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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염색, 계절과 자연 흐름 존중해야 나오는 작품
정관채 염색장, 천연염색, 결과물보다 과정 공유할 때 가치 드러나, 가업 승계 핵심은 규모 확대보다 방향성 정립 중요, 4대 이어 5대 가업 승계
repoter : 편집부 ( todayf@naver.com ) 등록일 : 2026-01-02 10:24:48 · 공유일 : 2026-01-03 22:03:03

나주에 가면 국가무형유산(115호) 염색장 보유자 정관채 선생을 만날 수 있다. 그는 4대에 걸쳐 전통 염색의 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최근 5대 전승의 기반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척박한 천연염색 업계에서 쪽염색으로 성공한 교육자, 공예인이기도 하다. 천연염료로 옷감에 색을 입히는 장인, 정관채 염색장을 만났다. 

국가무형유산(115호) 정관채 염색장
 
■ 우리나라 천연염색, 특히 쪽염색 분야의 전통을 오랫동안 지켜오신 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산업화와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전통염색 기술을 지속적으로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전통 염색을 이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이 기술이 단순한 생업이나 작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자 지켜야 할 문화라는 인식이었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것이 빠르고 편리한 방향으로 바뀌었지만, 쪽염색은 계절과 자연의 흐름을 존중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작업입니다. 
 
그 느린 리듬을 끝까지 받아들이고 지켜온 것이 오히려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혼자만의 기술로 남기지 않겠다는 책임감이었습니다. 기록하고, 가르치고, 함께 나누는 과정을 통해 전통이 개인의 솜씨가 아니라 공동의 자산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그 축적된 시간이 오늘의 전승 기반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 국가무형유산 염색장이시기도 하지만 샛골쪽염색보존회 이사장을 맡아 천연염색 교육사업(정관채 전수교육관)을 통해 인재양성에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더군요.
 
-현재는 전통 쪽염색 전승이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도록, 일상의 교육과 발표 구조 안에서 지속되게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샛골쪽염색보존회를 중심으로 매월 1회 정기 교육을 이어가며, 염료 준비부터 환원, 염색, 관리까지 전통 공정을 단계적으로 익힐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기술의 맥락과 원리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격년으로 축제와 전시 행사를 기획해 보존회 회원들이 직접 참여하고, 각자의 작업을 사회와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전승자 개인의 작업을 넘어, 전통 염색 문화가 동시대 안에서 확장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올해 11월, KCDF갤러리에서 전통 천연염색의 감각과 동시대적 해석을 담은 기획전 ‘자연색의 감각’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현재는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쪽염색 문화를 함께 조명하는 ‘푸름의 대화’ 전시가 열리고 있으며, 이 전시는 2026년 3월까지 이어질 예정입니다.
 
쪽 염색 하는 정관채 염색장
 
 
■ 오늘날 국내 천연염색, 전통 염색 분야는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염색장님이 보시기에 현재 전통 염색 문화가 처한 현실은 어떠하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전통 염색(천연염색)을 패션 산업의 기준으로만 바라보면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생산 속도나 균일성, 대량 유통이라는 측면에서는 경쟁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은 오랫동안 전통 염색의 단점으로 지적되어 왔고, 현실적으로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같은 요소를 문화와 관광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계절에 따라 염료를 만들고, 자연의 상태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문화적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전통 염색(천연염색)은 결과물보다도 그 과정을 공유할 때 가치가 드러나는 분야이며, 이는 교육, 전시, 체험, 지역 문화와 충분히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전통 염색 문화가 처한 현실은, 이러한 특성이 아직 명확한 방향으로 정리되지 못한 상태라고 봅니다. 
 
산업, 예술, 문화, 관광 사이에서 각자의 역할과 위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모든 영역을 한 방식으로 묶으려 하기보다, 전통 염색이 가장 잘 기능할 수 있는 지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맞는 방식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4대에 걸쳐 전통 염색의 맥을 이어오셨고, 최근에는 5대 전승의 기반도 함께 만들어가고 있더군요. 가업의 형태로 전통 기술을 계승해 나가는 과정에서 느끼신 의미와,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가업의 형태로 전통 염색을 이어온다는 것은 기술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작동하는 삶의 환경과 판단의 기준까지 함께 전달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염료를 준비하는 시기, 작업의 순서, 실패를 다루는 방식까지 일상의 선택 속에서 자연스럽게 축적되어 왔고, 이러한 축적이 세대를 거치며 이어져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통은 그대로 반복되기보다 시대에 맞게 점차 현대화되고, 보다 과학적으로 이해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재료와 공정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왜 이러한 방식이 유지되어야 하는지, 어떤 부분은 조정이 가능한지에 대한 기준도 분명해졌습니다. 이는 가업 전승이 단순한 답습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지켜야 할 핵심을 선별해 온 과정이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현재는 아들이 현장에서 작업을 맡아 전통 염색을 이어가며 5대 전승의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전통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를 세대마다 고민하며 이어질 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가업 전승의 장점은 변화와 지속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는 데 있다고 봅니다.
 
자연과 호흡하는 친환경 쪽 염색
 
 
■ 유럽에서는 공예와 전통기술의 가업 전승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전통 공예 전승 환경에서 보완되거나 개선돼야 할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라고 보시는지요?
 
-최근 오스트리아와의 문화교류, ‘푸름의 대화’ 전시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유럽 역시 전통 공예와 가업 전승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환경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많이 느꼈습니다.

인디고 염색 문화 또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지만, 그들 역시 전통 공예인과 가업의 형태가 사라져가는 현실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만 인상 깊었던 점은, 각 나라의 상황은 다르지만 전통 기술이 개인의 노력에만 맡겨지지 않고 사회 전체의 문화적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국가와 국제기구의 보호를 통해 가치는 유지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전통이 제도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과 공예가의 삶 속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공예 전승 환경에서도 이러한 점이 더 보완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통 기술을 지키는 것에서 나아가, 그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지역 안에서 교육하고, 작업하고, 교류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함께 만들어져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역할이 전승자의 책임이자 과제라고 생각하며, 전통 염색이 지역과 삶 속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현장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고자 합니다.
 
■ 우리 섬유패션 업계의 2세, 3세 경영자들이 가업을 물려 받으면서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사업 확장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요?
 
-가업을 이어받은 2세, 3세 경영자들이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업 구조와 시장 환경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방식만으로는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습니다. 확장은 단순한 욕심이라기보다, 가업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인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다만 가업이라는 것은 단순히 사업체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판단 방식과 가치관까지 함께 이어받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확장하더라도, 기존 가업이 지켜온 기준과 신뢰가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히 인식하지 않으면 정체성을 잃기 쉽습니다.
 
결국 가업 승계에서 중요한 것은 규모의 확대보다 방향성입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더라도 가업의 뿌리를 이해한 상태에서 이루어질 때, 확장은 단절이 아니라 축적의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쪽 염색 인재양성의 산실 정관채 전수교육관
 
 
■ 쪽 염색의 대가 이시기도 한데 향후 우리나라 쪽 염색 사업의 문제점과 향후 비전은?
 
-쪽염색은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각 나라의 자연환경과 문화에 따라 전승 방식과 의미는 다르게 형성되어 왔습니다. 
 
우리나라 쪽염색의 과제는 기술 자체보다, 한국다운 전승 구조와 활용 방향을 분명히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쪽염색은 경제적 효율이나 결과 중심으로 접근되면서, 염료 준비와 염색 과정이 지닌 문화적 가치와 맥락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쪽풀 재배부터 염료 제조, 염색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하나의 문화적 서사로 인식하고, 이를 교육과 전시, 체험, 관광, 패션 등 다양한 영역과 유기적으로 연결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쪽염색의 비전은 대량 생산이 아니라, 과정의 가치와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다운 쪽염색이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을 때, 산업과 문화, 전승이 함께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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