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기자가 대학 신입생 때 선배들에게 종종 듣던 말 중 하나다. 보통 2월이면 대학에서는 과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다(물론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대다수 취소됐다). 이때 아직 술을 마셔본 적이 없거나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신입생에게 선배들은 이렇게 술을 강권하곤 한다. 물론 과거와 달리 이런 강요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일부 대학에서는 이런 문화가 남아 있다.
비단 대학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조금 더 연령대를 높이면 이런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누구라도 회식자리에서 술을 잘 마시지 못함에도 또는 술을 먹고 싶지 않아도, 분위기상 상사가 주는 술을 어쩔 수 없이 받아 마신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는 `술을 빼면 안 된다`는 문화가 아직도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어느 소설 제목처럼 `술 권하는 사회`다.
하지만 술은 마신다고 절대 늘어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가능하다. 술에서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성분은 에탄올이다. 에탄올은 간에서 아세트알데히드로 바뀐 뒤 다시 아세트산으로 바뀌면서 해독이 이뤄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세트알데히드다. 물론 에탄올도 매우 독성이 심한 물질이지만, 술 마신 뒤 다음날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는, 흔히들 숙취라 부르는 증상의 대부분은 이 아세트알데히드의 몫이다. 아세트알데히드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지정한 2B급 발암물질이다. 인간에게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공인된 물질인 셈이다.
이 아세트알데히드를 잘 분해하는 사람은 술을 마셔도 숙취가 적다. 하지만 아세트알데히드를 잘 분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술을 마시면 그 숙취가 오래 간다. 보통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 아세트알데히드를 잘 분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기자도 이에 속한다. 술을 마시면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 마냥 얼굴이 대춧빛이 된다.
아세트알데히드가 아세트산으로 해독되는 데는 효소가 필요한데,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은 애초에 다른 사람과 아세트알데히드 분해효소의 구조가 다르다. 정상적인 효소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는 유전자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절대 고칠 수 없다. 마치 우리가 유전병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선배들은 혹은 상사들은 `마시면 주량이 늘어난다`는 말로 기자를 비롯한 술 못 먹는 사람들의 말을 묵살한다. 사실 선배 또한 마시면 주량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주량을 늘리라는 말에는 `네가 술을 못 마시는 이유는 네가 노력을 하지 않아서`라는 뜻이 숨어있다. 또한 `네가 나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아니 어쩌면 `네가 나에게 잘 보이려면` 술을 마시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기도 하다.
고칠 수 없는 것을 바꿀 수는 없다. 이렇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 사실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비단 술뿐만이 아니다. 작게는 대학의 잘못된 군기 문화부터 크게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이나 차별까지. 우리가 겪지 않아도 되지만, 겪어야만 한다고 강요받는 것이 많다.
다행히 요새는 인식이 어느 정도 바뀌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조금은 자리를 잡았다. 좋은 흐름이다. 이제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바꾸라고 하지 말자. 일단 술 권하는 사회를 바꾸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아유경제=박진아 기자] "야, 임마! 술도 마시면 늘어. 마셔."
과거 기자가 대학 신입생 때 선배들에게 종종 듣던 말 중 하나다. 보통 2월이면 대학에서는 과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다(물론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에 대다수 취소됐다). 이때 아직 술을 마셔본 적이 없거나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신입생에게 선배들은 이렇게 술을 강권하곤 한다. 물론 과거와 달리 이런 강요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일부 대학에서는 이런 문화가 남아 있다.
비단 대학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조금 더 연령대를 높이면 이런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누구라도 회식자리에서 술을 잘 마시지 못함에도 또는 술을 먹고 싶지 않아도, 분위기상 상사가 주는 술을 어쩔 수 없이 받아 마신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는 `술을 빼면 안 된다`는 문화가 아직도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어느 소설 제목처럼 `술 권하는 사회`다.
하지만 술은 마신다고 절대 늘어나지 않는다.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가능하다. 술에서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성분은 에탄올이다. 에탄올은 간에서 아세트알데히드로 바뀐 뒤 다시 아세트산으로 바뀌면서 해독이 이뤄진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세트알데히드다. 물론 에탄올도 매우 독성이 심한 물질이지만, 술 마신 뒤 다음날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는, 흔히들 숙취라 부르는 증상의 대부분은 이 아세트알데히드의 몫이다. 아세트알데히드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지정한 2B급 발암물질이다. 인간에게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공인된 물질인 셈이다.
이 아세트알데히드를 잘 분해하는 사람은 술을 마셔도 숙취가 적다. 하지만 아세트알데히드를 잘 분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술을 마시면 그 숙취가 오래 간다. 보통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 아세트알데히드를 잘 분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기자도 이에 속한다. 술을 마시면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 마냥 얼굴이 대춧빛이 된다.
아세트알데히드가 아세트산으로 해독되는 데는 효소가 필요한데,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은 애초에 다른 사람과 아세트알데히드 분해효소의 구조가 다르다. 정상적인 효소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는 유전자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절대 고칠 수 없다. 마치 우리가 유전병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선배들은 혹은 상사들은 `마시면 주량이 늘어난다`는 말로 기자를 비롯한 술 못 먹는 사람들의 말을 묵살한다. 사실 선배 또한 마시면 주량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주량을 늘리라는 말에는 `네가 술을 못 마시는 이유는 네가 노력을 하지 않아서`라는 뜻이 숨어있다. 또한 `네가 나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아니 어쩌면 `네가 나에게 잘 보이려면` 술을 마시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기도 하다.
고칠 수 없는 것을 바꿀 수는 없다. 이렇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 사실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비단 술뿐만이 아니다. 작게는 대학의 잘못된 군기 문화부터 크게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이나 차별까지. 우리가 겪지 않아도 되지만, 겪어야만 한다고 강요받는 것이 많다.
다행히 요새는 인식이 어느 정도 바뀌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해야 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조금은 자리를 잡았다. 좋은 흐름이다. 이제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바꾸라고 하지 말자. 일단 술 권하는 사회를 바꾸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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