제 말은들은 채도 하지 않더니 차에서 개집 꺼내서 마당에 내려놓았습니다.   무슨 짓이냐고 말려도 소용 없었어요. 진돗개에게 목줄을 채우고서 일단 키워 보라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는 제가 붙잡을까봐 얼른가 버렸습니다. 마당에 남겨진 진돗개는 떠나는 부모님 차를 보고 따라가려고 했는데요 목줄에 자꾸 걸려서 케케 대고 낑낑대고 혼자 난리였다.   전혀 불쌍해 보이지 않더군요. 차라리 목줄을 끊고 부모님을 따라가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진돗개를 보고 불쌍하다며 배고파서 저러는게 아니냐 더라고요.   엎친 데 덮친 격이었지만, 그래도 굶겨 죽일 순 없으니 아이들과 마트에 가서 개 사료와 필요한 애완용품 몇 가지를 사 왔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아이들에게 절대 진돗개 가까이에 가지 말라고 당부했는데요. 아이들은 다시 제 말을 안 듣고, 밥 그릇을 들고서 자기가 주겠다며 티격태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개 밥그릇을 뺏어서 개집 옆에 놓아 주었어요.   아이들이 아쉬워했지만 조금 전 으르렁대는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진돗개에게 디라라고 이름도 지어 주었습니다. 테디는 둘째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이름입니다. 귀찮은 일이 하나 더 늘어나자 한숨만 나왔어요. 적어도 개지만 아이를 이제 마당에 보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개가 아이들을 물기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큰 일이니까요. 하필이면 정신적으로 힘들 때 업무까지 많아져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아이들에게 조금씩 소홀해지고 있었어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마당에 나가지 말라고 했더니 집안에서만 놀길래 마음을 살짝 놓고 있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개가 있었다는 사실도 잊고 일에 몰두한 거 같아요.   2주 후에 일이 마무리되고 오랜만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거실로 나갔는데요. 집안 어디에도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어요. 서둘러 마당으로 나가보니 아이들이 진돗개에게 깔려서 뒹굴고 있는 겁니다.   저는 악을 지르면서 진돗개를 물러나게 했어요. 얼른 아이들을 일으켜 그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게 했습니다. 괜찮냐고 다친 곳은 없냐고 살피며 물었습니다. 그 개는 저와 아이들을 향해 목줄이 팽팽해지도록 하고 있더라고요.   아무리 봐도 우리 아이들을 지켜줄 개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말에 벙찌고 말았어요. 에밀리와 에디가 진돗개 테디에게 깔려 위협받던 게 아니라 함께 놀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일에 몰두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몰래 밥을 주고 장난감으로 놀아줬다고요. 심지어 아이들의 말을 잘 듣고 잘 따른다는 말에 충격에 빠졌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말을 믿지 않아서 바로 혼냈지만, 테디를 주고 가버렸을 때 진돗개 특징을 좀 알아봤었어요. 공격성이 강하다는 말이 많았어요. 지금이야 잘 놀아주니까 그렇다 쳐도 언제 어떻게 돌변해서 아이들을 위협할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리 화내고 부탁하고 애원해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역시나 크게 일이 터지고 말았죠. 이날도 아이들이 제 눈을 피해서 마당에 나가 놀고 있었습니다. 저는 태교 중이라 노래를 들어 놓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린 여자아이의 비명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제 첫째 딸 에밀리의 목소리였습니다.   흔들리자에서 벌떡 일어나 비명이 들려온 마당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에밀리와 에디는 진돗개 집 주변에 주저 앉아 있었는데 놀라서 다가갔다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에밀리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팔은 또 왜 그렇고 제가 이렇게 놀란 이유는 바로 딸아이 왼팔에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그 옆에서 엉엉 울고 있더군요. 잠시 후 딸아이의 팔을 자세히 살펴보고 저는 단단히 화가났습니다. 딸아이 팔에 피를 낸 범인을 잡았거든요. 그건 바로 테디 였습니다. 딸아이 팔에 선명한 짐승 이빨 자국이 있더라고요.   바로 응급차를 불렀죠 그리고는 마당에 있던 빗자루를 들고 테디에게 다가갔습니다. 제딸을 저렇게 만든 놈을 가만둘 수 없었으니까요. 테디에게 빗자루를 휘두르려는 찰나에 테디가 짓는 바람에 들고 있던 빗자루를 놓쳐버렸습니다. 저를 보고 이빨을 드러내며 우렁차게 짓는 모습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어요.   머리가 새하얘지면서 상황 판단이 느려 있었습니다. 테디는 저에게 달려오려고 했지만, 목줄이 걸려서 켁켁 대며 버둥거렸다. 벌벌 떨고 있었는데 이번엔 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돌아보자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핏불 한 마리가 아이들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테디가 짖었던 이유는 바로 저 핏불 때문이었어요.   테디는 핏불을 향해 미친 듯이 짖었습니다. 그때 핏불은 테디의 방해 공작에 걸려들었는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어요. 저는 너무 놀라서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옆으로 굴러 피했습니다. 핏불은 인정사정없이 테디의 목을 노리고 한 방에 물었습니다. 테디가 아파하는 신음을 내지르다 앞발로 핏불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어요.   테디의 발톱이 핏불의 눈에 긁혔는지 이번엔 핏불이 신음을 내며 물고 있던 테디의 목을 놓아버렸습니다. 틈을 놓치지 않고 테디가 핏불의 목을 사정없이 물어뜯어 버리더군요. 두 개가 싸우는 현장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오금이 저려 왔습니다.   개싸움 소리에 주변 이웃들도 나오더니 집 앞에 몰려들었어요 어느새 저는 테디를 속으로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테디가 이겨야지 저 핏불도 꼬리 내리고 집마당에서 나갈 테니까요. 아이들은 하염없이 울면서 테디를 외치며 자꾸만 테디에게 다가가려고 했습니다. 이러다가 테디가 죽는 거 아니냐면서 그런 아이들을 어른들이 말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어요.     하지만 핏불은 호락호락한 개가 아니었습니다. 테디의 목줄을 제가 가서 풀어줄 수도 없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죠. 테디의 하얀 털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핏물에 목 옆구리 어깨 다리까지 물려 피로 얼룩덜룩해져서 목줄도 자꾸 당겨지는 호흡도 거칠어지고 불안정해 보였습니다.   테디의 움직임이 점차 느려지자 핏불은 재미를 다 보았는지, 주위로 눈을 돌리더군요. 그러다가 저와 눈이 딱 마주친 겁니다. 핏불은 다시 제게 달려오고 했어요. 도와달라고 소리쳤지만, 선뜻 저를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때였어요. 테디가 먹던 힘까지 내서 목줄을 당겨 끊어 버리더니 핏불에게 달려가는 겁니다.   그러더니 핏불의 목을 전보다 더 세게 물고 제게 오지 못하게 막아 주었어요. 온몸이 빨갛게 물든 채로 핏불의 힘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테디와 눈이 마주쳤는데요. 마치 저에게 자신이 핏불을 잡아두고 있을 테니 아이들을 데리고 얼른 도망치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그 눈빛이 마음이 저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었죠.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신고라도 해 달라며 애원했습니다. 경찰은 5분 내로 빠르게 도착했어요 샷건을 들고 마당에 들어왔지만 살벌한 개들의 싸움에 조준하기가 어려워 보였죠 하지만 곧바로 날뛰는 핏불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눈치 빠른 진돗개 테디가 살짝 피해 주었을 때 경찰이 핏불 머리 빈백 샷건을 쓸 수 있었어요. 핏불은 낑낑대며 그대로 엎어졌고, 상황은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그제야 응급차가 도착했고 저는 에밀리와 에디를 데리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여섯 살인 에밀리가 울지 않고 치료를 잘 받아주어서 고마웠고 그리고 미안했어요. 어린 나이에 얼마나 무서웠을지 오늘 일이 무서운 트라우마로 남았을까 봐 걱정도 되었습니다. 팔에 붕대를 감은 딸을 보고 있으니 눈물 흐르더군요. 딸에게 다시는 테디 근처에 가지 말라고 당부했는데요. 딸의 대답에 입을 담을 수 없었습니다.   엄마이 상처 테디가 문게 아니야 내 팔을 문 건 핏불이 였어. 제가 오해를 해도 단단히 하고 있었더라고요. 저는 그 핏불이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건지 경찰 조사를 원했습니다. 경찰이 알려주더군요. 이사 온 이웃집에서 핏불을 묶어 두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그 난리가 난 겁니다. 핏불은 어떻게 됐냐고 묻자 사망했다고 했어요. 심지어 핏불 주인은 경찰을 고소하겠다며 난동 부렸다고 했습니다.   핏불의 머리에 빈백 샷건을 쏜 건 과잉 대응이라고 했다더군요. 어처구니없고 화나는 핏불 주인의 말에 저도 고소하겠다고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경찰은 고소장 접수를 도와주겠다며 사건 경위를 자세히 알려 달라고 했는데요. 갑자기 에밀리와 에디가 다급하게 불러서 갔더니 테디가 마당에 쓰러져 있더라고요. 딸아이 치료 때문에 심하게 다친 테디를 잊고 있었던 겁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설마 숨이 멋은 건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가가 코에 손가락을 대 보았습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숨은 붙어 있어서 얼른 동물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보이는 것과 다르게 큰 부상은 없다고 해서 한시름 놓을 수 있었죠. 군데군데 찢어진 부분만 치료받고 소독하고 꿰매면 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테디가 치료받는 내내 걱정하는 표정으로 곁을 지켜주었어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테디는 치료받는 내내 저와 아이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울컥해서 눈물이 터졌어요. 더 빨리 챙겨서 병원에 왔어야 했는데 미안함에 터진 눈물이었습니다. 치료를 마친 테디를 끌어안고 저와 아이들은 펑 울었어요.   병원 안에 있던 병원 관계자와 보호자들이 당황했지만, 그들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진돗개를 아니 테디를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했던 말처럼 한국의 토종개 진돗개는 한번 섬긴 주인을 배신하지 않고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충성심 강한 개였어요.   누구보다 몸소 깨닫지 않았습니까. 아이들도 자기들을 구해준 테디와 더욱 돈독해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아이들이 마당에 나가 놀기를 원했고 저 또한 아이들이 마당에 있는 동안은 전보다 편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집엔 아주 든든한 테디가 있으니까요. 며칠 전에 부모님은 억지로 진돗개를 두고 간게 미안했는지 다시 돌아와 테디를 데려가겠다고 했는데요. 아이들이 울고불고 난리에 저도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습니다. 부모님은 한 달도 안 돼서 달라진 저의 태도에 의아해했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그날의 일을 알려 주었어요. 그렇게 부모님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셨고 이들 후에 남편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갑자기 생긴 진돗개에 놀라서 남편이 묻더라고요. 아이들은 신이 나서 테디가 우리 집에 있게 된 날부터 모든 추억을 남편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남편은 놀랐다가 당황했다가 화났다가 마지막에는 눈물을 살짝 훔치는 듯 보였죠. 아이들은 남편까지 테디를 반겨 주자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테디에게 달려가더니 아직 테디가 남편은 이방인으로 생각하는 건지 남편만 보면 으르렁 대기만 하네요.   그 후 남편을 따라 한국에 가게 됐는데요. 거기서 한국 가정집에서는 전부 온돌 보일러를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보일러를 설치해서 버튼만 누르면 집 전체가 따뜻해지는 구조라고 했습니다. 아이 아이들도 바닥에 누워 보더니 온종일 누워 있을 수 있겠다며 좋아하더라고요.     남편의 업무 일정이 끝나고는 남편을 따라 충청남도 부여 기와 마을에 가서 토기도 만들고 기와 탁본도 체험해 보았습니다. 부여 기와 마을에서의 체험은 계절마다 다르다고 하니 4계절마다 한 번씩 오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네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저와 남편도 뿌듯했습니다.   저희는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가 집에 온 돌 보일러를 설치했어요. 마을 사람들도 우리 집에 설치한 온돌 보일러를 체험하고는 자기들 집에도 설치해 달라더군요. 현재 남편은 한국 보일러 총판을 맡게 되었어요.   이 모든게 전부 우리 집에 온 축복 테디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토종 진돗개 테디의 삶이 끝날 때까지 행복한 추억만 선사해 주고 싶습니다.  
뉴스등록일 : 2025-03-28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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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사회일반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안녕하세요 저는 러시아의 소냐 게르게이라고 합니다. 저는 현재 고향 러시아를 떠나 남자 친구와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고 있는데요 저와 남자 친구의 만남은 약 1년 전 그 당시 숙박업을 하고 있던 삼촌의 호텔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한 남자를 소개받았습니다.   삼촌이 한국에서 일했을 때 같은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던 남자라구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 다들 떠나가는 가운데 한국에서 왔다는 그가 무척 신기하게 보였죠. 그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삼촌을 꼭 만나러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저는 약속을 지키려고 전쟁 중인 국가에도 오는 그의 멋진 의리를 보고 호감이 생겼고 이런 감정은 저만 있는게 아니었죠. 불꽃이 된 우리는 만난지 2주도 안 돼서 연인 사이가 됐고 남자 친구는 원래 일정보다 약 한 달 더 지내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엔 제가 남자 친구를 보러 한국으로 가서 똑같이 두 달가량 생활했는데 그때 한국에서 만든 추억이 너무 좋아 떠나고 싶지 않더군요. 하지만 저는 러시아로 돌아가야 했고 그 뒤 남자 친구가 한국에서 취직하게 되면서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정 보고 싶을 땐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제가 한국에 갈 때도 있었지만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에 저는 외로웠습니다.   저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던 건 전쟁의 영향도 컸습니다. 모스크바는 전쟁을 직접적으로 겪는 지역은 아니었어도 뉴스를 보다 보면 점점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가는 러시아의 상황은 저를 겁먹게 했습니다.   저는 남자 친구와 연락할 때마다 이런 불안함과 공포를 토로했죠. 그런데 남자 친구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한국에 와서 같이 살래 남자 친구는 만난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저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확신이 생겼다면서 제가 한국에 와서 자리를 잡으면 결혼하자고 하더군요.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남자 친구를 사랑하긴 하지만 아직 결혼을 논할 단계는 아니라고 봤거든요.   남자 친구는 저의 부정적인 반응을 듣고 실망했지만, 꼭 결혼 문제가 아니더라도 위험한 러시아에 있는 것보다는 전 한국에 있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설득했습니다. 남자 친구는 어학당을 다니며 학생 비자를 발급받고 한국어 자격증을 따면 취업을 준비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어요.   쉽지 않겠지만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저는 그의 말에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직접 경험해 본 대한민국은 무척 살기 좋은 나라였고, 러시아보다 훨씬 나으니까요. 며칠 고민 끝에 저 는 한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했고 한 달 뒤 인천공항 한복판에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친으로 터 걸려온 보이스톡은 저를 당황스럽게 했는데요. 남자 친구는 지인분의 부모님이 상을 당해 급하게 서울로 올라왔다며 공항에 못 왔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비행기에서는 데이터를 사용할 수 없으니 어차피 연락이 안 될 것 같아 도착할 시간에 맞춰서 연락했다고 했죠. 인천공항까지 다시 데리러 가려고 하면 가 한참을 기다려야 하니 공항철도 여객 터미널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올 수 있냐고 물어보더군요.   서울역에서 같이 만나 남자 친구가 사는 부산으로 내려가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서 표는 자기가 예약을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자 친구의 말에 충격받았습니다. 나보고 지금 혼자 기차를 타란 소리야,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제 주변에서는 정상인이라면 여자 혼자 기차 타는 것은 말리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여자들은 친구들이랑 여럿이서 갈 것을 권장하거나 어른 남자와 같이 타라고 충고했고 제가 살면서 딱 한번 기차를 혼자 타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합니다. 그 당시 저는 성인이 된 기념으로 친구 네 명과 함께 기차를 타고 여행할 예정이었지만, 제가 늦잠을 자면서 친구들이 한 시간 넘게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는 미안하다며 먼저가 있으라고 연락했습니다. 친구들은 여자 혼자 기차를 타는 건 위험하다며 걱정했지만 저는 괜찮다고 우겼죠. 저는 그렇게 다시 예약한 기차의 3등석 들어섰습니다. 3등석은 일 이등석과 다르게 닫을 수 있는 문이 없고 말이 6인 실리지 뻥 뚫린 채로 마땅하 있는 구조라서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다 보였어요.   여자 혼자 타니 사람들의 시선이 확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좁은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음흉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자들은 저를 불쾌하게 만들었죠. 돌아다니지 않을 때도 물론 불안했습니다. 제 맞은편 자리에 있는 남자는 미친듯이 술을 마시면서 초점 없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거든요.   저는 두려움에 떨었지만 니즈니노브고로드 아지는 몇 시간만 참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세 시간쯤 지나자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한두 명씩 잠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기차가 도착할 때까지 조금만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눈을 감았는데 스멀스멀 올라오는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순간 화들짝 놀라 눈을 떴더니 남자가 저를 더듬거리며 만지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소리를 지르며 남자를 밀쳤어요. 욕설을 내뱉으며 저를 밀치며 갑자기 무기를 꺼내들더군요.   제 비명 소리에 깬 주변 사람들도 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죠. 술에 취한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칼을 들고 난동을 부렸지만 남자는 다행히 몸을 제대로 못 가눌 정도로 취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주변 남자들이 금방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제압하는 과정에서 칼에 쓸려 상처를 입은 남자분이 있으셨고, 저는 그분께 눈물을 홀리며 구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사과했습니다. 남자는 중간 기착지에서 내려 연행되었습니다. 저 또한 조사받아야 했습니다.   저는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경찰서에 있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아버지는 깜짝 놀라 기차를 타고 저를 데리러 오셨습니다. 아빠는 크게 화를 내며 왜 너 혼자 기차를 타고 간다는 말을 안 했냐고 저를 질타하는 부모님은 제가 친구들 여럿이랑 여행을 가는 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 뒤로 혼자는 물론이고 여럿이도 기차를 타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게 됐고 여행도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자 친구를 보러 두 달 전 잠깐 한국에 왔던 일이 그 일이 벌어지고 난후 처음해 본 여행이었습니다. 그때도 무서웠지만 그리움이 더 커서 갔던 거였어요. 서운한 저는 섭섭한 마음을 남자 친구에게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남자 친구는 오히려 자기가 더 난감하다는 말투로 여자 혼자 기차 타고 오는 게 왜 위험한 일이야 인천에서 서울까지 얼마 안 걸려라고 말했죠.   저는 정말 남자 친구가 저를 정말 사랑하는게 맞는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본 어떤 남자도 자기 딸이나 여자 친구를 혼자 기차에 타게 내버려 두지 않았으니까요. 분노한 저는 남자 친구에게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여자 혼자 기차를 태워 보낼 생각을 하는 거야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그러자 남자 친구는 싫으면 강요하지 않겠다면서 데리러 가겠다고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남친이 올 때까지 긴 시간을 기다리다가 그와 만나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화를 낸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괜한 자존심에 여전히 화난 척을 했습니다. 저녁에 남자 친구 집에서 짐을 풀고 하루를 묻고, 다음날 부산에서 놀 때도 여전히 우리는 서먹서먹 습니다.     그날 저녁쯤 남자 친구가 뜬금없이 혼자 기차를 타기 싫으면 자기랑 기차를 타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제가 저번에 한국에 놀러 왔을 때 KTX 보고 타고 가고 싶어 했던 전주 한옥마을에 놀러 가자는 거예요.   저는 기차 때문에 그렇게 싸워 놓고도 그런 제안을 하는 남자 친구가 기가 막혔으나 속에서 올라오는 화를 참고 알겠다고 말했습니다. 기껏 한국까지 온 것 친하게 지내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처음으로 기차를 타보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고속버스를 이용하거나 서울에 놀러 갔을 때 지하철을 탄게 전부였으니까요. KTX 부산역에 도착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모스크바의 야로 슬라브 스키어보다 세련되고 크기도 커서, 마치 작은 공항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KTX 산천은 제가 러시아에서 탔던 기차와는 많아 달랐습니다. 침대가 없었고 오로지 좌석 형태로만 존재했어요.     남자 친구가 설명해 준 내용에 따르면 한국은 어딜 가든 한국 내면 하루 안에 갈 수 있어 침대가 있을 필요 없다고 해요. 좌석은 넓고 편안했으며 뒤로 젖힐 수도 있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과 달리 복도를 지나갈 때도 쳐다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더군요. 최신식 기차가 아니면 6인실에도 콘센트가 두 개밖에 없는 구역 열차가 흔한 러시아와 달리 앞좌석 아래와 제가 앉는 좌석 아래도 각각 콘센트가 있어서 휴대폰 충전이 용이했습니다.   한국의 기차는 기술력이 좋아서인지 러시아의 기차와 달리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많은 러시아 열차와 달리 승객들도 무척 조용하고 점잖았다. 저는 열차 안 자판기를 처음 써보고 무척 신이 났는데, 남자 친구가 기차 안에 자판기가 있는게 그리 신기해야 할 일이냐고 묻더군요.   하지만 러시아는 자판기가 없는 기차가 많았어요. 자판기가 있는 열차라도 단말기가 달렸는데도 카드 결제가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죠. 한국 기차가 신기했던 저는 열차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놀랍게도 혼자 온 여자 손님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저와 달리 전혀 불안에 떨고 있지 않았습니다. 편안한 표정으로 책을 보고 있거나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남자들은 괜히 말을 걸거나 희롱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차 안을 지나가다 여자분을 마주치면 먼저 지나가라고 비켜 주며 몸이 닿지 않게 배려해 줬습니다.   이런 환경이라면 충분히 여자도 안전하게 기차를 탈 수 있겠구나 믿음이 같습니다. 오송역에서 환승하여 전주에 가기 때문에 기차를 두 번 탔지만 어떤 불편한 일도 벌어지지 않았어요. 저는 남친이 왜 저의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 못했던 것인지 알았습니다.   한국같이 안전한 나라에서는 당연히 여성 혼자 기차를 타도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는게 당연했기 때문에 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죠. 저는 남자 친구에게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러시아 열차처럼 한국 기차가 위험한 줄만 알고 여자 혼자 타라는게 섭섭해 했다고요 그는 빙글에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처음엔 내가 예민하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러시아 기차의 치안에 대해서 검색해서 알아보니 시베리아 횡단 열차는 술취한 사람들이 많고 심지어 흉악한 사람들까지 있다더라, 그걸 보니까 내 심정을 이해하게 됐어. 대신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기차를 타보자고 제안했던 것이라고 하네요. 저는 남자 친구의 지혜로움에 감탄했습니다. 한번 말하는 것보다 한번 보여주는게 낫다는 말을 몸소 실천한 것이죠.   그가 존경할 만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믿음직한 남자라면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일주일 뒤 저는 남자 친구의 결혼 제안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고 뛸듯이 기뻐했습니다.   부산에서 외국인이 자리를 잡는 건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노력해서 남친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차 때문에 생긴 국제 커플에 해프닝 어떻게 보셨나요?    
뉴스등록일 : 2025-03-28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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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사회일반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미국의 한 가정집 암에 걸린 엄마 앞에서 한국의 엄마에게 함께 가자고 이야기하는 미국 여성이 있습니다. 과연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온 교환학생 ‘티나’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거나 정착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깨닫거나 잊지 못할 추억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미국에 있었다면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얻은 탓에 애를 쓰면서까지 한국에 오려고 한 것이고, 추억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기도 하니까요.   제가 처음 한국에 간 것은 여덟 살 때였어요. 미국에서 교수로 일하시던 아버지께서 한국에 있는 대학교에 영문학 교수로 이직을 하시면서 가족들 역시도 자연스럽게 한국에 가게 된 것이었죠. 어린 마음에 새로운 곳에서 살게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던 저와는 다르게 어머니께서는 한국에 가는 것을 굉장히 꺼리셨던 어머니께서는 여러모로 한국에 가는 것을 못 마땅해하셨어요.   사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에서도 제일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다 보니 어머니께서는 당연히 한국이 별로 볼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셨거나 저의 경우에는 한국에 있던 모든 것이 참 좋더라고요. 아무리 샌프란시스코가 살기가 좋다고 하더라도 치안 문제 때문에 일면식이 없는 아이들과 뛰어놀지는 못했거든요.   그랬기에 한국에서의 생활이 더 좋게 느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또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같이 뛰어놀 수 있는 것은 물론 주변 어른들께서 참 친절하게 대해 주셨으니까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늦으실 때면 옆집에 살던 친구 권유로 다 함께 식사하곤 했는데요. 가족이 아님에도 허물없이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공유하며 음식을 주고받는 것이 참인상이 깊더군요. 그래서 앞으로도 쭉 한국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고요. 하지만 이런 저의 소박한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한국에 온지 3년 만에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돌아가셨거든요. 원래 심장 질환이 있으셨던 아버지였지만 이렇게 빨리 가족들의 곁을 떠날 줄은 몰랐기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재로 장례식 내내 충격에 빠져 계시던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장례가 마무리되자마자 미국으로 돌아오셨고, 미국으로 돌아오자 어머니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직장을 구하는 었어요.   원래 회계쪽 일을 하시던 어머니께서는 회계직 일을 구하는 것으로는 모자랐는지 주말에는 파트 타임으로 레스토랑 서빙 일까지 구하시고요. 어머니께서 얼마나 고단한 일과를 보내시는지 알았기에 저도 더 이상 그 어떤 말썽도 부리지 않고 묵묵히 공부만 하게 되었네요.     아버지가 보고 싶다거나 친구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일절 하지 않으면서요. 어머니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기에 사춘기시절을 거쳐 대학교에 갈 때까지 모녀 사이에 큰 갈등이 일어나지는 않았는데, 한국으로 교환 학생을 가겠다는 말을 꺼내자 어머니께서는 불같이 화를 내시라고 생활 수준이 미국에 비해 한참이나 모자란 곳에 뭐하러 돈까지 들이면서 가냐고요.   돌이켜 보면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기점으로 한국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품으신 것 같았어요. 한국에 관한 프로그램이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리는 것은 물론, 한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기 있으셨으니 사실 아버지가 한국에 계실 때는 정규직 교수가 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논문을 작성하고 수업 준비를 하셨거든요.   어머니의 눈에는 그것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독하게 올라가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께서 괜한 고생을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어요. 아버지께서는 논문을 쓰는 것도 수업 준비를 하는 것도 자신이 즐거워서 하신 건데 말이에요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계신 어머니와 다르게 저는 기회만 된다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그러나 제가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어머니께서는 여전히 아버지께서 무리하며 일을 하신 것이 다 한국인 동료들 때문이라 믿으셨으면 어쩔 수 없이 모든 준비는 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한 채로 진행을 하게 되었죠. 어머니가 반대한다고 해서 한국 가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교환 학생을 가는 데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비행깃값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가 있더군요. 저는 모든 준비가 다 끝난 후에야 어머니에게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갈 준비를 다 해 놨다고 말씀을 을 드리게 되었고요. 제말에 설거지 중이던 어머니께서는 손에 들려 있던 그릇을 깨뜨리기지 하셨죠. 그만큼 충격이 심하다는 말이었습니다.   이후에 일은 모두가 예상하셨다시피 어머니에게 심한 꾸중을 들었어야 했어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한국 같은 이기적인 국가로 가서 낭비한다면서요, 그렇지만 이미 교환 학생에 대한 준비는 다 맞춰 놨기에 어머니께서도 더 이상의 관여는 하지 못하셨고 그래도 하나뿐인 자식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어머니께서는 공항까지 직접 마중을 나와 주시며 직접 환전한 돈을 건네주기까지 하셨네요.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하며 떠나는 한국행이었습니다. 당당한 척을 하고 싶었지만 손수건이 다 젖도록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저도 덩달아 울컥 눈물이 맺혀 오더군요. 너무 이른 때 어머니를 떠나는 건가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가 제게 원하는 것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실리콘 밸리에 있는 대기업에 입사하여 그곳에서 좋은 짝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이었어요. 제가 바라는 꿈은 아버지처럼 한국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인데,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무척이나 속상했지만 이대로 교환 학생을 포기한다면 영영 제 꿈을 이룰 수없다고 생각했기에 억지를 부리면서지 한국에 오게 된 것이었죠.   그래도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 어머니에게서 이왕 교환학생으로 가게 되었으니 많이 배우고 돌아오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주셨기에 한결 편한 마음으로 한국에서의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한국은 이전보다 더 많이 발전한 것처럼 보였어요. 제일 놀랐던 것은 지하철에서도 와이파이가 연결된다는 점이었고 심지어 빠르기까지 한 인터넷을 사용하며 세삼 한국이 아이 강대국이 그 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네요.   저는 제일 먼저 아버지와 자주 갔던 합정을 가게 되었는데요. 아기자기한 액세서리, 스티커를 파는 상점들이 많은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길거리를 돌아다니게 되더라고요. 밤이 되자 거리 곳곳에서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 덕분에 눈호강을 하는 동시에 귀까지 즐거워졌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경우에는 캘리포니아 해안이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면 합정의 경우에는 젊은 활기가 느껴지는 도시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어요. 밤이면 형형색색의 불빛이 어우러진 가게의 모습들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이목을 집중시켰고 학교가 합정 근처에 있는지라 저는 이후에도 종종 합정에 들러 룸메이트들과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요.   이국적인 음식점들이 넘쳐나는 합정에서 일상은 하루하루가 여행을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까지 하더군요. 그 덕분에 매일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죠. 그리고 합정이 주는 활기 다 더 좋은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같이 지내는 룸메이트들이 아직 한국어가 서투른 저를 배려하며 과제를 하거나 시험공부를 할 때마다 매번 많은 도움을 주었거든요. 미국에서 공부를 할 당시에는 아무리 사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성과가 걸린 경우에는 도움을 주는 경우가 없었기에 한국 친구들에게 더욱더 고마운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한국 친구들의 경우에는 똑같은 경쟁을 하더라도 혼자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며 서로 성장하려는 모습을 보였으니까요 덕분에 저는 서투른 한국어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네요. 하지만 불행은 기뻐해야 할 순간 닥쳐 오더군요. 어머니께서 암에 걸린 것이었죠. 어머니께서는 문자와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잘 지내고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처음에는 믿기 힘들었어요.   세 달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암이라니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이 있다면 어머니가 걸리신 암은 암 중에서 완치율이 90% 되는 갑상 선함에 걸렸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기에 어머니께서도 아무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저를 다독여 주셨습니다.   ‘이까짓 따위 기꺼이 이겨내겠다.’ 말씀하시면서 태연한 척 하였지만, 그럼에도 저는 덜컥 겁이 났어요. 아무리 착하다고 한들 암이란 병 자체가 원래 위험하니까요. 어머니께서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자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 마저도 잘못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럴 때마다 룸메이트들은 진심으로 어머니를 걱정하며 위로를 해 주더라고요. 아마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를 해주는 친구들이 없었다면 저는 정말로 힘든 순간을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   어머니가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는 말을들은 후 곧장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어머니께서는 계속해서 반대를 하셨습니다. 와봤자 걸림돌이 될뿐더러 교환학생 생활을 잘 마치고 오는 것이 제일 큰 도움이 된다고요. 그러면서 다시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왔을 때는 건강하게 완치를 해 있을 거라며 장난스레 말씀하기도 하셨어요.   아픈 와중에도 걱정을 할까 웃어넘기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고개가 저절로 떨어뜨려주면 그동안 내가 참 어머니에게 무심하고 못된 딸이었나 것을 깨닫게 되더군요 하지만 문자와 전화로 어머니에게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기에 저는 메일을 통해 어머니에게 구구절절하게 제 마음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어머니를 사랑하는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한 반성 같은 것으로요 어머니 역시도 평소에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셨기에 답장이 왔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와보니 어머니께 답장이 와 있더라고요. 그리고 메일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메일을 보낸 사람은 어머니가 아닌 생판 모르는 남이었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낯간지러운 편지를 보냈다는 생각에 창피하고 민망하기도 했지만, 정성스레 보내주신 답장을 읽자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불안했던 마음이 진정되었는데 답장에는 어머니가 저를 얼마나 어여쁘게 여길지 이 사실을 어머니가 알게 된다면 무척이나 힘이 될 거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으니까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보낸 답장이었다.   내용의 답장은 저의 불안을 잠재워 줄 뿐 아니라 마음을 따뜻하게 잘못 보낸 메일로 이어진 인연은 이날 이후로 쭉 이어지게 되었죠. 메일에 답장해주신 분께서는 저와 동갑인 딸아이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이 때문에 제가 보낸 메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거고요.   아주머니께서는 딸의 마음이 궁금할 때면 저에게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걱정될때면 아주머니에게 메일을 보냈고요. 비록 얼굴 한번 제대로 본 적 없는 사이였지만 두 개월 동안 주고받은 메일이 쌓여가며 아주머니와 친밀감이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학교 축제에 그 한국인 아주머니를 초대하기지 한 것이었어요.   축제 당일 저는 룸메이트들과 전을 구워서 팔게 되었어요. 저는 어렸을 적 아버지와 즐겨먹던 한국 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어요. 원래라면 어머니에게 직접 만든 전을 대접해 드리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미국에 계신 데다가 항암 치료 중이셨고 전을 드시지 못하셨기에 아주머니 아이라도 제가 만든 전을 꼭 드셔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네요.   마음이 어려운 순간 힘이 돼 준 아주머니에게 직접 만든 음식을 꼭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까요. 준비가 다 끝났을 무렵 다나한 차림에 중년 여성분이 찾아오셨고 저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그동안 수차례나 메일을 주고받았던 아주머니에게 김치전을 내어 드리며 마음이 힘든 순간 위로를 메일로 위로를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자 아주머니께서는 오히려 제게 고맙다며 인사를 하시더군요.   그러더니 사실 자신은 거짓말을 했다며 사과를 하기까지 하셨죠. 의외의 이야기에 잠시 뜸을 드리자 아주머니께서는 입을 여시며 제가 몰랐던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사실 저와 동갑이라 아주머니의 딸은 3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그러면서 남편도 없이 애지중지 키우던 딸이 한순간에 사라지자 그 빈자리를 견디지 못하고 몇 태가 지나도록 참 많이도 힘들었다고 그리고 제가 메일을 보낸 날은 딸의 두 번째 생일날이었다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제가 보낸 메일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고 하셨어요. 하늘에 있는 딸이 자신에게 보낸 말 같아서요 입을 꼭 다물며 손으로 눈물을 훔치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저도 가슴이 먹먹해져 오더군요.   아버지가 떠난 후 어머니께서도 이렇게 간절하고 힘들게 나를 키우셨겠지. 스스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난 뒤 아주머니께서는 제 손을 잡으시며 부탁을 해오셨어요. 저만 괜찮다면 자신이 한국의 엄마가 되어주면 안 되겠냐고 아주머니같이 다정하신 분이 챙겨 주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기에 저는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후로 아주머니와 허물없는 사이가 된 저는 주말이면 아주머니 댁으로 놀러 가게 되었어요. 그럴 때마다 아주머니께서는 제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정성스럽게 차려 주셨죠. 게다가 늦은 시간까지 기숙사에 돌아가지 않는 날이면 아주머니께서는 직접 저를 데리러 오시기도 하 더라고요. 딸이 늦으면 엄마가 데리러 가는 법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참 감사했지만, 어머니의 상태를 전해들은 아주머니께서는 어머니를 한국으로 모셔와 주기까지 하셨어요.     차도가 보이지 않은 어머니를 직접 치료해 주신다고요. 아주머니께서는 대학병원 출신 의사거든요. 어머니의 수술이 끝난 뒤 아주머니에게 전해 듣기로 조금만 늦었어도 상태가 좋지 않아 큰일이 날 뻔했다고 하셨죠. 직접 어머니의 수술까지 해 주신 아주머니에게 감사함과 동시에 울컥 화가 나기도 했어요.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악명 높은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위독한 환자에게 아주 혹독하게 굴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치료며 수술비까지 한국의 4배 이상 비싼 금액을 지불하면서까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했고요.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된 어머니께서는 아주머니에게 너무 큰 은혜를 받았다며 어쩔 줄을 몰라 하셨어요. 그러자 아주머니께서는 이렇게 착하고 예쁜 딸을 한국으로 보내주신 것만으로도 오히려 감사하다며, 어머니의 인사를 사양하기까지 했으며, 어머니께서는 비록 한국에 온지 세 달이 넘어갈 무력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실 수밖에 없었지만, 어머니께서 무사히 항암 치료를 치셨다는 것만으로도 참 기쁘고 안심이 되었어요.   그리고 아주머니와 함께 공항으로 배웅 가는 날 어머니께서는 자신이 한국을 잘못 생각했다며 지난날 잘못에 대해 말씀을 해 주셨어요. 한국만큼 인정이 넘치고 살 만한 곳을 찾아볼 수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죠. 사실 고양인 샌프란시스코만 하더라도 봉사활동을 하거나 직계 가족이 아닌 이상 한국처럼 도움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어머니의 말씀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어요. 어머니가 갑상선암을 완전히 완치한 후 저는 아주머니를 뉴맘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미국에 계신 어머니의 수술까지 맡아 주신 아주머니는 가족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10년 후 경제적으로 탄탄한 기반이 잡힌다면 어머니를 한국으로 모셔와 아주머니와 함께 모시고 살면 좋겠습니다.  
뉴스등록일 : 2025-03-28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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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사회일반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여기 중국인 유학생들과 외국인 교수가 심각한 언쟁을 벌이고 있는데, 그런데 갑자기 교수가 중국인 학생을 향해 키와 몸무게가 어떻게 되냐고 묻자 중국인 학생은 입을 꼭 닫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곳 강의실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미국의 스탠포드 의과대학의 제학 중인 실습과 학생 프랜시스라고 합니다. 이제 막 1학년 과정을 진행 중인 저는 학교 지침 사항에 따라 의과 전공 분야는 물론 제가 평소 관심 있어 하던 체육학과의 교양 강의까지 참석하며 평온한 학교생활을 하는 상태인데요, 특히나 최근 체육 교양 강의 교수님께서는 선진국의 나라일수록 평균 신장이 큰 이유를 조사해 오라며 간단한 과제를 내주셨고 저는 그중 매우 독특한 나라인 한국을 선택해 자료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은 평균 키가 작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놀랍게도 한국은 최근의 통계 자료인 10대의 평균 신장에서 미국 학생들의 평균 신장을 뛰어넘는 평균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고 20대와 30대의 평균 신장에서 미국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 평균 신장을 보이고 있더군요.   이는 같은 아시아권의 나라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통계자료였다. 평균 신장에서 무려 4cm 정도 차이가 나고 있던 상태였기에 저는 같은 아시아 지역의 나라인데 한국만 이렇게 키가 큰 이유가 뭘까라는 생각이 한국을 집중적으로 조사해 간단한 발표 자료를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완성에 참석한 체육 교양 강의에서 저는 한 중국인 유학생의 매우 이상한 주장을 듣고 말았는데요 그녀는 첫 번째 강의 발표자였지만 저와 발표 자료에서 겹치는 부분들이 꽤 많았는데 뜬금없이 한국은 아시아 지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 평균 신장 부분에서도 역시나 꼴찌의 기록을 보여줬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기괴한 주장을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한국인들의 평균 신장과 선진국 상관관계를 모두 조사했던 저에게는 저 중국인 유학생이 정말 자료 조사를 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상한 주장들이 많았는데요 오늘의 강의 주제에 제일 잘 맞는 나라는 아마 한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이곳에 몇몇 학생들은 저처럼 한국인들의 평균 신장과 후진국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사람들이 텐데요. 놀랍게도 현재 한국은 전 세계에서 후진국 중 가장 키가 작은 평균 신장 통계 자료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신장의 성장 과정에는 유전적인 정보와 환경도 매우 중요하지만, 한국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지 못하는 완벽하게 가난한 나라인데요, 첫 번째로 한국인들은 너무 가난해서 고기를 먹지 못해 키가 성장할 영양 구성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한국은 과거보다 아주 약간 평균신장이 상승한 기록은 있지만 어차피 중국인들의 평균 신장과 무려 10cm 넘는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요, 같은 아시아권의 나라에서 유전적인 형질도 비슷하고 기후 환경도 비슷하지만 유일하게 다른 부분은 바로 한국이 찢어지게 가난한 농경 국가라는 사실입니다.   아마 이런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성장기 학생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적절한 고기 니까, 단백질의 공급과 영양학적 구성이 갖춰져 있는 식사가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말이죠 하지만 한국처럼 가난한 나라에게 이러한 모든 것은 사치품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고기를 사서 먹을 돈이 없어서 그들이 그렇게나 자랑하는 쌀과 감자 그리고 떡으로만 식사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성장기에 있는 한국인 학생들의 길을 멈춰버리게 만들고 말았죠.   실제로 현재 한국을 한 다른 후진국의 나라들을 살펴봐도 한국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처럼 평균 신장이 작은 나라들은 모두 고기를 먹을 돈조차 부족한 완벽하게 가난한 후진국이라는 사실이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인들은 외모마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제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렇다면 한국의 연예인들이나 세계 외모 순위에 있는 많은 한국인들은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겠죠. 안타깝지만 그들 모두는 중국인들의 DNA 가지고 있는 토종 중국인이면 한국에서 그나마 부유하게 태어나 고기를 사서 먹을 돈이 있던 사람들이 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니 한국에서 연예인을 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지나치게 부풀려 마치 자신들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제일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많은 외모적으로 뛰어난 국가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고기를 먹을 돈도 없어서 국가에서 제일 중요한 학생들의 평균 키가 제일 작은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렇다면 이와 반대인 완벽한 선진국 중국은 어떨까요? 중국은 고기가 너무나 풍부하다 못해 이제는 평범한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줘도 먹지 않고 한국인들에게는 꿈의 음식처럼 여겨지는 오리고기를 많이 먹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중국은 오리를 이용한 고기들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결과물로 중국인들의 평균 신장은 한국인들과 10m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벌어지고 말았죠. 중국인과 한국인이 같이 서서 있으면 아마 다윗과 골리앗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선진국인 중국과 선진국 호소인 한국의 차이 아닐까요? 겉모습이나 언론 플레이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숨길 수는 있겠지만 겉으로 바로 드러나면서도 수술로도 불가능한 평균 신장은 데이터로 조작할 수 없으니까 말이죠. 아마 이곳에 많은 외국인 학생들도 최근에 거짓 한류 인기에 한국인들과 사귀고 싶다. 한국인들은 전부 잘생기고 키가 크다라는 이상한 소문을 믿고 있었겠지만 저는 오늘 한국의 실체를 말씀드렸습니다.   당신들이 본보기로 삼고 사귀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한국인이 아닌 키가 크면서도 잘생긴 중국인들이 사실을 말이죠. 중국 유학생과 비슷한 주제를 이미 조사했던 저로서는 들으면 들을수록 저 중국인 학생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인 학생은 이미 선진국 최고 반열에 놓여 있는 한국을 누가 들으면 고기도 못 먹는 가난한 나라로 둔갑시켜 이상한 주장을 하는 것은 물론 은근슬쩍 중국인들이 한국인들보다 키도 크고 잘생겼다며 대뜸 중국인들을 만나야 한다는 기괴한 주장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강의실에 있던 모든 학생들은 중국인 유학생 단 한 명만을 제외하고 표정이 전부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요. 특히나 바로 얼마 전 진행됐었던 교양 수업 중에는 중국인 학생들이 단체로 머리도 감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아 강의실 전체에 냄새가 진동하는 사건이 발생했었고 이때부터 저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 학생들도 중국인 학생들은 씻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피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가 한국인들보다 외모 순위도 높고 키도 크다니 그 말 자체로 너무나 모순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중국인 유학생은 오히려 강의실이 조용해지기 시작하자 키작은 난쟁이 나라 한국인들의 실체를 이제 알아버려서 충격을 받은 것이냐며 더욱더 흥분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리고 결국 저는 참다못해 강의실의 학생들을 대표해 그 중국인 유학생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특히나 이미 비슷한 주제로 자료 조사를 모두 마쳤던 상태였기에 저는 그 중국인 유학생의 자료들을 데이터로도 반박할 기회였고, 이는 평소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중국인 학생들에게 불쾌함을 느껴왔던 저에게 더할 나위 없는 복수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 제가 한마디를 던지자마자 중국인 유학생은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는데요. 혹시 중국 학생은 키가 몇인가요 저와 비슷한 주제를 선정해서 발표를 진행하셨는데 발표하신 대부분의 발언이 제가 조사한 자료와 맞지 않아 많은 수정이 필요해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계속해서 지금 중국인들은 선진국 사람들이라 고기를 잘 먹어서 키가 크다 외모가 뛰어나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고 계시는데, 정말 이렇게 생각하고 발표를 진행하신 것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제가 조사한 24년의 최신 통계 자료를 살펴보면 한국과 중국의 10대 평균 신장은 4cm 이상 차이가 나고 있고 이는 20대와 30대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거든요. 특히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중국은 20년보다 지금 24년의 평균 신장이 10대 학생들 사이에서 더욱 더 감소했다는 사실입니다. 즉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후진국으로 퇴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정말 고기를 못 먹는 가난한 후진국의 나라는 아마도 중국이 아닐까요. 이렇게나 확실한 통계 자료가 있으니까요 당신은 지금 계속해서 한국은 농경의 나라라며 거짓 주장을 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과거의 모습입니다.   지금 한국을 한번 가보세요. 중국보다 더욱 깨끗한 길거리와 도시 인프라 그리고 세계 1위에 올라 있는 거대한 공항까지 중국과는 이미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국가 자체가 엄청나게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 부유함과 국가적 성장은 자연스럽게 한국의 10대들에게 더욱 풍족한 성장 환경을 제공하고 있죠.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이미 선진국이라고 알려졌던 미국조차 한국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평균 신장과 연관을 지어 생각해 볼까요. 미국은 과거 선진국이었지만 지금 전 세계의 나라들 중 고도 비만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비슷한 경제 규모와 생활 인프라를 보여주고 있는 한국은 미국과 고도비만율 통계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죠 즉 한국에서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더욱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고기를 보충하거나 무언가를 먹는 행위 자체가 다른 나라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평범한 시대로 로 진입했다는 것이며이는 결국 평균 신장이나 몸무게를 떠나 절대적인 건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죠. 심지어 이러한 건강학적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한국은 미국인들의 평균 신장과 유일하게 비슷한 나라입니다.   아시아의 DNA 가지고 있지만, 미국인들의 평균 신장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한국의 생활 환경이 먹걸이 환경이 얼마나 뛰어난지 유추할 수 있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신이 주장한 중국은 한국에게 비교 대상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 10대들은 평균 신장에서부터 중국의 학생들과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고 이건 성장에 나갈수록 물리적으로 상당한 신체조건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죠. 그리고 이러한 모든 요소는 한국인들의 뛰어난 외모와 신장을 전 세계에 알리는 또 하나의 한류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전 세계 외모 순위에 절대적으로 한국인들이 많은 이유 또한 이와 큰 연관성이 있죠 하지만 중국인은 이 순위에 거의 없습니다. 특히 연예인이라는 특수 직업을 제외하고 일반인들의 평균 신장과 외모 그리고 피부에서 한국과 중국은 같은 아시아지역의 나라가 맞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특히나 당신들은 씻지 않는 문화를 오히려 존중하는 이상한 사회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나요.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이곳 강의실에서 중국인 학생들이 단체로 샤워를 하지 강의에 참석해 모두가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국인 학생들은 미안함을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중국에서는 씻는 것 자체가 가난한 사람들이나 하는 행위라며 자신들만의 이상한 사상을 저희에게 강조했죠. 혹시 중국은 제대로 씻을 수 있는 물조차 공급되지 않아 샤워하는 물을 아끼는 것인가요. 이렇다 보니 중국인과 한국인들은 얼굴의 피부에서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한국인들은 지금 동양인이 아닌 백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맑고 고운 피부를 가진 일반적인 사람들이 정말 많지만, 중국인들은 머리를 감지 않아 기름이 흐르며 피부가 좋지 않은 외모가 평균적이고 물론 외모만으로 그 나라의 선진국의 척도를 절대적으로 확인하기는 힘들겠지만 당신의 주장처럼 중국인들은 그렇게나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을 꼬집어 주고 싶은 것입니다 . 평균 신장과 절대적인 외모 피부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중국이 한국보다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한국은 정말 살기 좋은 환경적인 도시 인프라와 영양학적 공급이 넘쳐흘러 외모를 가꿀 수 있는 나라이지만 중국은 먹고 살기에 급급한 가난한 나라이기에 나타나는 차이가 아닐까요. 한국인들과 만나고 싶다는 외국인들은 정말 많지만 중국인과 만나고 싶다는 사람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지금 한국인들은 전 세계인의 매력을 주목시키고 있는 뛰어난 국가이고 평균적인 키까지 커서 선진국을 아예 초월해 버린 새로운 개념의 나라처럼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들이 있기에 지금 한류라는 트렌드가 더욱 인기를 끌며 한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한국 관광이 인기가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당신은 한국과 중국인들의 한 달 생활비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고 있나요 한국인들은 평균적으로 100만 원 이상은 물론 30대로 가면 200만 원 이상의 생활비를 지출하는데 거리낌이 없지만, 중국은 월급 자체가 너무나 적다 보니 한 달 생활비가 고작 15만 원 선에 그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삶의 질에서 10배 크게는 20배 이상 차이가 나고 있다는 말이죠. 당신도 지금 그러한 중국의 가난한 실체 때문에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것 아닌가요? 심지어 한국은 한우는 물론 삼겹살마저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고기의 공급에는 이제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부유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잖아요. 오리고기는커녕 한국처럼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먹을 돈이 없어서 고구마와 감자를 주식으로 삼는 것은 바로 당신들 아닌가요? 이렇게 한국과 중국은 심각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평균 신장의 숫자마다 모습은 중국의 가난한 실체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저는 먼저 발표했었던 중국인 유학생의 발언들을 하나하나 반박해 나갔고 제 발언이 끝나기 무섭게 중국인 학생은 자신의 자리에서 몸까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요. 아마도 그녀는 꽤 화가 많이 난 것처럼 보였고, 저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까지도 중국인들이 씻지 않는 상황 자체가 너무나 불편했다면 웅성거리는 여론까지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듣던 교양 수업에는 다른 중국인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몇몇 중국인 학생들은 갑자기 자신들이 씻지 않는 것은 세계의 환경을 위해 물을 아끼고 있는 것이라며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삼겹살은 원래부터 중국의 것이었다는 기괴한 주장을 하더군요.   특히 그들은 제가 중국이 고기조차 못 먹는 가난한 나라라고 한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자신들은 고기를 사서 먹을 수 있지만, 너무 많은 육류 소비는 위험한 것이라며 오히려 한국인들의 고기 식습관이 전 세계 식문화를 망치는 나쁜 것이라는 변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저는 더 이상 그들의 말을 들어주거나 변명을 할 이유조차 없었고 그저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 그들을 무시하려고 했는데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강의실에 있던 또 다른 중국인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국인의 뻔뻔함은 구역질이 나올 정도라며 지금 한국이 고기도 먹을 수 있고 부유한 나라가 된 것 자체가 중국인들의 봉사와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한국인들의 외모도 어떻게 보면 중국인들이 물려 준 것 아닌가요? 한국은 아무런 전통도 DNA 장점도 없는 국가의 사람들인데 중국 선조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지금까지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증거들로 한국의 유명 위인들이 전부 중국인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죠.   그들이 그렇게나 자랑하는 세종 대왕도 원래는 중국인이었다. 도움을 받아 한글을 만들었지만 지금 한국 정부는 한글이 마치 한국의 고유한 글자인 것처럼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죠. 특히중국은 가난했던 한국의 중국의 전통 고기인 오리고기의 지원은 물론 각종 식습관 문화를 알려줬고 이제서야 한국인들은 그 기술을 배워서 고기를 먹고 있는 것 아닌가요? 따지고 보면 한우 또한 원래는 중국의 것이었다는 주장도 틀린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또한 평균 신장에 대해서도 계속 주장하셨는데, 한국에는 마트와 정육점이 시설 자체가 없어서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설마 이런 세부적 환경도 조사하지 않고 지금 한국이 고기가 풍부한 나라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 이겠죠. 물론 TV 나오고 있는 한국의 삼겹살이나 소고기 문화는 전부 꾸며진 것이기에 속을 수 있다고는 생각합니다만 한국인들의 주식은 쌀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즉 그들은 평균 신장이 커질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없다는 말이고 이는 최근 한국의 10대들 사이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죠. 물론 이렇게 말하면 꼭 한 명씩은 한국 학교의 급식 문화를 알고 있냐고 물어보시는데, 그렇다면 당신들은 TV 나오는 학교 급식인데 그렇게 공을 드리지 않겠습니까?   지금 전 세계의 사람들은 한국인들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고기를 생산할 수 있는 축사도 없을뿐더러 그저 쌀만 먹는 가난한 나라라고 그나마 지금 정도의 수준으로 부유해진 것도 중국의 경제적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는데 이런 식으로 중국의 도움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무시하고 여론 무리를 하게 된다면 앞으로 더는 중국 정부의 지원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아마 이 점을 제일 두려워하고 있을 텐데, 지금 한국인도 아닌 당신이 한국의 미래를 망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저희 중국인들은 잘 씻고 다닙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마음이 착해서 샤워하는 물을 아껴 자원을 보호하려는 것이고, 이는 물을 펑펑 쓰는 한국인들과의 생활 개념 차이가 다른 것뿐이죠. 즉 환경까지 생각하며 절약정신을 보이는 진정한 선진국 사람들은 바로 중국인이라는 말입니다.   제 말이 틀렸나요? 중국인 학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의실에 있던 몇몇 학생들은 교수님을 향해 당장 저 중국 학생을 강의에서 제외하라는 야유가 쏟아져 나왔고 저 또한 그녀의 어처 구니 없는 발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나 중국 학생은 세계적인 소고기 중 하나인 한국의 한우를 부정하면서 한국은 소를 키울 수 있는는 식육 시스템이 없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반복했는데요, 그런데 바로 그때 상황을 모두 지켜보시던 교수님께서 입을 열기 시작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중국인 학생들을 향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한 뒤 각각 주장에 대한 증거 자료들을 강의실 앞쪽 단상으로 나와 보여 달라고 했지만 단 한 명도 단상 앞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었는데요. 중국 학생들은 아무런 증거 자료 없이 마치 소설의 이야기처럼 한국을 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속일 수 있게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한 것이 전부였고 교수님께서는 결국 그 중국인 학생들의 학과 번호를 메모하신 뒤 화를 내기 시작하셨습니다.   당신들이 모두 중국인이라는 사실은 유감스럽지만, 공통으로 한국을 향한 아무런 근거 없는 폄하 발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습니다. 그 어떤 나라의 학생들도 지금의 한국을 깎아내리거나 조롱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전 사실이 아닌 소설 속의 이야기들을 진실인 것처럼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대체 왜 그런 발언을 하는 것인가요? 한국에는 소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고 하셨나요? 지금 현재 선진국 순위에 있는 나라 중 축산업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나라는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한국의 한우는 그 맛과 영양성이 뛰어나 해외에 많은 미식가들도 찾아가서 먹는 일종의 고급 요리로 취급받고 있죠 하지만 중국은 아무런 특산 고기가 없지 않나요?   당신들이 자랑하는 오리고기도 그저 지형적 특성에 따라 오리가 더 많을 뿐 한국처럼 뛰어난 영양학적 구성이나 특별한 뭔가가 있지는 않습니다. 또한 중국이 한국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줬다고 했는데 대체 무슨 지원을 해줬다는 것인지 알 수 있을까요? 한국은 단 한 번도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도 기술적 지원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 중국의 대기업들이 한국의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기술력을 훔쳐오기 위해 산업 스파이를 국가적 단위로 운영하고 있지 않나요? 말 그대로 당신들은 아무런 근본과 전통도 없는 도둑질의 나라라는 말입니다. 외모적인 부분은 굳이 얘기하지 않겠습니다만, 중국인 학생들이 개인위생에 부실하다는 것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그건 당신들 스스로도 알고 있는 부분 아닙니까? 이번 강의 시간이 끝 면 중국인 학생들은 제 강의에 참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국을 향한 열등감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에서 당신들은 너무 수준이 떨어지는 중국인들입니다.  
뉴스등록일 : 2025-03-28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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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사회일반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저는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한국 전도사라고 불릴 정도로 제 인생은 한국 문화 없이는 논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다. 특히나 저는 다소 삭막했던 우리 집은 한국 드라마 하나로 완전히 뭉치게 되었다.   늘 바쁘고 피곤한 우리 집은 거의 식사도 함께하는 법이 없었고 특히나 아빠는 뭐가 그리 화가 나셨는지 일이 끝나면 늘 씩씩대며 집에 들어오시곤 했다. 그러나 제가 항상 틀어 놓은 한국 드라마에 점점 빠져들게 된 가족들은 이젠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옹기종기 모여 함께 한국 드라마를 즐기게 되었다. 그야말로 한국은 한 가정을 완전히 구원해 준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빠가 불평 아닌 불평을 해오기 시작했다.   “가브리엘 한국 드라마는 분명 내용도 참신하고 작품성도 좋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과장된 것 같지 않니 일단 배우들이 동양인 임에도 이렇게나 키가 큰 것도 비현실적일뿐더러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이 이렇게나 좋을 리도 없다.” 처음에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가 안 갔다.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은 세계에서 손꼽히게 좋다고 소문이 난 상태고 한국인들의 평균 신장은 아시아에서 가장 장 큰 것을 넘어 유럽의 웬만한 국가들보다 크다는 객관적인 통계가 있었다. 즉 한국 드라마는 현실적인 장면들만 방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여전히 고집을 멈추지 않았다. 아빠는 프랑스 정통 레스토랑을 운영 중이신데 “이곳에서 민폐를 부리며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한국인이라면서 열변을 토하면서 그들은 절대로 줄을 서지 않고 반드시 줄 앞으로 새치기를 한 뒤 자신들의 동료들을 불러 온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파렴치한 행동을 하고도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지 자신은 한국인인데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한국에서는 동료들까지 챙기는 의리를 보이는 것이 문화적인 관행이라고 주장할 뿐이지 한번은 한국인이 새치기를하려고 팔꿈치로 사람들을 치고 가는 바람에 싸움이 난 적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싸움이 났다 하면 반드시 자신의 동료들을 데려와서 집단 린치를 가하기에 항상 선량한 사람들이 다치곤 하고, 이뿐만이 아니야 한국인들은 줄이 너무 길어 레스토랑 한 마당에서 기다리겠다며 술판을 벌이곤 하는데, 이들은 정체불명의 음악을 요란하게 틀어 놓을뿐더러 웬 톡쏘는 썩은 음식들과 술을 엄청나게 먹어댄 뒤 모든 것들을 치우지도 않고 그냥 일어나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술판을 벌인 마당에는 각종 쓰레기들과 지워지지 않는 악취를 남긴다는 것이다.   이들은 항상 프랑스인들은 한국인을 좋아하니 쓰레기 정도는 치워줄 수 있지 않느냐라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해오는데 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악취와 심각한 소음까지 발생하니 대기하던 손님들뿐만 아니라 레스토랑 안에 있던 손님들도 전부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또한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어찌나 황당한 요구를 해대던지 여덟 명이 파스타 하나 시켜 놓고 번역기를 이용해 자신들은 한국인들이 인원수대로 서비스 음료를 달라니 레스토랑에서 가장 저렴한 음식 하나만을 주문해 놓고 자신은 한국인이니 대접을 받아야겠다 자기 개인 웨이터를 요구하기까지 한다.   한국인들은 음료와 소스를 5분마다 지속적으로 리필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고 현재 있는 접시를 한입 먹을 때마다 새 접시를 요구하기도 하고, 식기류와 냅킨이 여전히 깨끗하다고 해도 한국인들은 막무가내로 특별 대접을 받기를 원하며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인들은 얼마나 가난하면 그렇게 계속해서 리필한 소스를 별도의 용기에 담아서 훔쳐 가다가 걸리는 경우도 꽤 많은 거 아니 물론 이들은 그런데도 적반하장으로 나오곤 하지 하지만 한국인들의 레스토랑 출입을 금지시킬 수도 없다. 이들은 자신들의 진상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레스토랑에 인분을 싸고 가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퍼붓는 등 반드시 보복을 가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인들의 악랄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지 그런데 이래도 한국 드라마가 환상이 아니라고 할 거니”   저는 아빠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졌다. 이건 한국인이 아닌 전형적인 중국인의 특징이었다. 사실 저는 중국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저는 원래 아시아 문화에 관심 있었다가 중국은 파도 파도 괴담뿐이라 흥미를 잃었고 한국만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요즘은 한국문화가 프랑스 전역을 지배한 상황에서 중국인들은 한국인에 대한 특혜와 더 나은 서비스를 가로채고, 자기가 한국인인 척을 하며 한국 망신을 주고 있는 것 같았는데, 하지만 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한국인과 중국인은 자연스레 구분할 수 있게 되기엔 저는 아빠보고 “한국 드라마를 그렇게나 오래 봤으면서 어째서 아직까지 한국인과 중국인을 구분하기 못하는 거냐”며 질책을 할 뿐이었다.   중국인들은 키도 매우 작고 전혀 씻지를 않아서 얼굴에는 빈곤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에 반에 한국인은 한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키도 크고 세련되게 생겼다. 이런 외형만 봐도 아빠의 레스토랑에서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한국인이 아닌 전부 중국인들이 것을 알 수 있을 테죠. 그러나 아빠는 여전히 회의적인 반음을 보이신다.   “가브리엘 드라마는 드라마로 즐기는 게 좋겠구나. 애초에 한국인들의 키가 크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할 수 있거든 왜냐하면 한국은 오랜 전쟁을 거친 국가로 가난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국가지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키가 클 수가 있단 말이니 오랜 전쟁으로 영양실조와 경제적 빈곤을 겪어야 했던 다른 나라들을 좀 보렴, 이들은 아직까지도 평균 신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 심지어 한국인들은 유전적으로도 키가 작고 외소한 동양인 들이지 않니, 즉 이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는 거야”라고 말하는 아빠의 고집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한국이 우리 가족을 다시 화목하게 만들어 준 만큼, 저 또한 한국의 진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의 명예를 위해 그간의 민폐를 부렸던 것이 전부 중국인의 짓이라는 결정적인 장면을 포착함으로써, 아빠를 완전히 설득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레스토랑 안에서 저는 정말로 민폐를 부리고 있는 동양인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물론 저는 이들의 외모만 보고도 곧바로 중국인들 이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매우 좁은 어깨와 작은 키 그리고 관리라고는 전혀 안 된 촌스러운 외모 등 이건 절대로 한국인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저는 계산대에서 번역기를 들이밀며 자신은 한국인이니 할인을 해 달라며 떼를 쓰는 중국인에게 제가 독학한 한국어를 사용하며 말을 걸어보기도 했는데, 그는 역시나 한국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나 편견이 가득한 아빠는 제 말을 도통 믿으려 하지 않았고 결국 저는 특단의 조치를 내놔야 했다.   그건 바로 한국으로 직접 해외여행을 가보는 거였다. 안 그래도 아빠가 운영하시는 레스토랑의 전기 휴가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충분히 아빠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마침 아빠는 이번 휴가 때 갈 곳을 정해 놓지 않은 상태였고 저희는 이번 기회에 한국으로 여행 가기로 했다. 그렇게 도착한 한국은 역시나 대단했다. 일단 공항부터 몹시 체계적으로 되어 있었는데 승객들은 하나의 공항 안에서 지하철과 기차 버스 택시 등 자신들이 원하는 교통수단을 선택해서 탑승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공항 안에는 수많은 외국인으로 북적이고 있었지만, 전혀 혼란스러움이 복잡함 없이 빠르게 공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세계 최고의 관광 대국이자 선진국이라는 프랑스라도 프랑스공항은 혼란과 복잡함으로 아비규환인데, 그러나 한국은 체계적인 시스템과 인프라로 이러한 복잡함을 사전에 방지하고 있었고, 저는 어쩌면 한국은 프랑스보다 훨씬 더 선진적인 나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국에 감탄하며 고개를 돌리던 그때 아빠는 정체불명의 표정을 지으며 멍때리고 있었다. 그러고는 제게 놀라운 말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브리엘 한국 공항에서는 직원의 키를 보고 선발하는 거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되는 걸 그랬다.     아빠는 입국 수속을 진행하느라 한국인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큰 신장을 가진 한국인들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내내 목이 빠지라 우러러봐야만 했다고 하는데, 심지어 한국인 직원은 몹시 예의가 바른 사람인지 중년에 외국인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자 고개를 숙이며 아빠의 눈높이에 맞춰 줬다고 했다. 아빠의 키는 176cm 프랑스에서는 꽤 큰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도착부터 난쟁이가 된 기분을 느껴야만 했고 아빠는 키가 작다고 알려진 아시아에서 이런 경험을 할 줄은 예상치도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저는 공항 곳곳에 있는 딱 봐도 아빠보다 한 뼘 이상은 큰 한국인들을 가리키며 한국인들은 웬만한 유럽인들 들보다 큰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았냐며 이래도 한국 드라마는 전부 거짓이고 프랑스에서 봤던 난쟁이 진상손님들을 한국인이라고 할 거냐고 따지고 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아빠는 저 사람들은 동양계 혼혈 미국인일 거라며 한국인이 키가 크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렇게 저는 고집불통의 아빠를 데리고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등산이었다. 아무래도 프랑스에는 등산을 할 만한 마땅한 산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접근성이 몹시 떨어진다.   그러나 한국에는 눈만 돌리면 멋진 산이 존재했고 아빠는 체육 활동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그래서 저희는 한국에서의 첫 번째로 등산을 하는 다소 특이한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빠는 등산을 와서도 여전히 동공이 확장되며 허공을 응시하며, 다소 황당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제가 도대체 왜 그런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 거냐고 물어보니 아빠는 놀라운 대답을 건네 오기 시작했다.   가브리엘 내가 뒤처진 너를 기다리느라 뒤를 돌아보고 있었는데 한국인들은 분명 내가 있는 곳보다 낮은 곳에서 올라오고 있었음에도 나와 눈높이가 똑같다고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일이니 도대체 이 사람들은 동양인이 맞는 거야 그랬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아빠보다도 훨씬 큰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아빠보다 낮은 곳을 밟고 있어도 충분히 아빠와 눈높이가 똑같을 수 있었다. 아빠는 이러한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이 빠진 채 등산을 계속했지만, 한국에서의 충격적인 사건들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바로 한국에서는 노인들 마저 아빠와 저보다도 체력이 좋았다. 프랑스의 노인들은 등산은커녕 거동도 못 하는 경우가 많기에 아빠는 한국의 험준한 산에 이렇게나 많은 노인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몹시 당황하면서도 염려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막상 등산을 시작하고 보니 약해 보이기만 했던 한국의 노인들은 아직 젊은 저나 아빠보다도 훨씬 더 체력이 좋았다. 또한 한국의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만큼 키가 크지는 않았지만 덩치하는 매우 컸고 웬만한 프랑스인들보다도 어깨가 넓고 체격이 좋은 것처럼 보였다.   이건 동양인은 작고 왜소하다는 편견을 완전히 깨부수는 놀라운 모습이었다. 이러한 불가사이한 한국 중장년층들의 체격 때문인지 이들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뒤에 있었음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저희를 앞지르는 체력을 보여줬고 아빠는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국인들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만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뭐 저희의 색다른 경험은 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하산하는 한국인들은 저희에게 힘내라며 초콜릿이나 물 등 여러 음식과 생수들 주고 갔는데, 보통 프랑스에서는 남에게 이러한 호의를 베푸는 경우가 전무하기 때문에 저희는 한국인들의 친절함과 사려 깊음에 크게 감동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저희는 다소 특별했던 등산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빠의 호기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저희는 길을 걷고 있었는데 웬 대형 체육관 시설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체육 활동을 무척이나 좋아하셨기에 망설임 없이 시설로 들어갔는데 저희는 체육관의 들어감과 동시에 경악을 금치 못할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바로 체육관에는 웬 애 된 학생처럼 보이는 한국인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이들은 어림잡아도 아빠보다 두뼘 이상은 컸다. 저는 직감적으로 이곳은 한국의 학교 체육 시설인 것을 알아챘고 이 거인들의 정체는 한국의 어린 학생들일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빠는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가브리엘 이들은 분명 체육 시설에서 여가를 즐기는 한국인 주민들일 거야 성인이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키가 클 리가 없지”, 하지만 아빠는 이내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곳 고등학교의 체육 교사라고 소개한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이곳은 어떻게 방문하게 됐는지를 물어 왔다. 그리고 저희의 사정을 들은 체육 교사는 저희가 원한다면 학교를 둘러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겠다는 친절한 말까지 건네 왔다.     당연히 아빠는 그렇게나 무시하던 한국인들이 알고 보니 성인도 아닌 고등학생들조차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크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또한 이곳은 그저 일반적인 고등학교였음에도 웅장한 체육관 시설과 심지어 잔디 운동장과 농구대 배구대까지 존재하는 완벽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 한 번 더 놀랐다.   아무리 유럽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프랑스의 학교는 체육관은커녕 제대로 된 농구대도 가지지 않은 곳이 태반이 하지만 한국은 그런 프랑스를 훨씬 상회할 정도로 부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심지어 한국인 학생들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뜻하지 않은 손님인 저희를 무척이나 환대해 주었고 자신들의 배구 연습에 끼워 주기까지 하였다.   사실 아빠는 아마추어 배구 모임까지 나갈 정도로 극성인 배구 팬이었는데, 그런데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큰 키를 이용해서 스파이크까지 내려찍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아빠는 고등학생의 공격을 방어하려고 했지만 높은 곳에서 수직으로 내려 찍히는 공을 건드려 보지도 못할 뿐이었다.   물론 아빠의 스파이크는 한국 고등학생들의 큰 키 때문에 빈번히 공격 실패로 돌아갔고 아빠는 이전에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는 달리 도대체 이 상황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다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아니 어떻게 오랜 전쟁을 겪은 나라의 사람들이 이렇게나 키가 클 수가 있단 말이지 한국은 도대체가 이해를 하려야 할 수가 없는 나라구나! 그렇게 한국인들은 키가 작고 예의도 없다며 하던 아빠는 이젠 자신이 본 사람들이 한국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인정한 모양이었다.   심지어 큰 키에 한국 고등학생들에게 주눅이 들어 쓸쓸히 체육관에서 나올 뿐이었다. 뭐 아빠가 한국 고등학생들에게 겁을 먹든 말든 한국은 계속해서 놀라운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저희는 학교를 구경시켜 주겠다는 체육 교사를 따라갔고, 이내 환상적인 식단을 자랑하는 한국 학교 급식실에 들르게 되었다.   학교 급식에는 쌀 생선 고기 야채 과일과 같은 다양한 건강음식이 포함되고 있었고, 저희는 한국의 영양에 대한 감동 깊은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프랑스는 빈부격차가 심해서 사립학교가 아닌 이상 매번 영양소가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싸구려 급식만이 제공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도대체 얼마나 부유한 국가면 그저 평범한 고등학교에서도 영양소가 완벽하게 고려된 고급 식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상급식까지 실시할 수가 있는지 아빠는 이제 한국 드라마는 오히려 한국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말을 완전히 바꾸고 말았다.   그런데 아빠는 여전히 의문을 거두지 않았다. 아빠는 불과 수십 년 전에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나라의 사람들이며, 그것도 유전적인 한계가 있는 동양인들의 신장이 이렇게나 큰 건 말이 안 된다며 한국인들의 비밀을 반드시 풀어야겠다 날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는 다소 뜬금없게도 한국의 발전사를 공부하기 위해 박물관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저희는 경악을 금치 못할 한국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한국은 전쟁뿐이 아니라, 영향 결핍을 겪었었던 일본의 식민지 지배 동안 경제 정책들은 한국인들의 희생을 위해 일본의 이익을 주기 위해 고안되었다.   한국인들은 많은 양의 쌀과 다른 필수 작물들을 전부 일본으로 수출해야 했고 한국인들은 충분한 식량 공급 없이 불충분한 영향상태로 남겨졌다고 했다. 이것은 한국인들의 신체적인 성장과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한 영양실조로 이어졌다.   그리고 업 친데 덮친 격으로 한국의 열악한 생활환경과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부족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했다. 결국 부적절한 영향 열악한 의료 및 가혹한 생활 조건의 조합이, 이 기간에 한국인의 평균 신장을 크게 감소시켰다고 했다.   한국 전쟁은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결국 한국은 폐허가 되었고 농업 기반 시설은 파괴되었고 이러한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은 한국의 극심한 가난과 식량 부족으로 특징 지어졌고 영양실조를 해결하는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전후 초기에 한국은 극심한 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 원조에 크게 의존했다고 했다. 기관들과 다양한 비정부 기구들은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식량 공급과 의료 지원을 제공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가 이러한 원조에 기대는 것으로 끝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은 농촌 사회를 현대화하고 농업 관행을 개선하며 식량 생산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운동은 농촌 경제를 변화시키고 식량 부족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무래도 이때쯤에는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원래 가졌던 키를 어느 정도 되찾은 상태였죠 그러나 한국인들은 여전히 배가 고팠다. 한국인들은 그동안의 착취와 전쟁으로 인해 보여주지 못한 자신들의 끈기와 헌신을 보여주려는 듯 전 세계에서 단 한 번도 찾아볼 수 없었던 놀라운 정신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국의 일반 시민들은 공장들과 산업 일자리들 오랜 시간 일을 함으로써 놀라운 헌신을 보여주기 시작했는데, 한국의 산업화 초기 단계 동안 공장 노동자들은 종종 가혹한 조건에서 극도로 긴 노동 시간을 견뎌냈다.   노동자들은 하루에 12시간에서 14시간 일주일에 6일을 공장에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이러한 조건들은 섬유, 조선, 전자와 같은 산업에서 특히 널리 퍼졌다. 놀라운 건 이러한 희생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한국인들이 감내했는 것이다.   섬유 산업의 노동자들 중 많은 이들이 젊은 여성들이었다. 덥고 시끄럽고 환기가 잘 안 되는 공장들에 일했다고 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가족을 부양하고 국가의 경제 목표에 기여해야 할 필요에 이끌려 이러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가족을 부양하고 국가의 경제 목표에 기여해야 할 필요에 이끌려 그들의 직업에 헌신했고 공장 노동자들 또한 일주일에 6일 12~14시간을 일했다.   가혹한 노동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산성과 헌신은 한국의 산업 기반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심지어 한국의 많은 부모님들은 그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상당한 희생을 하기도 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휴식 없이 일한 한국인들은 어렵게 번 돈을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닌 자녀들이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학원과 다른 교육 자원을 위해 사용했거든요 이러한 끊임없는 교육의 집중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 세대를 낳았다.   결국 한국은 경제성장과 함께 다양한 영양가 있는 음식을 더 잘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의 소득이 증가하면서 가족들은 성장에 필수적인 단백질 비타민 그리고 미네랄이 풍부한 더 다양하고 질 높은 식단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중요한 장기 동안 향상된 영양 섭취는 평균 신장의 증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한국인들은 올바른 영양 섭취와 의료 시스템 덕분에 그들의 경제만이 빠른 속도로 평균 신장이 증가할 수 있었다.   즉 한국인들은 일본의 착취와 전쟁으로 인해 잃었던 신장을 자신들의 피나는 노력과 헌신 미래 세대를 위한 희생을 감내하면서 빠르게 회복했고 심지어 어쩌면 자신들이 원래 가진 유전자까지 초월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평균 신장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의 평균 신장이 일부 유럽 국가들을 능가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고 이 놀라운 성취는 단지 향상된 생활 수준의 반영일뿐만 아니라 역사적 역경을 극복한 한국의 능력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아빠는 한국의 이러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보고 눈시울까지 불혔다.   아빠는 자신이 지금껏 이런 훌륭한 나라를 오해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이제는 한국의 명예를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 싸워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오기까지 했다. 실제로 아빠는 중국인들과의 전쟁을 선포한 상태인데, 저는 아빠에게 약간의 한국어를 가르쳐 준 상태고 이제 한국인의 외모적 특징을 완전히 인지하게 된 아빠는 한국인인 척하는 중국인 손님이 오면 한국어를 사용하며 질문을 건다고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을 못 할 시 곧바로 쫓아내 버리는 중이라고 하는데, 저는 새로운 한국 지키미가 탄생해서 매우 뿌듯한 상태고 한국문화가 점점 더 프랑스를 장악해 가는 지금 아마 이러한 프랑스 내의 한국 지킴이는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뉴스등록일 : 2025-03-28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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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지역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초로 운영 중인 초등주말돌봄 프로그램 ‘꿈낭*’이 동지역을 넘어 올해부터 읍면지역까지 서비스를 확장했다. * 꿈나무로 상징되는 아동과 나무의 제주어 ‘낭’을 함께 표현한 단어로, 주말돌봄센터가 아동들이 창의성 있는 꿈나무로 자라도록 돕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   제주특별자치도는 22일부터 제주시 한림읍 수원초등학교와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초등학교에서 꿈낭 운영을 시작했다. 이로써 기존 아라초와 동홍초 등 동지역 2개소를 포함해 총 4개 학교로 확대됐다.   제주지역은 맞벌이 가정 비율이 63.5%로 전국 평균(46.1%)을 크게 웃돌아 돌봄 서비스 수요가 높다. 특히 읍면지역은 동지역보다 돌봄 인프라가 부족해 이번 서비스 확장이 더욱 의미를 갖는다.   제주도와 도교육청이 함께 발전시켜온 꿈낭은 올해부터 농협중앙회 제주지역본부까지 참여하면서 협력 네트워크가 더욱 강화됐다.   읍면지역 꿈낭 운영을 위해 교육청은 학교 교실 시설개선 공사를 담당하고, 농협중앙회 제주지역본부는 읍면지역 아동 급식비 1,000만 원 지원과 함께 문화체험, 농촌체험활동, 금융·경제 프로그램 등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제주도는 22일 제주시 수원초등학교에서 읍면지역 확대를 기념하는 꿈낭 개소식과 1주년 기념식을 함께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고우일 농협중앙회 제주지역본부장을 비롯해 제주도의회 보건복지안전위원회, 관계자 및 꿈낭 이용 아동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꿈낭을 이용해온 아라·동홍초 학생들의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인사말 및 축사, 돌봄교사 소개, 꿈낭 1주년 성과 영상 시청, 농협 지원금 전달식, 기념 퍼포먼스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오영훈 지사는 “꿈낭은 아이 키우기 좋은 제주를 만들기 위해 제주도와 교육청, 지역사회가 함께 이룬 협력의 결실”이라며 “최근 행안부의 늘봄 연계형 협력모델로 제주의 ‘꿈낭’이 선도사례로 제시되는 등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1년 전 개소식에서 서먹서먹했던 모습으로 만났던 학생들을 오늘 행사에서 공연도 하며 씩씩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되어 매우 뜻깊다”고 “제주도정은 꿈낭이 어린이들에게 더 나은 꿈과 미래를 심어주는 돌봄시스템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덧붙였다.   꿈낭은 제주도와 도교육청이 협력해 만든 전국 최초의 초등 주말돌봄 사업이다. 학교시설을 활용해 돌봄이 필요한 6~12세 아동에게 주말 돌봄을 무료로 제공한다.   지난해에는 늘봄학교와의 연계 및 협력 우수사례로 인정받아 행정안전부 장관상과 특별교부세 1억 5,000만 원을 지원받았다.   꿈낭은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분야별 전문가, 지역주민, 자생단체 강사 등이 참여해 종이접기, 체육활동 등 흥미 위주의 교육과 함께 학습 및 문화활동, 지역사회 인프라를 통한 다양한 체험활동도 진행한다.
뉴스등록일 : 2025-03-23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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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지역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제주특별자치도는 22일 오후 중앙병원 대강당에서 ‘간호법 시행, 대한민국 간호 100년 새롭게 시작하겠습니다’를 주제로 ‘제62회 제주도 간호사회 정기 대의원총회’가 열렸다고 밝혔다.   이날 총회에는 도내 의료기관, 보건(지)소, 보건진료소, 학교 등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을 대표하는 대의원 등 170여 명이 참석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을 비롯해 관련 단체장 및 도의원 등도 참석해 현장에서 헌신해온 간호사들의 노고를 격려했다.   오영훈 지사는 이날 인사말에서 △제주형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제주형 건강주치의 제도 △의료취약지 원격 협진 등 제주도정의 주요 의료 정책을 설명하며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간호사회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오영훈 지사는 “코로나19 팬데믹과 의료 공백 시기에도 도민 곁을 묵묵히 지켜온 간호사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에 도민을 대표해 감사드린다”며 “제주도정은 간호사 여러분의 전문성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의료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제주도정은 지속가능한 지역 건강관리 체계 구축을 위한 다양한 의료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제주도정의 든든한 동반자로서 의료 취약지역 없는 제주 실현을 위해 적극적인 관심과 협력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행사에서 오영훈 지사는 최일선 현장에서 대민 간호업무를 헌신적으로 수행해 온 유공 간호사 등 13명에게 표창을 수여하고 그간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편, 제주도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구축을 위한 1차 의료체계 혁신을 위해 올해 읍·면지역 ‘의료취약지 원격협진’ 사업 대상자를 확대 발굴하고, 오는 7월부터는 ‘제주형 건강주치의 시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뉴스등록일 : 2025-03-23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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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지역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제주특별자치도는 21일부터 23일까지 서귀포시 일원에서 ‘제14회 서귀포봄맞이축제’가 진행된다고 밝혔다.   ㈔서귀포문화사업회(이사장 이석창)가 주최하는 이번 축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봄을 맞이하는 서귀포에서 봄꽃과 마을을 연결하는 시민 주도 참여형 행사로, 올해 제주도 지정 유망축제로 선정된 바 있다.   행사 첫날인 21일 서귀진지에서는 평화와 장수를 기원하는 남극노인성제* 재현 등이 진행됐으며, 23일 표선면 가시리에서는 열대·아열대·난대 식물 문화탐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 한반도에서 노인성을 유일하게 관측할 수 있는 곳이 서귀포라는 점을 감안, 나라의 평안과 백성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한 고려와 조선시대 국가제사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22일 주 행사장인 서복공원을 방문해 전통음식체험, 진달래꽃 화전놀이, 빙떡 및 별떡 체험, ‘먼 훗날의 서귀포를 나누어 드립니다’라는 주제의 꽃나눔 행사 등에 도민 및 관광객들과 함께 참여했다.   오영훈 지사는 “서귀포봄맞이축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이 시작되는 서귀포의 다채로운 봄꽃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축제”라며 “특히 올해는 제주도 지정 유망축제로 선정돼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축제는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동력으로 평소 지나치기 쉬운 우리동네 작은 가게와 전통시장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며 “제주도정은 도민과 관광객들이 서귀포 봄맞이축제를 함께 즐기고 지역상권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오영훈 지사는 시민 주도로 전통문화와 기후변화를 알리는 행사 관계자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골목상권 이용 등 지역상권 활성화에도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뉴스등록일 : 2025-03-23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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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지역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제주특별자치도는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동홍동~서홍동 1.5㎞ 구간을 ‘사람과 자연 중심의 도로’로 새롭게 조성한다.   제주도는 교통랑 분석과 주민 의견을 토대로 당초 6차로 계획을 4차로로 변경하고, 여유 공간에 넓은 보행로와 자전거도로, 가로수를 대폭 확충하는 친환경 도로를 만들기로 했다.   이번 계획은 서귀포시 일주도로(삼성여고~서귀포여중) 개설사업의 4차로 계획과의 연계성을 고려해 수립됐다.   국토교통부 교통량정보제공 시스템의 교통량 통계(2023년 기준)와 교통량 현장조사(2024년 9월) 결과, 해당 구간의 교통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왕복 4차로 운영이 적정한 것으로 분석됐다.   서귀포시 동홍동 및 서홍동 지역의 교통량은 2020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서귀포시 도심지역 동서축은 4.40% 감소한 일 6.16만대, 남북축은 11.48% 감소한 일 6.19만대로 나타났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의 교통수요 예측에서도 서홍로~동홍로 장래 교통량이 각 일 2만대 수준으로 4차로 운영이 적정하다고 판단됐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보행자와 자연환경을 우선하는 서귀포시만의 특색 있는 ‘사람과 자연 중심 도로’를 조성하기로 했다.   기존 3.8m였던 인도폭을 최소 6.6m에서 최대 13.8m까지 확장하고, 1.5m의 자전거 전용차로를 새롭게 확보해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과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특히 이번 사업은 탄소중립을 선도하는 자연중심 공원형 보행로 조성에 중점을 뒀다. 도심 내 부족한 녹지공간을 확충하기 위해 가로수를 기존 1만 4,600본에서 4만 1,300본으로 약 3배 늘려 쾌적한 보행환경과 함께 도심 속 녹색숲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더불어 ‘느린 발걸음, 여유로운 일상, 걷기 좋은 거리’라는 기본 개념 아래 주변 환경의 특성을 살린 4개의 특화거리도 만든다. 연외천의 천연자연 풍경과 어우러지는 ‘자연친화 거리’ 주거지역 주변에 휴식공간을 겸비한 ‘정원 특화 거리’ 학생문화원 등 교육기관 밀집 지역 특성을 살린 ‘교육문화 거리’ 동홍천 산책길과 테니스공원을 연계한 ‘휴식 특화 거리’   이번 계획은 지난 7개월간(2024년 7월~2025년 2월) 10여 차례에 걸친 주민설명회와 간담회를 통해 수렴된 주민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보행환경 개선, 다양한 수목 구성을 통한 가로환경 개선, 쾌적한 휴식공간 마련, 차량 소음 저감 방안, 홍중로 교차로 개선 등 주민들의 의견을 세심하게 검토해 나가고 있다   제주도는 4월 중 보완설계를 완료하고 5월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양창훤 제주도 건설주택국장은 “이번 사업은 철저한 교통분석과 주민 의견 수렴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만큼, 서귀포시의 새로운 상징이 될 것”이라며 “걷고 싶고 쉬고 싶은 공간을 겸비한 새로운 도시 공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뉴스등록일 : 2025-03-23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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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AX 전문기업 LG CNS가 창고 자동화 물류 로봇을 앞세워 북미 물류 자동화 시장 진출에 나선다.   LG CNS 창고 자동화 물류로봇 ‘3D 모바일 셔틀’이 물품 운송을 위해 물류창고 선반을 이동하는 모습   LG CNS는 3월 17~20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 맥코믹 플레이스(McCormick Place)에서 열린 세계 최대 물류 자동화 전시회 ‘프로맷(Promat) 2025’에 참가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창고 자동화 물류 로봇 ‘3D 모바일 셔틀[1]’과 스마트물류 솔루션을 공개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LG CNS가 새롭게 개발한 ‘3D 모바일 셔틀’은 물류창고 선반 내 물품을 수십, 수백대의 셔틀 로봇이 이동하며 운송·보관하는 자동화 로봇이다. 기존 설비는 좌우 두 방향으로만 움직여 물품 이동에 제약이 있고, 복도마다 선반을 설치해야 해 창고 공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했다. ‘3D 모바일 셔틀’은 상하좌우 네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효율적으로 물품을 운송·보관할 수 있다. LG CNS는 ‘3D 모바일 셔틀’에 수학적 최적화 기술을 적용해 물류 운영 효율을 극대화했다. 이를 통해 창고 이용 면적도 20% 이상 절감할 수 있다. 특히 ‘3D 모바일 셔틀’은 일반 화물뿐만 아니라 자동차 배터리와 같은 원통형 화물도 안전하게 운송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제조, 유통,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은 ‘3D 모바일 셔틀’을 도입할 때 셔틀 로봇의 종류와 소재까지 선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배터리 공장의 경우 화재 예방을 위해 내연성 소재를 적용할 수 있다. 또, ‘3D 모바일 셔틀’은 미국 전기·전자·기계 설비의 필수 안전 규격인 UL 인증을 획득했다. LG CNS는 물류 자동화 설비와 이기종 로봇을 통합 관제할 수 있는 스마트물류 솔루션도 선보였다. 이 솔루션은 △자동화 설비의 실시간 모니터링 및 원격 제어 △자율이동 로봇 최적 경로 관리 △트래픽 관리 △모니터링 등 통합 관제 기능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고객은 물류창고의 물동량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물류비용과 운영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 이 솔루션은 실시간으로 수집한 물류 자동화 설비와 로봇의 데이터 기반 AI 분석을 통해 장애 진단 및 유지보수 예측이 가능해 물류창고의 무중단 운영을 가능케 한다. LG CNS는 이번 전시에서 공장 물류 연계를 지원하는 자율이동 로봇과 로봇 관제 솔루션 파트너인 미국 로봇 전문기업 ‘베어로보틱스(Bear Robotics)[2]’, 고중량 화물 이송 자동화 사업 파트너인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전문기업 ‘티라로보틱스(Thira Robotics)’와 공동 부스를 운영했다. LG CNS는 지난 20년간 국내 주요 이커머스사, 택배사, 제조사들의 스마트물류 컨설팅, 설계, 구축, 운영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물류 자동화 시장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LG 계열사 대상으로도 AI, 디지털트윈, 로봇 등 첨단기술을 집약한 스마트물류 솔루션을 적용해 공장 지능화·최적화를 선도해 왔다. LG CNS 스마트물류 & 시티사업부장 이준호 상무는 “LG CNS는 스마트물류 역량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물류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며 “앞으로 북미 고객을 위한 맞춤형 물류 로봇, 스마트물류 솔루션을 제공해 고객이 성공적으로 물류 자동화를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1] LG CNS 창고 자동화 물류 로봇 ‘3D 모바일 셔틀’ [2] 베어로보틱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인공지능 기반의 모빌리티 플랫폼 회사. 협로를 안정적으로 주행하는 자율주행 기술력 및 한 공간에 최대 1000여 대의 로봇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군집 제어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뉴스등록일 : 2025-03-23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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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국방/외교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한화가 호주에 본사를 둔 글로벌 조선 및 방위산업체인 오스탈 사(社)의 지분을 인수했다. 오스탈는 미군 함정을 직접 건조하는 4대 핵심 공급업체 중 하나로 한화그룹은 이번 투자를 통해 글로벌 조선·방산 분야의 키플레이어로서의 입지를 강화할 계획이다.   오스탈 사(社) 서호주 헨더슨 조선소 전경(사진 출처= 오스탈 홈페이지)   한화는 17일 호주증권거래소 장외거래를 통해 오스탈의 지분 9.9%를 직접 매수했다. 해당 지분 외에도 호주 현지 증권사를 통해 추가로 9.9% 지분에 대한 TRS* 계약을 체결했다. 18일에는 호주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 (FIRB)에 오스탈에 대한 19.9% 지분 투자 관련 승인도 동시에 신청했다. 이번 투자는 한화시스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각각 60%와 40%의 지분을 보유한 호주 현지법인을 통해 진행했다. * TRS(Total Return Swap, 총수익스와프): 신용 파생상품으로 기초자산(주식)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자산에 연동된 수익 손실만 수취하는 금융 계약 필리 이어 오스탈 전략적 투자… 글로벌 시장 확대 광폭 행보 한화의 이번 지분 인수는 글로벌 방위산업과 조선산업의 호조 속에 오스탈와의 협력을 통해 한국, 호주뿐 아니라 나아가 미국까지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화는 이미 지난해 12월 한국 기업 최초로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글로벌 시장 확대에 나선 바 있다. 오스탈는 서호주 헨더슨과 미국 앨라배마주 모빌,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필리핀, 베트남 등에 조선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미국을 위한 선박법(Ships for America Act), 해군 준비 태세 보장법(Ensuring Naval Readiness Act)이 발의되는 등 한국을 포함한 동맹과의 조선산업 기반 확대 정책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오스탈는 미국 해군의 4대 핵심 공급업체 중 하나로 142억 호주달러에 달하는 수주 잔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 내 소형 수상함, 군수지원함 시장점유율 40~60%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기존 알루미늄 중심 수주에서 최근 강철선 건조 체제로의 전환이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한화의 글로벌 상선 및 함정 분야에서 입증된 건조 능력과 미 국방부 및 해군과의 단단한 네트워크에 오스탈의 시너지가 더해진다면 향후 수주 확대가 예상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해외사업 총괄 담당 마이클 쿨터(Michael Coulter) 사장은 “한화는 오스탈와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방위 및 조선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전략적 투자자로서 오스탈의 성장과 혁신을 지원하며, 호주 현지 방위산업 및 해군 조선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한화의 스마트 조선 및 방위산업 역량은 오스탈에 자본, 네트워크, 운영 및 기술 전문성을 제공할 수 있으며, 특히 전 세계 방위 및 조선산업에서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오스탈와의 성공적인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뉴스등록일 : 2025-03-23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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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건강정보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LG화학의 제2형 당뇨병 치료 신약 ‘제미글로’ 제품군의 역대 누적 판매액이 1조원을 돌파했다.   LG화학 당뇨약 제미글로 제품군   LG화학은 최초의 국내 개발 당뇨병 치료 신약인 ‘제미글로’ 기반 제품군(제미글로, 제미메트, 제미다파, 제미로우)의 2012년 1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합산 원외처방액(유비스트 시장자료)이 1조 659만원을 달성했다고 17일 밝혔다. 1조원 매출을 넘긴 국산 당뇨약 브랜드는 제미글로가 처음으로 출시 후 11년 연속 성장, 연평균 성장률 35%를 나타냈다. LG화학은 해외 제약사 제품이 장악한 당뇨시장에서 2003년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도전해 2012년 신약개발에 성공, 같은 해 12월 제미글로를 출시했다. 이후 1조원 규모의 국내 당뇨시장에서 1위로 도약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2023년 첫 시장점유율 선두로 올라섰고, 2024년에는 전년 대비 6% 증가한 1530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LG화학은 현재 50만명 이상의 당뇨병 환자들이 제미글로 제품군을 복용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LG화학은 차별적 고객가치 제공에 집중해 제미글로를 시장 선도 브랜드로 육성했다. LG화학은 개발 착수 이후 20여년간 총 1500억원을 투자해 풍부한 임상 근거를 축적하며, 제품 효능 및 안전성에 대한 높은 고객 신뢰를 구축했다. LG화학은 제미글로의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를 위해 40여개의 연구를 수행했고, 참여 시험자 수는 약 1만 3천명에 달한다. 또 LG화학은 제미메트, 제미다파, 제미로우 등 제미글로 기반의 복합제 사업 확대로 환자의 약가 부담을 완화시켰고, 이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 관리에도 간접적 기여를 해왔다. 일례로 2025년 3월 기준 ‘제미다파’ 약가는 동일 성분 각 단일제 합산 약가보다 최대 25%(5.1%~25.6%) 낮다. 이와 함께 LG화학은 지속적인 설비 투자 및 공정 개선을 바탕으로 당뇨병 유병률 확대 따른 제품 수요 증가에도 신속하게 대응 가능한 공급 환경을 구축했다. LG화학 손지웅 생명과학사업본부장은 “매일 수십만명의 당뇨환자들이 제미글로 제품으로 치료를 받을 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제품과 회사에 대한 고객의 두터운 신뢰 덕분이었다”며 “앞으로도 신약 연구개발에 집중해 환자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할 수 있는 의약품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LG화학은 2024년 12월 한국머크 바이오파마로부터 당뇨병 1차 치료제인 ‘글루코파지정’을 도입, 초기 당뇨병 환자부터 3제 병용요법 단계의 환자까지 폭넓게 적용 가능한 치료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
뉴스등록일 : 2025-03-23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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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기업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삼성전자가 국내 최대 세탁·건조 용량에 성능도 크게 높인 2025년형 올인원 세탁건조기 ‘비스포크 AI 콤보’ 신제품을 14일부터 판매한다.   삼성전자 모델이 2025년형 올인원 세탁건조기 ‘비스포크 AI 콤보’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2025년형 비스포크 AI 콤보는 건조 용량을 기존 제품보다 3kg나 늘려 국내 최대 18kg의 건조 용량을 달성하고, 열교환기 구조와 예열 기능 개선해 건조 시간을 20분이나 단축했다. ※ 국내 최대 용량: 세탁 용량 25kg는 2025년 3월 5일 기준 한국에너지공단에 신고된 가정용 세탁기 기준으로 최대이며, 건조 용량 18kg는 2025년 3월 10일 기준 한국에너지공단에 신고된 드럼 모델의 건조 용량 중 최대임 국내 최대 ‘18kg 건조 용량’에 최단 시간 ‘79분’ 만에 세탁·건조 끝 2025년형 비스포크 AI 콤보의 세탁 용량과 건조 용량은 각각 25kg와 18kg으로 국내 최대 용량이다. 건조 용량이 기존 제품보다 3kg 늘어났지만 제품 외관 크기는 기존과 동일해 공간을 한층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비스포크 AI 콤보 신제품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열교환기를 통해 건조 효율을 극대화했다. 열교환기의 핀(fin)을 더욱 촘촘하게 배치해 전열 면적을 약 8% 확대했다. 건조 히터를 통해 예열 기능의 효율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건조 시간을 기존 모델 대비 20분가량 크게 줄였다. ‘쾌속 코스’ 기준으로 단 79분 만에 세탁부터 건조까지 수행할 수 있다. ※ 79분: 면 50%, 폴리에스터 50% 조성의 DOE 규격 시험포 기준, 쾌속 코스 사용 시, 의류 종류 및 함수율, 특성, 세탁량 등 실사용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음 바쁜 아침에 셔츠 한 장을 단 39분 만에 세탁·건조하는 ‘셔츠 코스’, 운동이 끝난 후 땀에 젖은 운동복 등 옷 한 벌을 49분 만에 세탁·건조하는 ‘한 벌 코스’도 갖췄다. 세탁 시 에너지소비효율도 좋아졌다. 한국에너지공단이 발표한 드럼세탁기 1등급 최저 기준과 비교해 세탁 시 세탁물 1kg당 소비전력량이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 최저 기준보다 45% 낮다. ‘AI 홈’ 스크린과 빅스비로 더 편리해진 스마트홈 경험 2025년형 비스포크 AI 콤보는 7형 터치스크린 ‘AI 홈(Home)’이 탑재돼 스크린으로 다양한 코스와 기능을 한눈에 보고 손쉽게 제어할 수 있다. 특히 ‘AI 홈’ 스크린에서 집안 도면을 3차원으로 보여주고 연결된 가전의 위치와 상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3D 맵뷰(Map View)’를 활용해 스마트싱스에 연결된 기기를 편리하게 제어할 수 있다. 또 고도화된 ‘빅스비(Bixby)’를 통해 사람과 대화하듯 자연스러운 음성 제어가 가능하다. 기존에 학습되지 않은 지시나 복잡한 명령어도 이해하고 직전 대화를 기억해 연속으로 이어서 대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퍼실 딥 클린 코스가 뭐야?”라고 물으면 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어서 “그걸로 시작해 줘”라고 말하면 앞서 나눈 대화를 기억해 적절한 기능을 수행한다. 2025년형 비스포크 AI 콤보는 △AI 맞춤+ △오토 오픈 도어+ △AI 세제자동투입 등 한층 업그레이드된 기능을 두루 갖췄다. ‘AI 맞춤+’ 기능은 세탁물의 무게와 오염도·건조도 등을 감지해 AI로 맞춤 케어한다. 특히 옷감을 감지해 그에 맞춰 세탁·헹굼·탈수·건조를 수행해 관리가 까다로운 옷감도 섬세하게 관리할 수 있다. 인식할 수 있는 옷감은 기존 섬세·타월·일반 3종에 데님·아웃도어까지 총 5종으로 확대됐다. ‘오토 오픈 도어+’기능은 세탁이나 건조 후 자동으로 문을 열어두고 내부 습기를 최대 40% 제거해 세탁물을 위생적으로 관리한다. 세탁 후에는 송풍을 동작시켜 세탁물과 세탁조 내부를 위생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AI 세제자동투입’기능은 세탁물에 맞게 적정한 양의 세제를 알아서 투입해, 세제를 얼마나 넣어야 할지 등의 고민을 덜어준다. 한번 세제를 넣으면 최대 13주까지 추가로 넣지 않아도 된다. ※ 세탁물 5kg 부하, 표준세탁 코스, 세제 투입량 보통/농축도 일반 설정 기준이며, 자사 실험치로 실사용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음. 일반세제함/선택세제함 모두 일반세제 보충 시 최대 13주까지 사용 가능 2025년형 비스포크 AI 콤보 신제품은 다크스틸·실버스틸·그레이지·블랙캐비어·화이트의 5가지 색상으로 출시되며, 14일부터 25일까지 삼성닷컴과 삼성스토어에서 사전 판매를 시작한다. 출고가는 사양에 따라 389만9000원~419만9000원이다. 삼성전자는 제품 판매 개시와 함께 ‘베스트 리뷰어’ 이벤트를 진행한다. 제품 구매 후 개인 SNS에 실사용 후기를 작성하면 추첨을 통해 30만원 상당의 상품권 혜택을 제공한다. 삼성전자 DA사업부 문종승 부사장은 “소비자들의 니즈를 반영해 건조 용량은 더 확대하고 세탁과 건조 시간은 줄인 2025년형 비스포크 AI 콤보를 개발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기술 혁신을 통해 소비자들의 기기 사용 경험을 높일 수 있는 제품을 선보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등록일 : 2025-03-23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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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국방/외교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LIG넥스원(대표이사 신익현)이 3월 12일부터 14일까지 콜롬비아 까르따헤나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국제 해양방위 컨퍼런스 ‘Colombiamar 2025’ 에 참가한다. ‘Colombiamar’는 조선해양·방위산업의 발전을 위한 기술·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콜롬비아 해군과 국영조선사 코텍마르가 격년제로 주최하는 컨퍼런스 및 전시회다.   LIG넥스원 홍보부스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LIG넥스원은 함대함 유도무기 ‘해성(C-Star)’, 경어뢰 ‘청상어’ 등 해양유도무기를 비롯해, 중남미 시장 확대를 위해 HD현대중공업과 공동 프로모션을 진행 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콜롬비아의 한국전 참전용사와 가족을 초청해 전시회 관람 및 선물 증정 등 격려행사를 가진다. LIG넥스원은 중남미를 수출 전략 지역으로 설정하고 2011년 현지사무소를 개소하고 2012년부터 콜롬비아 방산·보안 분야 국제전시회인 ‘EXPO DEFENSA’에 참가하는 등 현지 획득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수출 프로모션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왔다. LIG넥스원은 이번 컨퍼런스를 계기로 콜롬비아를 포함한 중남미 국가의 군 현대화 움직임에 발맞춰 K-방산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뉴스등록일 : 2025-03-23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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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행정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경찰청은 2025. 3. 10.(월)부터 그동안 수도권에서 운영해 왔던 「고위험 범죄피해자 민간경호 지원사업」을 전국으로 확대 운영한다.   그간 경찰은 고위험 범죄피해자가 범죄 피해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보복 범죄를 당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스마트워치 지급․지능형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설치․임시숙소 제공 등의 범죄피해자 안전조치를 실시해 왔으나, 잇따른 스토킹․교제 살인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실효적인 피해자 보호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2023년 6월부터 빈틈없는 범죄피해자 보호를 위해 「고위험 범죄피해자 민간경호 지원사업」을 시범 도입하여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서 운영해 왔다.   2년간의 시범운영 기간 중 총 254명에게 민간경호를 지원하면서 단 한 건의 추가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민간경호원의 신고로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한 스토킹·가정폭력 가해자 10명을 검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민간경호 종료 후 피해자를 대상으로 만족도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한 피해자(226명) 모두 민간경호 지원에 만족하며 보복 범죄로부터 안전하다고 느꼈다고 응답하는 등 피해자 보호와 체감 안전도 향상에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 -emo["\udb82\udc06"]ji- 민간경호에 대한 만족도: 매우 만족 63%, 만족 37%    -emo["\udb82\udc0c"]ji- 가해자 보복 위험으로부터 안전 체감도: 매우 안전 75%, 안전 25%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25년 운영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전국이 균질하면서도 수준 높은 피해자 보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지원 대상은 위험도가 ‘매우 높음’인 범죄피해자 안전조치 대상자 중 경찰서 안전조치 심사위원회에서 지원 대상으로 의결한 피해자이다. 지원 기간은 최대 14일이며, 필요한 경우 시도경찰청 승인을 받아 14일 한도로 1회 연장할 수 있다.   경호 서비스의 품질을 보장하고 경호원에 의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본 사업에는 경찰청의 사전 교육을 이수한 경호원만을 배치한다.   경찰청은 “앞으로도 스토킹․가정폭력 등 관계성 범죄에 대한 가해자 격리 등 고강도 제재와 함께,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조치 수단을 추가 개발하는 등 여성 등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리는 “민간경호 지원사업은 경찰이 민간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부족한 경찰력을 보완하고, 국민을 빈틈없이 보호한 치안서비스 공동 생산의 모범 사례이다.”라며 “민간경호 지원사업의 전국 확대를 통해 전국 모든 지역에서 고위험 범죄피해자들의 평온한 일상을 지켜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뉴스등록일 : 2025-03-10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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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행정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국민의 일상을 위협하는 조직폭력 범죄에 대해 119일간(3. 4.∼6.30.) 상반기 특별단속을 실시한다.   특히, 지속해서 국민 불안을 일으키는 조폭 개입 민생침해(조폭 개입 마약, 신종사기, 도박)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단속할 것이며, 조직폭력 전담수사팀(전국 형사기동대·경찰서 341개 팀 1,614명)을 중심으로 수사력을 집중할 예정이다.   그동안 경찰은 고도화된 조직폭력 범죄 대응 역량을 바탕으로 조직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강력하게 단속한 결과, 2024년 조직폭력 범죄로 3,161명을 검거하였으며, 546명을 구속하였다.   사회 발전에 따른 범죄 추세 변화에 따라, 최근 5년간(2020년∼2024년) 전통적 조폭 범죄인 강폭력 범죄·갈취 검거 인원은 감소하였으나, 변화하는 조폭 범죄의 대표 유형인 사행성 범죄 검거 인원은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이번 특별단속의 중점 단속대상은 △조폭 개입 민생침해 범죄(마약, 사기,도박 등) △조폭 개입 불법 대부업·대포물건 등 기업형·지능형 불법행위 △집단폭행·영세 자영업자 폭력행위 등 서민 대상 폭력행위 등이다.   전년도 20∼30대 조직원을 영입하여 신규 폭력조직을 구성·활동 혐의 검거 사례가 확인됨에 따라 등에 지역 내 암약하며 각종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신규 조직에 대한 첩보 수집을 강화하고 더욱 엄중히 단속할 계획이다.   또한, 형사기동대와 경찰서 전담팀의 협업을 통해 조직폭력배의 회합 등 첩보 입수 시 초기 단계부터 대응팀을 운영, 엄중 경고 조치와 사전 현장 경력배치가 포함된 선제적 우발대비 등 예방 활동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국민 불안을 제거하는 데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경찰은 “앞으로도 지능화·다변화되는 조직폭력 범죄를 집중단속하고,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 활용 세력 과시 등 활동성이 왕성한 20∼30대 조폭에 대해서는 엄정수사하는 등 조직폭력 범죄를 발본색원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조직폭력배로부터 범죄 피해를 입었거나 이를 목격한 경우에는 신고자 신원을 철저히 보장하고 있으며, 맞춤형 피해자 안전조치를 하고 있으므로 국민의 적극적인 신고와 협조를 당부드린다.”라고 말하였다.  
뉴스등록일 : 2025-03-10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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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지역
문선옥 · http://happykoreanews.com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복지를 통한 일자리 창출, 행정 혁신, 전통문화의 현대화를 통해 ‘제주형 지역경제 활성화’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오영훈 지사는 10일 오전 도청 탐라홀에서 열린 3월 월간 정책 공유회의에서 “제주형 통합돌봄이 지역경제 활성화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고 강조하며, 복지와 행정, 문화가 어우러지는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해 4,458명이 이용한 통합돌봄 서비스는 식사 제공기관 등 서비스 지원기관의 고용 창출로 이어졌다. 1,000~2,000명 수준이던 도시락 제공이 3,000~4,000명 규모로 확대되면서 관련 예산과 일자리가 크게 늘었으며, 올해는 서비스 신청이 2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통합돌봄 서비스가 양적 확대를 넘어 보건의료 데이터로서 가치를 지닐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1만 명, 내년 2만 명으로 예상되는 이용자 데이터는 제주 특화 디지털 헬스케어의 핵심 자산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오 지사는 “돌봄이 필요한 분들의 서비스 신청은 ‘누를 끼치는 것’이 아닌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일”이라며 적극적인 홍보와 도민 참여를 당부했다.   건설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존 간접지원에서 직접지원으로 정책을 전환한다. 하도급 대금 지급보증 수수료 지원, 지역업체 참여 시 지방세 감면을 검토하고, 매입형 공공임대주택 280호 중 180호를 지역 건설사 약정·특화형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특히 건축 인허가 민원 처리 지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과도한 보완 요구를 자제하고, 부서 간 협업과 일괄처리 체계 등을 구축해 처리기간 단축에 주력할 방침이다.   오 지사는 “의지를 갖고 민원처리 결과 모니터링, 일괄처리 조직 운영 검토 등 빠른 대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새롭게 단장한 들불축제에 대해서도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부합하는 새로운 유형의 불빛축제로 거듭날 것”이라며 "더욱 자신감을 갖고 시대에 맞는 축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채꽃 축제 등 각종 축제는 지역경제의 중요한 동력인 만큼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며 공직자와 도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이 밖에도 차없는 거리 행사와 탐나는전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 확대, 디지털 민원 혁신을 위한 전자서명 기반 서비스 도입 등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뉴스등록일 : 2025-03-10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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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는 한라산 설경 탐방을 위해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올해 3월 3일까지 운영한 ‘한라눈꽃버스’에 총 5만 8,262명의 도민 및 관광객이 탑승했다고 밝혔다.   주말을 포함한 휴일기간동안 총 24일을 운행해 3만 3,545명(1,398명/일)이, 평일 총 26일간은 2만 4,717명(951명/일)이 이용했다. * 산간지역 폭설로 인한 교통통제로 10일(휴일5일, 평일5일) 미운행   제주특별자치도는 한라산 설경 탐방을 위해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올해 3월 3일까지 운영한 ‘한라눈꽃버스’에 총 5만 8,262명의 도민 및 관광객이 탑승했다고 밝혔다.   주말을 포함한 휴일기간동안 총 24일을 운행해 3만 3,545명(1,398명/일)이, 평일 총 26일간은 2만 4,717명(951명/일)이 이용했다. * 산간지역 폭설로 인한 교통통제로 10일(휴일5일, 평일5일) 미운행   한라눈꽃버스는 겨울철 1100고지를 찾는 자가용 이용자 감소를 유도하여 일대의 교통난 해소와 한라산 설경 감상이라는 특별한 탐방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해 12월 21일 제주시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1100번 버스를 시작으로, 올해 1월 25일부터는 서귀포지역 주민과 관광객 편의를 위해 서귀포등기소에서 출발하는 1100-1번 버스도 추가 운행했다.   한라눈꽃버스 운행 초기에는 주말과 휴일에만 운행했으나, 올해 한라산을 중심으로 산간지역에 내린 지속적인 강설로 설경 이용객이 급증함에 따라, 올해 1월 13일부터는 평일까지 확대 운영했다.   김태완 제주도 교통항공국장은 “다가오는 겨울에도 더 많은 도민과 관광객들이 한라산 설경을 즐길 수 있도록 한라눈꽃버스를 확대 운영할 것”이라며 “1100로의 교통혼잡 완화를 위한 대책도 함께 마련해 대중교통 서비스 품질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뉴스등록일 : 2025-03-10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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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가 도내 렌터카 시장의 건전한 영업질서 확립을 위해 타 지역 등록 렌터카의 불법 영업 근절에 나선다.   제주도는 3월부터 10월까지 렌터카조합과 합동으로 도내에서 불법 영업하는 타 지역 등록 렌터카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인다.   이번 단속은 제주 관광 특수와 성수기를 겨냥해 육지부 등록 렌터카를 도내로 반입해 불법으로 영업하는 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제주도는 렌터카업체의 차량 사용 본거지를 도외로 이관 하는 변경 신고의 경우에는 30일 이내에 선적확인서 등 차량의 도외 반출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도록 하여 차량을 도외로 반출하지 않고 불법 영업하는 행위를 집중 점검할 계획이다.   적발된 업체에는 사업 일부 정지 등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하고, 타 시·도 등록업체의 관할관청에 통보해 필요시 경찰 수사를 의뢰하는 등 강력히 대처할 예정이다. * 사업 일부 정지(차량대수 2배, 30일) 또는 대당 100만 원의 과징금 행정처분   김태완 제주도 교통항공국장은 “타 시·도 등록렌터카 불법영업 행위를 강력히 단속해 교통혼잡과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렌터카 총량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안전하고 청정한 제주 관광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대여업체 현황(2025. 2월 현재) - 전체: 111개 업체, 2만9,785대 ∙ 주사무소: 102개 업체 2만1,663대(승용 2만898대, 승합 751대, 특수 14대) ∙ 영 업 소: 9개 업체 8,122대(승용 7,704대, 승합 418대)
뉴스등록일 : 2025-03-10 · 뉴스공유일 : 2025-03-28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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