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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경제_정치] ‘24년 철권 통치’, 모이 전 케냐 대통령 95세 사망
‘경제난ㆍ부패ㆍ인권탄압 저지른 독재자’
repoter : 고상우 기자 ( gotengja@naver.com )
등록일 : 2020-02-04 18:00:34 · 공유일 : 2020-02-04 20:02:38
[아유경제=고상우 기자] 아프리카 케냐를 24년 간 `철권 통치`한 다니엘 아랍 모이 전 케냐 대통령이 향년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AP, dpa통신이 4일 보도했다.
모이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이날 우후루 케냐타 현 대통령이 국영방송으로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전해졌다. 그는 숨지기 전 한 달 넘게 입원해 있었다.
직 교사출신인 모이 전 대통령은 1978년 케냐 독립의 아버지인 조모 케냐타가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한 이후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해 5번의 연임에 성공했다. 2002년 퇴임 전까지 24년 동안 대통령을 역임했고 대통령 재직 당시 케냐 군 총사령관을 겸직하기도 했다.
모이 전 대통령은 1982년 당시 케냐 쿠데타를 겪은 뒤 권위적인 통치를 확립하며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했다.
케냐 정부의 진실과 정의ㆍ화해 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모이의 통치에 반대하는 정치 활동가들은 수시로 구금ㆍ고문을 받았으며 심지어 암살도 숱하게 벌어졌다. 여기에는 외무장관 로버트 우코 살해 사건도 포함된다.
당시 케냐 정부는 냉전시대에 자본주의를 적극 수용해 서방국가로부터 칭송을 들었지만, 가혹한 인권 탄압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집권 기간 동안 케냐에서는 그를 찬양하는 노래가 만들어지고 모든 지폐와 동전에 모이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지는 등, 우상화 작업이 본격화됐다.
모이 전 대통령은 줄곧 일당 독재체제를 고수해왔지만 1991년 국내외 압력을 받아 다당제를 수용했다. 이후 그는 1992년과 1997년 대선에서 극심한 선거혼란 사태가 벌어지는 가운데 야권분열에 힘입어 승리를 얻었다.
2002년 권좌를 떠나기까지 24년 동안 그의 통치 기간은 인권 유린, 경제난, 부정부패로 얼룩져 케냐의 경제와 사회를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월드뱅크 통계에 의하면 모이 전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인 1978년 케냐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351달러였으나, 퇴임할 무렵인 2002년에는 395달러에 머물렀고 빈부 격차는 더욱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 AU경제(http://www.areyou.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아유경제=고상우 기자] 아프리카 케냐를 24년 간 `철권 통치`한 다니엘 아랍 모이 전 케냐 대통령이 향년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AP, dpa통신이 4일 보도했다.
모이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이날 우후루 케냐타 현 대통령이 국영방송으로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전해졌다. 그는 숨지기 전 한 달 넘게 입원해 있었다.
직 교사출신인 모이 전 대통령은 1978년 케냐 독립의 아버지인 조모 케냐타가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한 이후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해 5번의 연임에 성공했다. 2002년 퇴임 전까지 24년 동안 대통령을 역임했고 대통령 재직 당시 케냐 군 총사령관을 겸직하기도 했다.
모이 전 대통령은 1982년 당시 케냐 쿠데타를 겪은 뒤 권위적인 통치를 확립하며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했다.
케냐 정부의 진실과 정의ㆍ화해 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모이의 통치에 반대하는 정치 활동가들은 수시로 구금ㆍ고문을 받았으며 심지어 암살도 숱하게 벌어졌다. 여기에는 외무장관 로버트 우코 살해 사건도 포함된다.
당시 케냐 정부는 냉전시대에 자본주의를 적극 수용해 서방국가로부터 칭송을 들었지만, 가혹한 인권 탄압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집권 기간 동안 케냐에서는 그를 찬양하는 노래가 만들어지고 모든 지폐와 동전에 모이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지는 등, 우상화 작업이 본격화됐다.
모이 전 대통령은 줄곧 일당 독재체제를 고수해왔지만 1991년 국내외 압력을 받아 다당제를 수용했다. 이후 그는 1992년과 1997년 대선에서 극심한 선거혼란 사태가 벌어지는 가운데 야권분열에 힘입어 승리를 얻었다.
2002년 권좌를 떠나기까지 24년 동안 그의 통치 기간은 인권 유린, 경제난, 부정부패로 얼룩져 케냐의 경제와 사회를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월드뱅크 통계에 의하면 모이 전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인 1978년 케냐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351달러였으나, 퇴임할 무렵인 2002년에는 395달러에 머물렀고 빈부 격차는 더욱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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