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디에 가든지 무슨 일이든지 얘기하다 보면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AI이다. 일하는 모든 분야에서 AI를 잘 활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을 잘 하려면 AI와 같이 일해야 하고, 일하면서 `AI와 협업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더 빨리 처리한다`는 의미가 아닌 것 같다.
근골격계를 치료하는 정형외과 의사로서 `일을 빨리 한다`거나, `컴퓨터를 잘 사용한다`는 것보다 오히려 `그것은 일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하는 과정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많은 사람이 AI를 사용하면서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더 많은 선택지 앞에 놓이게 되며, 결과적으로 몸은 가만히 있는데 신경계는 쉼 없이 달리는 상태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AI와 협업을 잘하기 위해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업무 툴(Tool)의 목록이 아니라, 일을 대하는 몸과 신경계의 태도일 것 같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안 아프고 몸을 쓸 수가 있고 효율적인 협업이 이뤄진다`라고 보는 것이다.
AI는 생각보다 훨씬 강한 자극이다. 화면에서 쏟아지는 텍스트, 즉각적으로 피드백되는 결과 "이렇게도 가능하고 저렇게도 가능하다"는 무한한 확장성은 같이 일하는 사람의 뇌에 끊임없는 선택과 판단을 요구한다. 문제는 이 판단이 우리가 인식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깊은 신경계 차원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특히 전두엽과 시각 피질, 상부 경추와 턱, 설골 주변의 미세한 긴장은 AI와 장시간 협업할수록 자연스럽게 누적된다. 몸은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마치 신경 쓰이는 회의를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피로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과정에 신체적ㆍ구조적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데, 대개는 AI와 일할수록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턱을 고정하고, 호흡을 얕게 하게 된다. 화면을 응시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횡격막의 움직임은 줄어들고, 골반은 후방으로 밀리며 몸 전체의 탄성은 감소한다. 이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그것을 오래 유지하거나 통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AI와 협업할수록 오히려 더 의도적으로 몸을 느슨하게 만들어야 한다. 발바닥에 체중을 실어 접지를 느끼고, 숨을 들이마시기보다는 내쉬는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고개와 설골 주변의 긴장을 자주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휴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고를 위한 필수 조건에 가깝다.
AI와 협업하는 데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신경계의 과열 문제이다. AI의 속도와 양에 끌려가는 순간, 몸은 먼저 긴장하고 신경계는 과열된다. 그래서 AI와 함께 더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면, 일을 줄이기보다 신경계의 속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협업 방식을 조정해야 한다. 호흡은 더 느리게, 움직임은 더 단순하게, 판단은 더 명확하게 가져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AI는 나를 밀어붙이는 도구가 아니라, 나의 사고를 지탱해 주는 조력자가 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의 일은 이상하게도 더 오래 지속할 수 있고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며, 끝났을 때 몸이 덜 상하게 된다. 만약 `이런 형태의 몸을 유지하면서 일한다`는 것을 좀 더 의학적으로 표현한다면 `횡격막 호흡을 유지하며 골반의 동적 평형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고 표현할 수가 있다. 이 차이가 쌓이면 결국 일의 질과 삶의 질 모두에서 분명한 격차가 만들어진다.
증상이나 기능적인 문제가 생기기 전에 개인적인 상태에 맞는 여러 가지 운동이나 훈련을 하는 것인 도움이 된다. 특히 요가나 단전호흡, 필라테스, 수영 등이 호흡과 동적평형을 중시하면서 운동하는 것인데 평상시에 AI와 협업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활동으로 무척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미 증상이 나타나고 신경계의 과열 및 근골격계의 구조적 변화가 시작된 시점에서는 운동이나 훈련이 아니라, 먼저 신경계를 다시 조절 가능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 치료가 필요해진다. 이때 말하는 치료는 근육을 강하게 풀거나 관절을 빠르게 교정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신경계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이 그런 접근이다. 이미 과각성 상태에 놓인 신경계는 강한 자극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방어 반응부터 먼저 일으킨다.
그래서 빠르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신경계가 저항하지 않는 방식으로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개입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치료의 대상은 근육이나 관절이 아니라 신경계가 몸을 판단하는 기준점 자체다.
신경계는 언제나 몇 가지 핵심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이 몸은 안전한가, 지금 경계해야 하는가`를 판단한다. 두개저와 상부 경추의 상태, 경막의 장력, 골반과 천장관절의 안정성, 발과 지면의 접촉 정보 같은 것들이 바로 그 기준점들이다. 이 기준점 중 하나만 흔들려도, 신경계는 전체를 불안정한 상태로 해석하고 교감신경을 계속 켜둔다.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호흡을 깊게 하려고 해도 잘되지 않고, 이완을 의식할수록 오히려 더 긴장하게 된다.
그래서 치료적으로 가장 먼저 개입해야 할 부분은 두개–골반 축과 경막 긴장을 포함한 신경계의 중심 좌표다. 두개천골리듬 계열의 접근이나 SOT(Sacro-Occipital Technique) 계열 치료가 빠르게 반응을 이끌어 내는 이유는 환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 축을 통해 뇌간에 직접적인 안전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치료대에 누워 가만히 있는 동안 갑자기 숨이 깊어지거나, 하품이 나오거나, 몸이 따뜻해지거나, 졸음이 몰려오는 반응은 `잘 이완했기 때문`이 아니라, 뇌간이 상황을 안전하다고 재평가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학습이나 이해의 결과가 아니라, 반사적이고 생리적인 반응이다. 특히 골반과 천장관절, 그리고 그 주변 인대 시스템에 대한 개입은 신경계 안정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
골반은 단순한 하중 전달 구조물이 아니라, 신경계 입장에서 보면 자세 안정성과 생존 안전성을 판단하는 핵심 감각 허브에 가깝다. 천장관절의 미세한 비대칭이나 인대 장력 불균형이 지속되면 신경계는 계속해서 `균형을 잃을 수 있다`는 신호를 위로 올린다. 이런 상태에서는 머리 쪽에서 아무리 조절하려 해도 효과가 제한적이다.
반대로 골반의 기준점이 안정되는 순간, 사람은 이유를 잘 모른 채 `생각이 느려지고 몸이 가벼워졌다`고 느끼게 된다. 이때 사고의 질이 바뀌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하행성 안정 신호가 뇌간을 통해 다시 퍼졌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치료적 접근은 경막과 미주신경 경로에 간접적으로 작용하는 매우 부드러운 수기 자극이다. 여기서 핵심은 `치료적 행위의 강도나 테크닉의 화려함이 아니라, 신경계가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는 적절한 자극으로 치료한다`는 점이다. 상부 경추, 두개저, 설골, 흉곽 입구 같은 부위는 자율신경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아주 미세한 접촉만으로도 신경계의 톤이 바뀔 수 있다. 이런 치료를 받는 동안 환자는 종종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은데 몸이 먼저 풀린다`는 표현을 한다. 이것이 바로 치료가 훈련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환자는 노력하지 않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신경계는 이미 반응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발과 지면의 관계를 정리하는 치료 역시 빠른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신경계는 위에서 아래로만 조절되는 구조가 아니라, 아래에서 올라오는 감각 입력에도 매우 민감하다. 발바닥의 접지 정보가 불안정하면, 뇌간은 몸 전체를 불안정한 상태로 해석한다. 그래서 발아치, 족저 감각, 하퇴 회전 패턴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상부의 긴장이 풀리고 호흡이 깊어지는 변화가 나타난다. 환자 입장에서는 `왜 발을 만졌는데 머리가 편해졌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신경계 입장에서는 매우 논리적인 반응이다.
이런 치료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환자가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며,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신경계가 먼저 "아, 지금은 괜찮다"라고 판단하도록 만드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개입이다. 이미 주도권을 잃은 신경계에게 다시 주도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과정이다. 그래서 시간이 없고 상태가 많이 무너진 사람에게는 훈련보다 치료가 먼저 필요하다.
치료는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니지만 적어도 신경계가 다시 조절과 학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까지는 빠르게 데려다준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짧고 단순한 훈련이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순서가 바뀌면, 아무리 좋은 방법도 효과는 더디고 불확실해진다.
그리고 어떤 시점에는 배움보다 설명보다, 의지보다, 먼저 몸과 신경계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치료가 필요하다. 그 순간부터 AI 협업에서 개개인의 신경계의 주도권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본인에게 돌아오기 시작한다.
요즘 어디에 가든지 무슨 일이든지 얘기하다 보면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AI이다. 일하는 모든 분야에서 AI를 잘 활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을 잘 하려면 AI와 같이 일해야 하고, 일하면서 `AI와 협업을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더 빨리 처리한다`는 의미가 아닌 것 같다.
근골격계를 치료하는 정형외과 의사로서 `일을 빨리 한다`거나, `컴퓨터를 잘 사용한다`는 것보다 오히려 `그것은 일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하는 과정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많은 사람이 AI를 사용하면서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더 많은 선택지 앞에 놓이게 되며, 결과적으로 몸은 가만히 있는데 신경계는 쉼 없이 달리는 상태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AI와 협업을 잘하기 위해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업무 툴(Tool)의 목록이 아니라, 일을 대하는 몸과 신경계의 태도일 것 같다. 그래야 `지속적으로 안 아프고 몸을 쓸 수가 있고 효율적인 협업이 이뤄진다`라고 보는 것이다.
AI는 생각보다 훨씬 강한 자극이다. 화면에서 쏟아지는 텍스트, 즉각적으로 피드백되는 결과 "이렇게도 가능하고 저렇게도 가능하다"는 무한한 확장성은 같이 일하는 사람의 뇌에 끊임없는 선택과 판단을 요구한다. 문제는 이 판단이 우리가 인식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깊은 신경계 차원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특히 전두엽과 시각 피질, 상부 경추와 턱, 설골 주변의 미세한 긴장은 AI와 장시간 협업할수록 자연스럽게 누적된다. 몸은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마치 신경 쓰이는 회의를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피로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과정에 신체적ㆍ구조적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데, 대개는 AI와 일할수록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턱을 고정하고, 호흡을 얕게 하게 된다. 화면을 응시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횡격막의 움직임은 줄어들고, 골반은 후방으로 밀리며 몸 전체의 탄성은 감소한다. 이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그것을 오래 유지하거나 통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AI와 협업할수록 오히려 더 의도적으로 몸을 느슨하게 만들어야 한다. 발바닥에 체중을 실어 접지를 느끼고, 숨을 들이마시기보다는 내쉬는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고개와 설골 주변의 긴장을 자주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휴식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고를 위한 필수 조건에 가깝다.
AI와 협업하는 데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신경계의 과열 문제이다. AI의 속도와 양에 끌려가는 순간, 몸은 먼저 긴장하고 신경계는 과열된다. 그래서 AI와 함께 더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면, 일을 줄이기보다 신경계의 속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협업 방식을 조정해야 한다. 호흡은 더 느리게, 움직임은 더 단순하게, 판단은 더 명확하게 가져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AI는 나를 밀어붙이는 도구가 아니라, 나의 사고를 지탱해 주는 조력자가 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의 일은 이상하게도 더 오래 지속할 수 있고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며, 끝났을 때 몸이 덜 상하게 된다. 만약 `이런 형태의 몸을 유지하면서 일한다`는 것을 좀 더 의학적으로 표현한다면 `횡격막 호흡을 유지하며 골반의 동적 평형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고 표현할 수가 있다. 이 차이가 쌓이면 결국 일의 질과 삶의 질 모두에서 분명한 격차가 만들어진다.
증상이나 기능적인 문제가 생기기 전에 개인적인 상태에 맞는 여러 가지 운동이나 훈련을 하는 것인 도움이 된다. 특히 요가나 단전호흡, 필라테스, 수영 등이 호흡과 동적평형을 중시하면서 운동하는 것인데 평상시에 AI와 협업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활동으로 무척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미 증상이 나타나고 신경계의 과열 및 근골격계의 구조적 변화가 시작된 시점에서는 운동이나 훈련이 아니라, 먼저 신경계를 다시 조절 가능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 치료가 필요해진다. 이때 말하는 치료는 근육을 강하게 풀거나 관절을 빠르게 교정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신경계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이 그런 접근이다. 이미 과각성 상태에 놓인 신경계는 강한 자극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방어 반응부터 먼저 일으킨다.
그래서 빠르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신경계가 저항하지 않는 방식으로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개입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치료의 대상은 근육이나 관절이 아니라 신경계가 몸을 판단하는 기준점 자체다.
신경계는 언제나 몇 가지 핵심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이 몸은 안전한가, 지금 경계해야 하는가`를 판단한다. 두개저와 상부 경추의 상태, 경막의 장력, 골반과 천장관절의 안정성, 발과 지면의 접촉 정보 같은 것들이 바로 그 기준점들이다. 이 기준점 중 하나만 흔들려도, 신경계는 전체를 불안정한 상태로 해석하고 교감신경을 계속 켜둔다. 이 상태에서는 아무리 호흡을 깊게 하려고 해도 잘되지 않고, 이완을 의식할수록 오히려 더 긴장하게 된다.
그래서 치료적으로 가장 먼저 개입해야 할 부분은 두개–골반 축과 경막 긴장을 포함한 신경계의 중심 좌표다. 두개천골리듬 계열의 접근이나 SOT(Sacro-Occipital Technique) 계열 치료가 빠르게 반응을 이끌어 내는 이유는 환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 축을 통해 뇌간에 직접적인 안전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치료대에 누워 가만히 있는 동안 갑자기 숨이 깊어지거나, 하품이 나오거나, 몸이 따뜻해지거나, 졸음이 몰려오는 반응은 `잘 이완했기 때문`이 아니라, 뇌간이 상황을 안전하다고 재평가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학습이나 이해의 결과가 아니라, 반사적이고 생리적인 반응이다. 특히 골반과 천장관절, 그리고 그 주변 인대 시스템에 대한 개입은 신경계 안정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
골반은 단순한 하중 전달 구조물이 아니라, 신경계 입장에서 보면 자세 안정성과 생존 안전성을 판단하는 핵심 감각 허브에 가깝다. 천장관절의 미세한 비대칭이나 인대 장력 불균형이 지속되면 신경계는 계속해서 `균형을 잃을 수 있다`는 신호를 위로 올린다. 이런 상태에서는 머리 쪽에서 아무리 조절하려 해도 효과가 제한적이다.
반대로 골반의 기준점이 안정되는 순간, 사람은 이유를 잘 모른 채 `생각이 느려지고 몸이 가벼워졌다`고 느끼게 된다. 이때 사고의 질이 바뀌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하행성 안정 신호가 뇌간을 통해 다시 퍼졌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치료적 접근은 경막과 미주신경 경로에 간접적으로 작용하는 매우 부드러운 수기 자극이다. 여기서 핵심은 `치료적 행위의 강도나 테크닉의 화려함이 아니라, 신경계가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는 적절한 자극으로 치료한다`는 점이다. 상부 경추, 두개저, 설골, 흉곽 입구 같은 부위는 자율신경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아주 미세한 접촉만으로도 신경계의 톤이 바뀔 수 있다. 이런 치료를 받는 동안 환자는 종종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은데 몸이 먼저 풀린다`는 표현을 한다. 이것이 바로 치료가 훈련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환자는 노력하지 않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신경계는 이미 반응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발과 지면의 관계를 정리하는 치료 역시 빠른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신경계는 위에서 아래로만 조절되는 구조가 아니라, 아래에서 올라오는 감각 입력에도 매우 민감하다. 발바닥의 접지 정보가 불안정하면, 뇌간은 몸 전체를 불안정한 상태로 해석한다. 그래서 발아치, 족저 감각, 하퇴 회전 패턴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상부의 긴장이 풀리고 호흡이 깊어지는 변화가 나타난다. 환자 입장에서는 `왜 발을 만졌는데 머리가 편해졌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신경계 입장에서는 매우 논리적인 반응이다.
이런 치료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환자가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며,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신경계가 먼저 "아, 지금은 괜찮다"라고 판단하도록 만드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개입이다. 이미 주도권을 잃은 신경계에게 다시 주도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과정이다. 그래서 시간이 없고 상태가 많이 무너진 사람에게는 훈련보다 치료가 먼저 필요하다.
치료는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니지만 적어도 신경계가 다시 조절과 학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까지는 빠르게 데려다준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짧고 단순한 훈련이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순서가 바뀌면, 아무리 좋은 방법도 효과는 더디고 불확실해진다.
그리고 어떤 시점에는 배움보다 설명보다, 의지보다, 먼저 몸과 신경계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치료가 필요하다. 그 순간부터 AI 협업에서 개개인의 신경계의 주도권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본인에게 돌아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