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경제=유준상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오는 17일 오전 국회 본청 당 대표실에서 열린 시ㆍ도당위원장협의회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12년 9월19일,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오는 19일이면 그가 성공한 벤처기업가와 존경받는 교수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지 딱 5년이 된다.
그의 정치인생 5년을 상징하는 두 가지 열쇳말은 다당제와 새정치다. 안 대표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라는 거대 양당을 정치 입문의 통로로 쓰지 않았다. 2012년 대선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사퇴한 그는 2013년 11월 `새정치` 구호를 내걸고 신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그해 3월 창당하기로 한 `새정치연합`은 6월에 치러지는 전국 동시지방선거에서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구에 모두 후보를 내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2014년 3월,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과의 합당을 선언했다. 신당 창당 노선을 수정하고 거대 정당에 몸을 맡긴 셈이었다. 안 대표는 자신이 구정치로 몰아세웠던 민주통합당과 합당하는 이유를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의 `호랑이굴 체험`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15년 12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 의원들과의 갈등 국면에서 그는 자신이 만든 당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2016년 2월,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2014년에 포기한 창당의 꿈을 2년 만에 이룬 것이었다. `야권분열은 필패`라는 도그마를 극복하고 그는 20대 총선에서 39석을 얻는 돌풍을 일으켰다. 여세를 몰아 대선에 도전했지만 다자대결에서 그는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에도 뒤진 3위(21.4%)에 그쳤다. 실패였다. 방송 3사의 대선 출구조사 심층분석에서는 5년 전과 달라진 안철수 지지성향도 드러났다. 출구 조사에서 안 후보는 19~29살, 30대 유권자의 지지가 각각 19.16%, 17.9%로 평균보다 오히려 낮았다. 젊은이들의 멘토로서 큰 호응을 받았던 5년 전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정치인 안철수`의 5년은 롤러코스터 타듯 성공과 실패를 압축적으로 경험한 시기였지만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새정치`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안 대표는 국민의당 전 최고위원이 연루된 제보 조작 사건의 도의적 책임자이지만 대선 패배 4개월 만에 당대표로 복귀해 "명분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돌아온 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지역의 사회기반시설(SOC) 예산을 삭감했다며 호남에 가선 호남홀대론을, 영남에 가선 영남홀대론을 주장하고 있다. 5년 전 새정치를 표방하며 정치권에 입문했던 그가 대표적인 구정치적 행태인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1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정치인 안철수`가 "새정치의 내용을 특별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권력쟁투 쪽으로 흐르며 싸움꾼으로서 득표만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제3당의 대표로서 전향적인 정책이나 제안이 있어야 하는데 안 대표는 정부여당이라는 경쟁자를 공격해 표를 얻으려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아유경제=유준상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오는 17일 오전 국회 본청 당 대표실에서 열린 시ㆍ도당위원장협의회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12년 9월19일,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오는 19일이면 그가 성공한 벤처기업가와 존경받는 교수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지 딱 5년이 된다.
그의 정치인생 5년을 상징하는 두 가지 열쇳말은 다당제와 새정치다. 안 대표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라는 거대 양당을 정치 입문의 통로로 쓰지 않았다. 2012년 대선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사퇴한 그는 2013년 11월 `새정치` 구호를 내걸고 신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그해 3월 창당하기로 한 `새정치연합`은 6월에 치러지는 전국 동시지방선거에서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구에 모두 후보를 내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2014년 3월,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과의 합당을 선언했다. 신당 창당 노선을 수정하고 거대 정당에 몸을 맡긴 셈이었다. 안 대표는 자신이 구정치로 몰아세웠던 민주통합당과 합당하는 이유를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의 `호랑이굴 체험`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15년 12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 의원들과의 갈등 국면에서 그는 자신이 만든 당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2016년 2월,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2014년에 포기한 창당의 꿈을 2년 만에 이룬 것이었다. `야권분열은 필패`라는 도그마를 극복하고 그는 20대 총선에서 39석을 얻는 돌풍을 일으켰다. 여세를 몰아 대선에 도전했지만 다자대결에서 그는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에도 뒤진 3위(21.4%)에 그쳤다. 실패였다. 방송 3사의 대선 출구조사 심층분석에서는 5년 전과 달라진 안철수 지지성향도 드러났다. 출구 조사에서 안 후보는 19~29살, 30대 유권자의 지지가 각각 19.16%, 17.9%로 평균보다 오히려 낮았다. 젊은이들의 멘토로서 큰 호응을 받았던 5년 전과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정치인 안철수`의 5년은 롤러코스터 타듯 성공과 실패를 압축적으로 경험한 시기였지만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새정치`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안 대표는 국민의당 전 최고위원이 연루된 제보 조작 사건의 도의적 책임자이지만 대선 패배 4개월 만에 당대표로 복귀해 "명분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돌아온 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지역의 사회기반시설(SOC) 예산을 삭감했다며 호남에 가선 호남홀대론을, 영남에 가선 영남홀대론을 주장하고 있다. 5년 전 새정치를 표방하며 정치권에 입문했던 그가 대표적인 구정치적 행태인 지역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1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정치인 안철수`가 "새정치의 내용을 특별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권력쟁투 쪽으로 흐르며 싸움꾼으로서 득표만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제3당의 대표로서 전향적인 정책이나 제안이 있어야 하는데 안 대표는 정부여당이라는 경쟁자를 공격해 표를 얻으려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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