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경제=장성경 기자] 아름다운 섬 제주에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푸른 바다와 돌담, 노란 유채꽃이 어우러진 풍경 이면에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의 역사가 남아있다. 정부가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4월이면 하늘이 붉게 타오르는 제주의 비극이 있기 때문이다.
"턱에 총탄을 맞고 쓰러져 평생을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살았던 할머니가 있습니다.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평생을 약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던 `진아영 할머니`, 말을 할 수 없어 `모로기(언어 장애인의 제주 방언) 할망`이라 불렸던 무명천 할머니는 제주의 아픈 얼굴입니다"
최근 출간된 정선희 작가의 그림책 `무명천 할머니` 중 한 구절이다. 무명천 할머니 이야기는 제주 4ㆍ3 사건을 겪은 진아영 할머니의 삶을 바탕으로 그려냈다.
토벌대에 총탄을 맞아 턱이 소실된 할머니는 하얀 무명천으로 흉측해진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턱이 없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말도 잘 하지 못했으며, 지금도 경찰을 보면 공포에 떨게 되는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야 했다. 진아영 할머니의 모습은 무고한 사람들이 정치 이념에 폭도로 몰렸던 그 당시 상황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고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제주 4ㆍ3은 1947년에서 1954년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제주에서 3만여 명의 도민들이 군경에 의해 죽임당한 사건을 말한다. 광복 직후 제주도는 귀환인구의 실직난, 생필품 부족, 흉년 등 악재와 미곡 정책의 실패, 군정 경찰 등의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7년 3월 1일 3ㆍ1절 기념 제주도 대회를 구경하던 군중들에게 경찰이 총을 발사했다. 이로 인해 민간이 6명이 숨졌고, 이 사건은 제주도민의 민심을 더욱 악화시킨 계기가 됐다.
이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오히려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미군정 당국에 제주도민들은 항의하며 파업을 단행했다. 하지만 미군정 당국에서는 군경과 서북청년단을 추가로 파견해 제주도민들과 대립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3만 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학살되고 30여만 명의 도민이 연루돼 억울하게 희생당했다.
제주 4ㆍ3 사건 피해자의 가족과 시민단체에서는 계속해서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했으나 과거 군사정권 시절까지 사건의 진상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약 50여 년이 지난 1992년 12월 26일, 국회에서는 「제주 4ㆍ3 사건의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이후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전한 바 있다.
이달 제주 4ㆍ3 희생자 및 유족 5081명이 추가로 인정받아 총 7만8741명이 됐다. 제주 4ㆍ3은 한 지역에서 일어난 대한민국 역사 최대의 집단 대학살 사건이며 잊지 말아야 할 아픔이다. 정부는 앞으로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노력하고 이를 깊이 성찰하며,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또한 평화를 이뤄가기 위해 우리는 아픈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기억해야 한다.
[아유경제=장성경 기자] 아름다운 섬 제주에 봄이 찾아왔다. 하지만 푸른 바다와 돌담, 노란 유채꽃이 어우러진 풍경 이면에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의 역사가 남아있다. 정부가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4월이면 하늘이 붉게 타오르는 제주의 비극이 있기 때문이다.
"턱에 총탄을 맞고 쓰러져 평생을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살았던 할머니가 있습니다.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평생을 약 없이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던 `진아영 할머니`, 말을 할 수 없어 `모로기(언어 장애인의 제주 방언) 할망`이라 불렸던 무명천 할머니는 제주의 아픈 얼굴입니다"
최근 출간된 정선희 작가의 그림책 `무명천 할머니` 중 한 구절이다. 무명천 할머니 이야기는 제주 4ㆍ3 사건을 겪은 진아영 할머니의 삶을 바탕으로 그려냈다.
토벌대에 총탄을 맞아 턱이 소실된 할머니는 하얀 무명천으로 흉측해진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턱이 없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말도 잘 하지 못했으며, 지금도 경찰을 보면 공포에 떨게 되는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야 했다. 진아영 할머니의 모습은 무고한 사람들이 정치 이념에 폭도로 몰렸던 그 당시 상황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고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제주 4ㆍ3은 1947년에서 1954년까지 7년 7개월에 걸쳐 제주에서 3만여 명의 도민들이 군경에 의해 죽임당한 사건을 말한다. 광복 직후 제주도는 귀환인구의 실직난, 생필품 부족, 흉년 등 악재와 미곡 정책의 실패, 군정 경찰 등의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7년 3월 1일 3ㆍ1절 기념 제주도 대회를 구경하던 군중들에게 경찰이 총을 발사했다. 이로 인해 민간이 6명이 숨졌고, 이 사건은 제주도민의 민심을 더욱 악화시킨 계기가 됐다.
이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오히려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미군정 당국에 제주도민들은 항의하며 파업을 단행했다. 하지만 미군정 당국에서는 군경과 서북청년단을 추가로 파견해 제주도민들과 대립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3만 명에 이르는 주민들이 학살되고 30여만 명의 도민이 연루돼 억울하게 희생당했다.
제주 4ㆍ3 사건 피해자의 가족과 시민단체에서는 계속해서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했으나 과거 군사정권 시절까지 사건의 진상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약 50여 년이 지난 1992년 12월 26일, 국회에서는 「제주 4ㆍ3 사건의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이후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전한 바 있다.
이달 제주 4ㆍ3 희생자 및 유족 5081명이 추가로 인정받아 총 7만8741명이 됐다. 제주 4ㆍ3은 한 지역에서 일어난 대한민국 역사 최대의 집단 대학살 사건이며 잊지 말아야 할 아픔이다. 정부는 앞으로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노력하고 이를 깊이 성찰하며,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또한 평화를 이뤄가기 위해 우리는 아픈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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