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경제=장성경 기자] 지난 3월 우정사업본부는 3ㆍ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여성독립운동가 4명을 우표로 제작했다. 이번에 발행된 기념우표의 주인공은 안경신(1888~?)ㆍ김마리아(1892~1944)ㆍ권기옥(1901~1988)ㆍ박차정(1910~1944)선생 등이다. 아마도 기념 우표 발행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면 듣지 못했을 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사람들에게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를 물으면 김구,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등 몇몇 익숙한 이들을 곧잘 나열한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 외에 여성 독립운동가를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는 광복 이후 우리 사회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과 희생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여성들의 삶이 있다. 이들 여성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대한민국 최초의 여류비행사라`는 수식어를 가진 `권기옥`은 남달리 돋보이는 인물이다. 권기옥의 어릴 적 이름은 `갈네`,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나 빨리 죽으라는 뜻으로 불린 이름이다. 하지만 갈네는 여자라는 것에 자신을 한정하지 않고,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꿈을 펼칠 수 있길 바랐다.
"비행사가 돼 빼앗긴 조국의 하늘을 되찾을 거야!"라며 17세 때 미국인의 선회비행을 바라보던 소녀 갈네는 이렇게 다짐했다. 그러나 주권이 없는 나라에 비행학교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더욱이 제 이름 석 자 쓸 줄 아는 여성이 드물었던 시대에 비행술을 익힐 기회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권기옥은 청년시절부터 일제의 폭정에 맞서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평양 숭의여학교 시절 비밀결사대 `송죽회`에 가입해 독립운동 기금을 모으고, 태극기를 제작해 1919년 평양에서 3ㆍ1 만세시위운동을 벌였다. 또 임시정부 공채를 판매하고 군자금을 모으다가 혹독한 고문과 옥살이를 겪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권기옥은 1923년 임시정부의 추천으로 중국항공학교에 1기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목숨을 담보하는 고된 훈련을 견디고 그는 마침내 대한민국 첫 여류비행사가 됐다. 이후 권기옥은 중국 공군에서 복무하며 일본 본토 폭격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 무렵 중외일보에 따르면 권기옥은 다른 재중 조선인 비행가들과 함께 `중국혁명전선의 한국인 비행가`로 불렸다. 하늘 독립군 권기옥의 비행시간은 총 7000시간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광복 후 대한민국 공군창설 30주년 기념식에 선 권기옥은 "나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강철날개를 펼쳤지만, 여러분은 겨레의 화해와 평화, 인류의 도약을 위한 아름다운 날개를 펼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강철날개로 하늘을 비상했던 권기옥, 그가 걸어온 모든 행보는 조국 독립에 대한 간절한 염원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 수 있다.
권기옥 선생의 지난 삶과 업적을 짧게나마 기록해보며, 고귀한 삶에 대해 잠잠히 생각해보게 된다. 권기옥뿐 아니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아직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과 앞선 세대들이 세운 토대와 거름 위에 우리는 서있다. 그들이 꿈꾸던 독립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지금, 우리의 길은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닦여 왔음을 깨닫는다.
비록 나는 그들처럼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 분투하며 헌신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여성 독립운동가 권기옥을 소개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보인 삶의 발자취와 애국의 정신, 그리고 우리에게 남긴 평화의 유산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또 기억되길 바라며.
[아유경제=장성경 기자] 지난 3월 우정사업본부는 3ㆍ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여성독립운동가 4명을 우표로 제작했다. 이번에 발행된 기념우표의 주인공은 안경신(1888~?)ㆍ김마리아(1892~1944)ㆍ권기옥(1901~1988)ㆍ박차정(1910~1944)선생 등이다. 아마도 기념 우표 발행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면 듣지 못했을 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사람들에게 알고 있는 독립운동가를 물으면 김구,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등 몇몇 익숙한 이들을 곧잘 나열한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 외에 여성 독립운동가를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는 광복 이후 우리 사회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과 희생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기억하고 되새겨야 할 여성들의 삶이 있다. 이들 여성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대한민국 최초의 여류비행사라`는 수식어를 가진 `권기옥`은 남달리 돋보이는 인물이다. 권기옥의 어릴 적 이름은 `갈네`,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나 빨리 죽으라는 뜻으로 불린 이름이다. 하지만 갈네는 여자라는 것에 자신을 한정하지 않고,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꿈을 펼칠 수 있길 바랐다.
"비행사가 돼 빼앗긴 조국의 하늘을 되찾을 거야!"라며 17세 때 미국인의 선회비행을 바라보던 소녀 갈네는 이렇게 다짐했다. 그러나 주권이 없는 나라에 비행학교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더욱이 제 이름 석 자 쓸 줄 아는 여성이 드물었던 시대에 비행술을 익힐 기회를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권기옥은 청년시절부터 일제의 폭정에 맞서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평양 숭의여학교 시절 비밀결사대 `송죽회`에 가입해 독립운동 기금을 모으고, 태극기를 제작해 1919년 평양에서 3ㆍ1 만세시위운동을 벌였다. 또 임시정부 공채를 판매하고 군자금을 모으다가 혹독한 고문과 옥살이를 겪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권기옥은 1923년 임시정부의 추천으로 중국항공학교에 1기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목숨을 담보하는 고된 훈련을 견디고 그는 마침내 대한민국 첫 여류비행사가 됐다. 이후 권기옥은 중국 공군에서 복무하며 일본 본토 폭격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이 무렵 중외일보에 따르면 권기옥은 다른 재중 조선인 비행가들과 함께 `중국혁명전선의 한국인 비행가`로 불렸다. 하늘 독립군 권기옥의 비행시간은 총 7000시간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광복 후 대한민국 공군창설 30주년 기념식에 선 권기옥은 "나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강철날개를 펼쳤지만, 여러분은 겨레의 화해와 평화, 인류의 도약을 위한 아름다운 날개를 펼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강철날개로 하늘을 비상했던 권기옥, 그가 걸어온 모든 행보는 조국 독립에 대한 간절한 염원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 수 있다.
권기옥 선생의 지난 삶과 업적을 짧게나마 기록해보며, 고귀한 삶에 대해 잠잠히 생각해보게 된다. 권기옥뿐 아니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아직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과 앞선 세대들이 세운 토대와 거름 위에 우리는 서있다. 그들이 꿈꾸던 독립 대한민국에 살아가고 지금, 우리의 길은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닦여 왔음을 깨닫는다.
비록 나는 그들처럼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 분투하며 헌신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여성 독립운동가 권기옥을 소개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보인 삶의 발자취와 애국의 정신, 그리고 우리에게 남긴 평화의 유산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또 기억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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