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경제=조은비 기자] 누구에게나 부모는 있지만 `나`를 낳아준 부모님은 전 세계에서 딱 두 명 뿐이기에, 예로부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유독 특별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단순히 `낳았기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평생에 걸쳐 보여주는 헌신과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자연히 부모님을 공경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어떤 이에게는 부모라는 존재가 생판 남보다 못한 자들이 있고, 낳아주지는 않았지만 친부모처럼 자신을 양육해준 부모가 있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낳아준 부모`라는 단어에 너무 많은 것을 허가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불거진 `구하라법` 개정안도 같은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 고(故) 구하라의 친오빠 구호인씨는 그동안 양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던 친모가 여동생이 고인이 돼서야 나타나 상속권대로 유산의 절반을 받으려 한다며 법의 개정을 추진했다. 20대 국회가 마무리되면서 `구하라법`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았지만, 구씨는 비슷한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해 21대 국회에서 해당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법이지만, 부모의 상속권에 대한 현행법은 이러한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낳아주기만 했다고 해서 그 자식에 대한 권리를 행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 부모가 자식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까지일까?
이달 1일 울산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박주영)는 본인의 삶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자식 살해`를 저지른 친모 두 명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각각 2살 된 아들과 자폐성 발달장애 2급을 가진 9살 딸이 있었지만, 미래가 창창했던 아이들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이러한 사건을 접하게 된 일부 사람들은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편 `오죽했으면 자기 자식을…`이라며 부모를 동정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이해가 가는 발상이라지만, 이러한 동정 어린 시각 자체가 자녀의 생명에 부모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전제가 된다.
당시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우리 사회에서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과 같은 비극이 자주 되풀이되는 건 자녀의 생명권이 부모에 종속돼 있다는 그릇된 생각 때문"이라며 "이러한 범죄는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으로 미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반자살은 가해 부모의 언어다. 이 범죄의 본질은 자신의 아이를 제 손으로 살해하는 것이고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 범죄"라며 "아이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는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살인"이라고 짚었다.
재판부의 판단처럼 우리 사회에서 `부모`라는 단어에 따르는 관대함이 너무 큰 것이 아닌가 싶은 우려가 든다. 물론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관계는 각별하지만, 그 어떤 각별한 관계도 한 인격체의 생명권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기준이 바로 세워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유경제=조은비 기자] 누구에게나 부모는 있지만 `나`를 낳아준 부모님은 전 세계에서 딱 두 명 뿐이기에, 예로부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유독 특별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단순히 `낳았기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평생에 걸쳐 보여주는 헌신과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자연히 부모님을 공경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어떤 이에게는 부모라는 존재가 생판 남보다 못한 자들이 있고, 낳아주지는 않았지만 친부모처럼 자신을 양육해준 부모가 있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낳아준 부모`라는 단어에 너무 많은 것을 허가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불거진 `구하라법` 개정안도 같은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 고(故) 구하라의 친오빠 구호인씨는 그동안 양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던 친모가 여동생이 고인이 돼서야 나타나 상속권대로 유산의 절반을 받으려 한다며 법의 개정을 추진했다. 20대 국회가 마무리되면서 `구하라법`은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았지만, 구씨는 비슷한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해 21대 국회에서 해당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법이지만, 부모의 상속권에 대한 현행법은 이러한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낳아주기만 했다고 해서 그 자식에 대한 권리를 행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 부모가 자식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까지일까?
이달 1일 울산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박주영)는 본인의 삶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자식 살해`를 저지른 친모 두 명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각각 2살 된 아들과 자폐성 발달장애 2급을 가진 9살 딸이 있었지만, 미래가 창창했던 아이들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이러한 사건을 접하게 된 일부 사람들은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한편 `오죽했으면 자기 자식을…`이라며 부모를 동정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이해가 가는 발상이라지만, 이러한 동정 어린 시각 자체가 자녀의 생명에 부모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전제가 된다.
당시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우리 사회에서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과 같은 비극이 자주 되풀이되는 건 자녀의 생명권이 부모에 종속돼 있다는 그릇된 생각 때문"이라며 "이러한 범죄는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으로 미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반자살은 가해 부모의 언어다. 이 범죄의 본질은 자신의 아이를 제 손으로 살해하는 것이고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아동학대 범죄"라며 "아이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는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살인"이라고 짚었다.
재판부의 판단처럼 우리 사회에서 `부모`라는 단어에 따르는 관대함이 너무 큰 것이 아닌가 싶은 우려가 든다. 물론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관계는 각별하지만, 그 어떤 각별한 관계도 한 인격체의 생명권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기준이 바로 세워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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