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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라남도는 오는 10월 18∼19일 나주 빛가람동 호수공원 일원에서 혁신도시의 기능을 살려 ‘화합, 에너지, 4차 산업혁명, 지역혁신성장’을 콘셉트로 제5회 빛가람 페스티벌을 개최한다고 25일 밝혔다.   지난 2015년부터 열린 빛가람 페스티벌은 그동안 이전 공공기관의 자체 문화행사, 체육대회 등 일회성 프로그램으로 운영됐다. 이 때문에 참여율이 낮고, 인지도가 낮았다.   이에 따라 올해는 기존의 페스티벌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이전 공공기관 임직원 및 가족, 지역민이 함께 하는 노래자랑, 가족 걷기대회, 드론체험 등 화합의 장으로 치를 계획이다.   주요 프로그램은 ▲4차 산업혁명 심포지엄 ▲플래시몹, 풍물놀이 등 식전 공연 ▲공공기관과 연관기업, 혁신도시 입주기업의 제품 전시회 ▲부대행사 등이다.   전시회에서는 드론, VR․AR, e-모빌리티, 전기차, 수소차 등 분야별로 전시․체험(제작), 시뮬레이션, 콘텐츠 가상 체험 등이 진행된다.   걷기대회는 빛가람동 호수공원 2.4㎞ 구간 4개소 지점에서 버스킹, 플래시몹, 전통공연, 경품 추천 행사를 연계해 추진한다.   22개 시군의 친환경우수농산물 직거래 장터에서는 시범사업으로 무인 판매를 실시하고 남은 농산물은 걷기대회 경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한전에서 추진하는 지역 친화형 상생 프로그램인 청년창업 플랫폼 ‘메이커 나주’도 제품 판매 및 체험 프로그램 운영에 나선다.   윤영주 전라남도 혁신도시지원단장은 “종전의 보여주기식 행사를 지양하고, 원도심과 혁신도시민 간 협력, 외부 방문객 유입 확대 등 지역 차원의 페스티벌 운영 기틀을 마련하겠다”며 “남은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아이템을 발굴, 문화예술과 미래산업을 융복합하는 차별화된 빛가람 혁신도시축제로 준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뉴스등록일 : 2019-08-25 · 뉴스공유일 : 2019-08-25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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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강대의 · http://edaynews.com
무안국제공항 편익시설이 대폭 확충된다. 전라남도는 대합실, 환승시설, 면세점, 주차장, 수화물 처리벨트 및 관리동, 장비고 등의 증·개축 등에 389억 원을 투입될 예정이라고 25일 밝혔다.   현재 한국공항공사에서 실시설계를 하고 있어, 2020년부터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무안국제공항 이용객은 올 들어 7월 현재까지 56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9%가 늘어난 규모다. 연말까지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광주민간공항이 통합되면 300만 명 이상이 이용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전라남도는 국제선 신규 노선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광주·무안공항 통합 및 활성화 실무협의회를 구성해 한국공항공사, 무안군, 항공사 등과 매월 1회 이상 이용객의 불편 해소 대책을 논의해왔다.   이상훈 전라남도 도로교통과장은 “이번 편익시설 개선사업은 무안국제공항 이용객이 보다 편리하게 공항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질 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광주공항과의 통합 이전에 조기에 완료하도록 국토교통부, 한국공항공사와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등록일 : 2019-08-25 · 뉴스공유일 : 2019-08-25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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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김종영 · http://edaynews.com
광주교대부설초 오케스트라가 ‘여름 음악 캠프’를 개최했다. 교부부설초 오케스트라 단원 40여 명은 8월 21일부터 8월 23일까지 2박 3일 동안 화순금호리조트에서 ‘여름음악 캠프’에 참여했다. 도시 생활의 일상에서 벗어나 상쾌한 자연을 즐기며 다양한 팀 놀이와 음악 활동 그리고 아쿠아나 체험과 캠프 연주회 등의 다양한 공동체 활동으로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캠프 중에 있었던 ‘내가 생각하는 차이란?’과 ‘차이가 감사로 오기까지...’를 주제로 한 이야기 마당과 감사 편지 쓰기는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문화와 차이에 대한 소소한 성찰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캠프의 꽃이라 볼 수 있는 ‘2019 한 여름 밤의 문화 콘서트’에서는 100여 명의 교직원과 학부모가 참여한 가운데 ‘학생들이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의 메시지 낭독’과 ‘K-팝 대결’, ‘줄넘기 경기’를 비롯하여 독주, 중주 합주 등의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었다. 참여한 학부모는 “스토리가 있는 문화 콘서트를 통해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진한 감동을 받았다”면서 “존중, 경청, 합의의 삶을 플러스 하도록 실천하는 광주부설초 학생들의 행복한 학교생활을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뉴스등록일 : 2019-08-25 · 뉴스공유일 : 2019-08-25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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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화
서승아 기자 · http://www.areyou.co.kr
[아유경제=서승아 기자] 국내 패션산업의 출발점이 된 동대문 `평화시장`의 1960~1970년대 모습을 재조명하는 기획전시가 예정돼 이목이 집중된다. 23일 서울역사박물관(관장 송인호) 분관 청계천박물관은 이날부터 오는 11월 24일까지 `동대문패션의 시작, 평화시장`을 1층 기획전시실에서 무료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진ㆍ문서와 당시 사용됐던 재봉틀 등의 전시물을 통해 1960~1970년대 평화시장의 특징과 변천과정, 이후 동대문 주변에 끼친 영향과 그 의미를 조명한다. 특히, 당시 평화시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의 증언과 사진자료를 토대로 봉제공장을 그대로 재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치열하게 삶을 일궈나간 봉제 노동자들의 삶을 되짚어본다. 전시 구성은 `1부 평화시장의 탄생`, `2부 의류 유통의 중심지, 평화시장`, `3부 그 시절의 평화시장`, `4부 변화하는 평화시장` 등 크게 4개의 주제로 나뉜다. 특히 `3부 그 시절의 평화시장`에서는 봉제공장을 실제 평화시장 출신 노동자의 증언과 사진 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재현했다. 당시 공장의 대표적인 구조물인 다락을 설치했고 실제 크기 공장 사람들 모형을 통해 실감나는 전시 감상이 가능하다. 이번 기획전시와 연계해서 특별강연도 마련하였다. 강연은 이달 27일 오후 2시 청계천박물관 3층 강당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주제는 `20세기 서울 현대사와 평화시장`으로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염복규 교수에 의해 강연이 진행된다. 해방 이후 서울의 성장 과정 속에 평화시장이 가지는 의미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참가 접수는 서울시 공공예약서비스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 토ㆍ일ㆍ공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자세한 정보는 청계천박물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AU경제(http://www.areyou.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뉴스등록일 : 2019-08-23 · 뉴스공유일 : 2019-08-23 · 배포회수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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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라남도는 23일까지 2일간 해남 우수영국민관광지에서 전남, 광주, 경남 정보화마을 주민 150여 명이 참석하는 ‘영·호남 정보화마을 주민 교류행사’를 개최한다.   ‘영·호남 정보화마을 주민 교류행사’는 동서 화합 실현과 상생발전을 위한 순수한 민간교류다. 2014년부터 매년 전남과 경남을 서로 교차해 개최하고 있다.   올해 6회째인 이번 행사에선 전남에서 경남 주민들을 초청해 마을 체험행사 우수사례 발표, 마을 특산품 소개 및 전시, 문화탐방 등을 실시하고, 마을 공동체 활성화 방안을 모색한다.   또한 정보화마을 중앙협회 전․현직 회장 3명과 광주․전남, 경북, 경남 지회장 3명이 참석해 정보화마을의 지속적인 교류 확대와 협력 강화 방안도 논의한다.   영호남 41개 정보화 마을은 자매결연 하고 현재까지 마을 간 상호 방문 및 우수사례 벤치마킹 등 개별 교류활동을 끈끈하게 이어가고 있다.   고광완 전라남도 기획조정실장은 “정보화마을이 지금까지는 농어촌 정보격차 해소와 마을 자립화를 위한 상품 판매에 힘을 기울여왔다”며 “하지만 앞으로는 6차산업화 확대에 따른 새로운 환경 변화에 맞춰 다양한 상품과 체험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판촉망 확대와 우수사례 공유를 위한 지역 간 정보교류 장을 개설해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도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우수사례를 공유토록 하고 상호 이해와 소통을 바탕으로 상생 발전해 나가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정보화마을은 도시와 농어촌 지역의 정보격차 해소와 전자상거래, 체험관광 등을 통한 소득 창출을 위해 조성됐다. 2001년부터 전국에 312개 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전남에는 41개 마을, 경남에는 28개 마을이 운영 중이다.
뉴스등록일 : 2019-08-23 · 뉴스공유일 : 2019-08-23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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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라남도는 제주항공이 21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중국 연길 노선 취항식을 갖고 본격 운항에 들어갔다.   취항식에선 전동호 전라남도 건설교통국장과 김재천 제주항공 부사장 등 항공사 관계자, 전라남도, 무안군 관계자가 참석해 승무원에게 꽃다발을 전달하는 등 연길 신규 취항을 축하했다.   연길 정기노선은 무안에서 오전 8시 45분 출발해 10시 25분 연길에 도착하고, 돌아오는 항공편은 연길에서 오전 11시 25분 출발해 오후 3시 15분 무안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매주 수·토요일 운항한다.   연길은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다. 백두산 관광의 관문이며 중국 속의 작은 한국으로 불린다. 중국과 예전 한국의 느낌 두 가지를 동시에 느껴볼 수 있는 특색있는 여행지다. 관광자원이 풍부한 연길은 모아산 산림, 진달래광장, 중국조선족민속원, 공룡박물관 등 볼거리가 가득해 최근 여행객이 늘고 있다.   이상훈 전라남도 도로교통과장은 “제주항공의 연길 정기노선 취항이 최근 일본 노선 감축·중단에 따른 항공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며 “10월께 장가계 노선도 신규 취항하도록 국토교통부, 한국공항공사 등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뉴스등록일 : 2019-08-22 · 뉴스공유일 : 2019-08-22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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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도로/교통
강대의 · http://edaynews.com
- 국비 696억원 들여 본량나들목까지 6.5㎞ 구간 4차로 개설 - 올해 기본 및 실시설계 착수해 2023년 말까지 완공할 계획 - 자동차 생산기지·부품단지 조기 활성화로 광주형일자리 탄력 - 부품기업 위치 진곡·하남산단 연계 도로망 구축 물류경쟁력 확보 - ‘부품공급-조립양산-목포신항 수출’의 물류 시스템 효율 극대화 기대 광주형일자리 자동차공장이 들어서는 빛그린산단의 광주방면 진입도로가 국비로 개설된다. 이에 따라 빛그린산단의 자동차 생산기지와 부품단지 조성, 산단 조기 활성화, 부품기업이 입주해 있는 주변 산단과의 도로망 구축에 따른 기업의 물류 경쟁력을 확보 등 많은 효과가 기대되며, 특히 광주형일자리 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광주광역시는 신규 국비 도로개설 사업인 빛그린산단 광주방면 진입도로 사업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타당성 재조사가 21일 개최된 재정사업평가위원회를 거쳐 최종 통과됐다고 밝혔다. 타당성 재조사 최종 통과로 광주시는 앞으로 빛그린산단 광주방면 진입도로 개설 사업비 696억원을 전액 국비로 확보하게 됐다. 이 사업은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에 의한 산단 진입도로 사업으로, 새로이 조성되는 산업단지의 조기 활성화와 입주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가, 지방산단의 진입도로 건설을 국토교통부가 전액 국비로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 2009년 9월 국토교통부의 빛그린산단 지정고시에 따라 산단 조성이 추진되면서 산단 진입도로 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국회의 2018년도 예산 심의 과정에서 사전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고 설계비가 일부 확보되면서 기획재정부의 타당성 재조사를 받게 됐다.  광주시는 그동안 타당성 재조사 통과를 위해 기재부, 한국개발연구원(KDI), 국토부가 참여하는 2차례의 점검회의를 거치면서 사업노선 조정, 사업비 절감대책 등 경제성(B/C) 향상 방안을 마련했다.   또한 이 사업이 광주형일자리 성공을 위한 지원 사업으로, 최근 개정된 기재부 예비타당성조사 지침에 따라 정책성 항목에서 보다 유리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타당성 재조사를 통과하게 됐다. 사업규모는 광주형일자리가 처음으로 적용되는 ‘광주글로벌모터스’ 자동차공장이 들어서는 광산구 삼거동 빛그린산단에서 본량동 국지도 49호선과 현재 건설 중인 광주순환고속도로(2구간)가 만나는 지점인 본량나들목 인근까지 6.5㎞를 폭 20m 4차로로 사업비 696억원을 들여 추진한다. 사업기간은 올해 기본 및 실시설계를 시작으로 2023년 말까지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며 익산국토관리청에서 사업을 시행한다. 이번 사업 추진으로 제19대 대통령 공약사업인 빛그린산단을 중심으로한 ‘미래형 자동차 생산기지 및 부품단지 조성과 조기 활성화’에 기여함은 물론, 광주형일자리 자동차공장이 들어설 빛그린산단과 부품기업들이 위치한 진곡․하남산단을 연계하는 산단진입 도로망을 구축해 입주기업의 물류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영광 방면에서 광주로 들어오는 국도 22호선이 빛그린산단과 호남대 앞을 거쳐 선운, 운수교차로를 통해 진곡·하남산단으로 도달하는 노선은 현재도 교통 지정체가 빈번한 구간이나, 이 도로개설이 완료되면 빛그린산단과 진곡·하남산단을 드나드는 물류차량이 신설 도로를 이용하게 되는 만큼, 국도 22호선의 교통 혼잡도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허익배 광주시 교통건설국장은 “이번 타당성재조사 통과로 광주형일자리가 태동할 빛그린산단을 중심으로 나주방면 진입도로는 무안~광주 고속도로 나주IC에 연결되고, 광주방면 진입도로는 하남·진곡산단에 연결돼 부품공급-조립양산-목포신항 수출 이라는 양산차 물류시스템의 효율성이 극대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앞으로도 시는 도로사업 계획단계에서 관내 경제자유구역 지정, R&D 연구개발 특구, 산업단지 조성 등 관내 산업의 분포와 입지여건 상호 연계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 되는 도로 교통계획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뉴스등록일 : 2019-08-22 · 뉴스공유일 : 2019-08-22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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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건강정보
김종영 · http://edaynews.com
광주 남구(구청장 김병내)는 최근 3년간 방역과 관련해 민원이 발생한 지역의 권역별 데이터를 분석해 ‘모기 제로 방역지도’를 제작, 내년부터 이 지도를 활용해 권역별 취약지역에 대한 집중 방역을 모색하기로 했다. 22일 남구에 따르면 ‘모기 제로 방역지도’는 지난 201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방역 업무와 관련해 민원이 발생한 지역의 데이터를 취합, 민원 발생지역과 취약지역에 대한 집중 방역과 유해 해충 발생지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됐다. 특히 방역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관내 16개동을 4개 권역으로 구분, 각 권역별 민원 발생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1권역(양림‧사직‧월산‧백운1‧백운2)과 2권역(주월1‧주월2‧월산4‧월산5), 3권역(방림1‧방림2‧봉선1‧봉선2), 4권역(효덕‧송암‧대촌) 등 각 권역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관내에서는 총 418건의 방역업무 민원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방역 민원이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1권역으로, 이 기간 총 163건(38.9%)의 민원이 접수됐다. 이어 제2권역이 106건(25.3%)으로 뒤를 이었고, 4권역과 3권역은 각각 92건(22%)과 57건(13.6%)의 민원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동별 현황으로는 월산동이 51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으로는 월산4동 42건, 백운2동 41건, 주월1동 38건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유해 해충 발생에 따른 방역 요청 장소로는 주로 주택가 주변이나 공원, 하천 주변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구는 이 같은 분석 결과를 2020년 방역사업 계획 수립에 반영, 다수 민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1권역과 2권역에 대한 집중 방역을 실시하고, 효율적인 방역이 이뤄질 수 있도록 취약지역에 대한 선제적인 방역을 진행할 계획이다. 남구 관계자는 “모기 제로 방역지도는 관내 어느 지역에서 모기와 파리 등 유해 해충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제작됐기 때문에 유해 해충을 줄이는데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뉴스등록일 : 2019-08-22 · 뉴스공유일 : 2019-08-22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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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안정민 · http://www.itfocus.kr
  최근 일본과의 정치, 경제적 마찰이 고조되면서 한일 관계의 상징적인 역할을 해온 독도가 SNS 인증 관광 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NHN여행박사(대표 박임석)는 독도 방문을 무료로 제공하는 ‘신비의 섬 울릉도 3일’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해당 상품은 지난달과 비교해 예약 건수가 2배 이상 증가했다. ‘신비의 섬 울릉도 3일’ 여행상품은 패키지여행의 편리함과 자유여행의 여유로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울릉도 일일투어는 도동항을 시작으로 통구미를 거쳐 현포와 천부 그리고 나리분지, 삼선암, 관음도까지 울릉도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최근 완공된 울릉도 일주 도로 덕분에 한결 편하게 울릉도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독도 방문 시 SNS 인증샷 촬영 소품으로 태극기를 증정하는 이벤트도 준비했다. 독도 관광은 기상 상황에 따라 1일차 또는 2일차에 진행된다. 기상 상황에 따라 독도 방문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울릉도에서 내수전 전망대, 봉래폭포, 독립기념관을 둘러보고 케이블카를 탑승하는 일정으로 대체된다. 2일차와 3일차 오전은 자유 시간이다. 자유 시간을 이용해 행남등대 해안산책로나 도동약수공원 산책, 성인봉 등반 등 원하는 일정을 넣을 수 있다. 또한 선택 관광으로는 배를 이용해 울릉도를 한 바퀴 둘러보는 섬일주 유람선과 울릉도에서 30분 거리인 죽도 관광, 날씨가 좋으면 독도까지 조망할 수 있는 독도전망 케이블카도 준비되어 있다. 패키지에는 왕복 선박료, 울릉도 일일투어, 독도 관광, 숙소 2박, 식사 4회, 울릉도 안내원 경비가 포함되어 있으며, 주 4회 출발한다. 아침 배편에 맞춰 수도권(서울/경기)에서 묵호항과 후포항을 오가는 셔틀차량도 준비되어 있어 추가 금액만 지불하면 이용이 가능하다. [자료제공:뉴스와이어]이 뉴스는 아이티포커스(www.itfocus.kr) 공유 뉴스입니다.
뉴스등록일 : 2019-08-22 · 뉴스공유일 : 2021-08-19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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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화
조은비 기자 · http://www.areyou.co.kr
[아유경제=조은비 기자] 그룹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가 방탄소년단 드라마ㆍ게임 제작에 대해 언급했다. 지난 21일 빅히트는 서울 대치동 섬유센터에서 `공동체와 함께하는 빅히트 회사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방시혁 공동대표는 "빅히트가 상반기 최고 실적을 거뒀다"라고 밝혔다. 현재 빅히트는 2019년 상반기 2001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매출과 맞먹는 수치이다. 영업이익도 391억 원으로 지난해 641억 원의 3분의 2 수준에 육박했다. 이어 그는 "기존 부가가치가 생성되고 확장하는 과정에 변화를 일으켜 매출 증대 및 시장 규모를 확장시키고, 시스템을 개선함으로써 구성원과 산업종사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려 한다"라며 음악 산업 혁신 비전을 강조했다. 아울러 "빅히트가 그리는 IP사업의 핵심은 아티스트를 통해 생성된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 강력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이를 영속적인 브랜드 사업으로 확장하는 것"이라며 향후 방탄소년단 세계관에 기반한 드라마 제작과, 넷마블과 함께 방탄소년단 스토리텔링 IP를 활용한 게임제작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론칭 목표는 2020년 하반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방 대표는 "고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고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달 20일(현지시각) 방탄소년단의 `MAP OF THE SOUL : PERSONA`는 18주 연속 `빌보드 200`에 이름을 올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AU경제(http://www.areyou.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뉴스등록일 : 2019-08-21 · 뉴스공유일 : 2019-08-21 · 배포회수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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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 · http://edaynews.com
강진군이 8월 12일부터 8월 23일까지 친환경농산물의 건강하고 안전한 생산과 소비자 신뢰확보를 위해 관내에서 생산된 친환경농작물의 잔류농약 일제검사를 실시한다.   이번 친환경농작물 작류농약검사는 2018년 48건에서 올해 83건으로 2배가량 늘려 친환경 신규인증 농가 및 친환경 인증필지 중 농약 사용 의심농가를 무작위로 선정해 실시할 예정이다. 특히 해당 농가가 입회한 가운데 강진군친환경농업인연합회, 친환경명예감시원, 읍면 담당직원도 함께 참여하여 시료 채취의 공정성을 더욱 강화하였다.   이번 잔류농약검사 결과 농약이 검출된 농가의 인증취소는 물론 각종 친환경농업 사업비 지원에서 제외되고, 향후 1년간 친환경 재인증이 불가하다. 강진군은 관내에서 생산된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해 강력한 사후조치를 할 예정이다.   한편 올해 8월 기준 강진군 친환경 인증면적은 1,676ha(유기농 198ha, 무농약 1,478ha)로 지난해 8월 1,186ha보다 41% 증가하였다. 이는 지난 3월 농가별·단지별로 ‘2019년 친환경 인증계획서’ 접수결과에 의해 산출된 수치로, 축구장 약 700여 개, 여의도 면적의 약 2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강진군은 새롭게 변경된 시책과 지원사업을 통해 친환경 인증면적을 연말까지 2,343ha(유기농 198ha, 무농약 2,150ha)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친환경 농업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벼 인증에서 벗어나 유기농 중심의 인증품목 다양화를 위해 무농약 벼 인증 필지 중 과거 5년(5회)동안 친환경농업 직불금을 받은 필지는 친환경농업 직불금 지원이 중단되고, 친환경농업단지조성사업비도 1ha당 70만원에서 30만원으로 줄어든다.   이에 강진군에서는 유기농 종합보험지원, 유기단지 볏짚 환원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정부에서도 친환경농업직불금 단가를 ㎡당 10~20원씩 인상하는 등 친환경인증 품목다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송승언 친환경농업과장은 “앞으로도 소비자들이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농산물 안정성 검사 및 친환경 농업 교육이 힘쓰겠다”며 “유기농 인증과 벼 이외에 연근, 대파, 황칠 등의 친환경 인증면적을 확대해 소비자 신뢰 구축과 대외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뉴스등록일 : 2019-08-21 · 뉴스공유일 : 2019-08-21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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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봉 · http://edaynews.com
5. 결론       1) 鬱陵島 地名    ① 鬱陵島는 『삼국사기』에 “于山國 或云 鬱陵島”라 기록되어 있는데 于山國은 국명이고 鬱陵島는 島名이다. 또 『삼국유사』에는 鬱陵島가 “亏陵 今作 羽陵”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울릉도의 명칭은 鬱陵과 亏陵, 羽陵으로 나누어져 있다. 亏陵과 羽陵은 다른 글자를 차용했지만 于와 羽는 음이 다 ‘우’로 같으므로 동일명칭을 표기한 이표기라 생각한다. 또한『조선왕조실록』에는 于陵과 芋陵이란 표기도 있다. 그러나 ‘于陵’의 ‘亏’가 ‘于’의 本字이므로 표기된 것이고  ‘芋陵’의 ‘芋’도 같은 ‘우’음이기에 표기된 異表記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鬱陵, 亏陵, 羽陵, 于陵, 芋陵은 모두 ‘우ㄹ’로 읽을 수 있는 지명이라 생각한다.   ②『三國史記』지리지에는 ‘于山國’처럼 첫음절에 ‘于’자가 쓰인 지명으로 于尸郡과 于尸山郡이란 지명이 있는데 ‘于’는 ‘우’음을 빌린 표기이고, ‘尸’는 ‘ㄹ’음을 표기하기 위한 차자로서 ‘于尸-’과 ‘于尸-’은 모두 ‘우ㄹ’로 읽을 수 있는 지명이라 생각되나 ‘于山國’의 이칭이 옛문헌에 鬱陵, 亏陵, 羽陵로서 제2음절에 ‘ㄹ’음의 존재가 확인되므로 ‘于山國’의 지명에도 본래 ‘ㄹ’음을 가진 차자가 탈락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이런 추정이 사실이라면 ‘于山國’은 ‘于+(陵)+山+國>于山國’으로 변화하여 표기된 지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③ 亏陵島, 羽陵島, 芋陵島, 于陵島는 ‘울+은+셤’으로 분석되며 이는 옛말 발음법인 개음절 규칙에 따라 ‘우른셤’으로 발음되므로 제1음절 ‘우’는 ‘亏’자를 빌리고 어간 말음 ‘ㄹ’과 관형사형 어미를  합한 ‘르+ㄴ’은 표기할 마땅한 한자가 없어 ‘陵’자를 빌어 표기하면서 ‘우른셤>우릉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④ 鬱陵島는 ‘울+은+셤’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 이도 개음절 발음 규칙에 따라 ‘우른셤’으로 발음되어야 할 것인데 처음부터 1음절 어근 ‘울’은 ‘鬱’자를 빌림에 따라 ‘울은셤>울른셤>울릉셤’으로 발음되면서 굳어진 표기가 아닐까 생각하며, 한편 ‘울+은+셤’은 개음절 발음 규칙에 따라 ‘우른셤’으로 발음되어야 할 것이 ‘우른셤>울른셤’으로 설측음화 되다가 다시 ‘울릉셤’이 되어 鬱陵島로 표기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글학회 지은 󰡔우리말사전󰡕에 ‘우ㄹ-’과 관련된 단어를 찾아보면 ‘우리다’, ‘우러나다’, ‘우럴다’, ‘울뚝’, ‘울뚝불뚝’, ‘울겅거리다’, ‘울렁거리다’, ‘울다’, ‘울컥’, ‘울놀음’, ‘울가리’, ‘울목’ 등이 있는데, 이들 단어들은 모두 무엇이 모두 위로 솟아오르거나 솟아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鬱陵이나 亏陵, 羽陵 등은 망망대해에 솟아 ‘오른섬’이기에 鬱陵이나 亏陵, 羽陵은 이런 뜻이 반영된 고대어 ‘우ㄹ-’에 어원을 둔 지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⑤ ‘流山國島’는 ‘于山國島’의 ‘于山’에서 ‘流山’으로 파생된 지명이라 생각한다.    ⑥『조선왕조실록』의 ‘于山武陵’과 ‘于山武陵等處安撫使’의 기록에서 武陵은 鬱陵島를 지칭하고, 于山은 獨島를 지칭하는 명칭이라 생각한다.   ⑦ 武陵은 ‘武陵桃源’의 영향에서 불린 명칭일 가능성이 있고 茂陵은 鬱陵島에 소나무와 대나무가 무성하였기에 이런 의미를 가진 ‘武’자 대신 ‘茂’자를 택하여 표기한 명칭이라 생각한다.   ⑧ 鬱陵은 신라시대의 명칭이므로 고려가 이어 받으면서 음이 같은 蔚陵으로 고쳐 표기한 명칭이라 생각한다.         2) 獨島 地名   ① 『고려사』地理志와『世宗實錄』地理志의 ‘于山’은 獨島를 지칭한 명칭이다. 그것은 于山武陵登處按撫使의 명칭에서 武陵은 鬱陵島를 지칭하고 于山은 獨島를 지칭하는 명칭이기 때문이다.     ②『肅宗實錄』의 안용복 渡日 기록에서 子山島는 獨島를 지칭한 다. 子山이란 명칭은 獨島가 鬱陵島에 속한 아들 같은 섬이라는 뜻으로 불렸을 가능성도 있지만, 于山의 ‘于’를 잘못 사용한 요용에서 귿어진 명칭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③ 石島는 고종황제가 대한민국 칙령 제41호에서 ‘鬱陵島’를 ‘鬱島’로 개칭하고, 島監을 郡守로 개정한 후 울릉군의 관할구역을 鬱陵全島와 竹島, 石島로 선포하면서 石島라는 명칭이 처음 문헌에 기록되었는데 이는 섬이 바위로 이루어진데 연유한 명칭이다.    ④ 獨島는 황현의 매천야록에 기록된 지명이다. 본래 이 섬이 돌로만 이루어졌으므로 1900년 고종황재의 칙령에서 그 명칭을 ‘石島’라 칭했는데 ‘石’의 훈이 ‘독’이므로 우리말 ‘독’을 한자로 ‘獨’자를 빌려 표기하여 생긴 지명이다. 그러므로 獨島의 어원은 ‘독’(표준어:돌)에 있다. 일본자료에 獨島는 松島, 竹島, 子山, 于山, 蔚島으로 나타나는데 주로 松島로 불렸다.   ⑤ 松島는 1667년 이즈모(出雲)의 관리 사이토 호센(齋藤豊仙)이 명에 의해 오키섬을 돌아보고 보고 느낀 바를 채록한『은주시청합기』의 기록에 獨島을 松島라 표기하는 등 대부분의 일본 자료에는 松島라 기록하고 있다.   ⑥ 竹島는 처음에는 鬱陵島에 대나무가 많기 때문에 울릉도의 이름으로 주로 왜인들이 사용한 이름인데 1905년 다케시마 고시 40호 때부터 獨島를 竹島로 고쳐 부른 이름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테마이야기’, 독도박물관 ‘울릉도, 독도 연대표’, 독도박물관 ‘울릉도, 독도의 역사’, 독도박물관  이승진(2000), ‘일본의 水路誌와 미국포경선의 航海日誌 검토’『鬱陵文化』5, 울릉문화원 박현수(1998), ‘日本의 朝鮮地圖와 植民主義」’『 한국의 옛 지도(자료편)』, 영남대박물관 堀和生(1985), ‘一九O五年日本の竹島領土編入’,『朝鮮史硏究會論文集』24. 勝海舟(1867),「大日本國沿海略圖」 橋本玉蘭(1870).「大日本四神全圖」   <abstrect>  A Study on the place names in Uleangdo, Dokdo                                     Jo, Gang-bong   According to the two famous history-books about Korea's 14th century history,  Samguksagi(삼국사기) & Samgukyusa(삼국유사), Uleangdo-Island seems to have five place-names: ① Usangook, Uleangdo(于山國, 鬱陵島),  ② Ureang(亏陵, 羽陵),  ③ Ureang(于陵, 芋陵),  ④ Mureung (武陵, 茂陵), ⑤ Jukdo (竹島). These place-names can be classified into two sequences. One is  Uleang(鬱陵), the other ureang(우릉, 우릉, 우릉, 우릉).   According to Samguksagi(삼국사기), Usangook(于山國) seems to have another place-name: u(于)+si(尸)-san(山)-kuk(國). Korean people at that time pronounced ‘s’(尸) as  ‘r’(ㄹ). Therefore, it is reasonable for us to guess that Korean people at that time pronounced  ‘r’(ㄹ). And it follows that Uleang(鬱陵) and Ureang(亏陵, 羽陵, 于陵, 芋陵) seems to have had the same etymological origin: ‘Ul’(우ㄹ).  Dokdo(獨島) means an island of rocks or stones. Dok(독) was kind of a dialect for Dol(돌) that is rock or stone. Keyword : Uleangdo(울릉도:鬱陵島), Dokdo(독도:獨島)  영문초록은 추후 메일로 보네 드리겠습니다. <abstrect>  A Study on the place names in Uleangdo, Dokdo <Cho, Kang-bong>    옛 문헌인 Samguksagi(삼국사기)와 Samgukyusa(삼국유사)에 기록된 鬱陵島의 명칭에는 ① 于山國, 鬱陵島,  ② 亏陵, 羽陵,  ③ 于陵, 芋陵,  ④ 武陵, 茂陵, ⑤ 竹島가 있다.   이들은 두 계통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Uleang(鬱陵)이고, 다른 하나는 ureang(亏陵, 羽陵, 于陵, 芋陵)이다. Samguksagi(삼국사기)에는 ‘于山國’과 같은 계통의 지명에 usisankuk(于尸山國)이 있다. usisankuk(于尸山國)의 글자(스펠링) 중 ‘si’(尸)는 오랜 옛날(고대)에 ‘r(ㄹ)’음이었다. ‘usankuk’(于山國)이란 지명에는 ‘r(ㄹ)’음인 ‘si’(尸)가 없다. ‘ureang’(亏陵, 羽陵)에는 ‘r(ㄹ)’음이 있다.  ‘reang’(陵)이 ‘r(ㄹ)’음이다. 그러므로 ‘usankuk’(于山國)에는 본래부터 ‘r(ㄹ)’음이 있었다고 추측한다. 그래서 Uleang(鬱陵)과  ureang(亏陵, 羽陵, 于陵, 芋陵)의 어원은 ‘Ul(우ㄹ)’로 추측한다.   Dokdo(獨島) 섬이 돌로 이루어졌으로 불린 이름이다. Dok(독)은 Dol(돌)의 방언이므로 지방에서 Dokdo(독도)라고 불렀다. 돌의 사투리인 ‘독’을 한자로 ‘獨’(Dok)으로 기록했다.   keyword : Uleangdo(울릉도:鬱陵島), Dokdo(독도:獨島)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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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 http://edaynews.com
1478년 5월8일에 성종은 경연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사헌부 장령 박숙달이 아뢰었다.   "유자광은 사직에 공(功)이 있고, 임사홍은 공주의 일로 인하여 특별히 명하여 사형을 감하신 것은 성상께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것임을 알지만, 박효원과 김언신은 대간이 되어서 남의 은밀한 사주를 듣고 대신을 모함하였으므로 죄가 임사홍보다 더하니 법에 의하여 처단하소서."   성종은 "이 사람의 죄는 가볍지 아니하나 사정이 있어 은혜를 편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좌우에게 "대간의 말이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영사 윤사흔과 노사신이 대답하였다. "임사홍과 유자광은 사형을 감하고 형장(刑杖)을 속(贖 돈을 내어 형장을 면함)하면서 김언신과 박효원만 결장(決杖  곤장을 치는 형벌)하면, 이것은 죄는 같은데 형벌은 다른 것입니다."   성종은 "그렇다."고 말했다.   박숙달이 다시 아뢰었다. "성상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간(諫)하는 말을 따르시기를 물이 흐르는 것처럼 하시기 때문에, 말하는 자가 말을 다하고 성상께서 아름답게 받아들이시어 의심함이 없었는데, 지금 전하께서 ‘대간의 말을 다 믿을 수 없다.’고 하시니, 이는 박효원과 김언신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성종이 말하였다. "이는 말을 전한 자의 잘못이다. 내가 ‘다 믿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다 따를 수 없다.’고 말한 것뿐이다. 대저 인품이 같지 아니하여 어진 이도 있고 어질지 못한 이도 있는 것인데, 어찌 한 사람의 일로 인하여 대간을 믿지 아니하겠는가? 너희들은 혐의하지 말라."   다시 박숙달이 아뢰었다. "채수와 이창신은 공론(公論)에 의거하여 사헌부 · 사간원과  함께 의논하여 일을 말하였는데, 마침내 임사홍의 아내가 고하였기 때문에 옥에 갇혔습니다. 뒤에 일을 말하는 자가 어찌 두려워하고 꺼리지 않겠습니까?"   성종이 말하였다. "네 말이 진실로 옳다. 내가 본래 국문하는 것이 옳지 못함을 알았으나, 이창신은 진실로 전에는 칭찬하고 뒤에는 헐뜯었으므로, 간사함이 자못 드러났기 때문에 국문하기를 명한 것이다."   윤사흔과 이숭원이 아뢰었다. "다른 일을 들어서 고하는 것은 들을 수 없습니다. 임사홍의 아내가 상언(上言)한 말은 보복입니다."   노사신도 아뢰었다. "사대부가 화목한 뒤에야 조정이 안정되는 것입니다. 요사이 남을 고발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어서 장차 사람마다 위태로워질까 두렵습니다. " 이에 성종은 "채수와 이창신을 석방하라."고 전교하였다.  (성종실록 1478년 5월8일 1번째 기사)     조금 있다가 이심원이 차자를 올리고 아뢰었다. "종부시(宗簿寺)에서 신이 아버지의 병을 시약하지 아니한 것과, 남효온과 친교한 것을 가지고 탄핵하니, 무릇 불효(不孝)는 어버이가 친히 고해야만 비로소 좌율(坐律 죄가 법률 조항에 해당한다는 뜻)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은 조부와 부모가 고하지 아니하고, 인리(隣里)가 고하지 아니하고, 관령(管領)이 고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된 것은 오로지 임사홍의 잘못을 탄핵한 까닭으로 인해 신을 무함(誣陷)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신이 전일에 친히 아뢰기를, ‘오늘 임사홍을 탄핵하면 반드시 일문(一門)의 죄인이 되고, 조정에서 미워하는 바가 되어 몸을 용납할 바가 없을 것이니, 신이 믿는 바는 성명(聖明)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으로 하여금 유사(有司)에게 나아가서 변명하게 하면, 신이 마땅히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마는, 성명께서 위에 계신데 어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분하고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성종은 승정원에 전교하였다.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친(親)함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심원이 말한 바는 잘못한 것이 아니다. 또 부자간의 일은 진실로 분변해서 바루기가 어려운데, 전일에 효령대군이 이심원에게 죄주기를 청하였으나 죄를 묻지 않는 것이 어떠한가? 그것을 종부시에 물어 보라." (성종실록 1478년 5월8일 2번째 기사)     이어서 성종은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좌부승지 김승경이 아뢰었다. "신이 오늘 김맹성과 김괴·표연말·손비장의 조율(照律)을 다시 보니, 김맹성과 김괴·손비장은 처음에 같은 간관으로서, 박효원이 임사홍의 청탁을 몰래 들은 것을 알고 박효원을 공박하려고 꾀하였으나, 동관(同官)인 것에 구애되어 우유부단하다가 마침내 아뢰지 못하였고, 친문(親問)하실 때에 이르러서도 김맹성과 김괴가 또한 사실대로 아뢰지 아니한 까닭에, 김맹성과 김괴의 죄를 ‘대제(對制)와 상서(上書)에서 거짓으로 속이고 사실대로 아뢰지 아니한 율(律)’로써 논하여, 장(杖) 1백 대와 도(徒) 3년으로 하였고, 손비장은 ‘마땅히 아뢸 것을 아뢰지 아니한 율’로 장(杖) 80대와 고신(告身) 3등을 추탈(追奪)하였으며, 또 표연말은 일찍이 그 실정을 알면서도 그 위에 아뢰지 아니하고 도리어 이심원에게 말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곧지 못한 것인데 김맹성과 죄를 같게 하는 것은 마땅치 못할 듯합니다.   또 임사홍과 유자광은 본래 참형인데, 특별히 사형을 감하고 형장(刑杖)을 속(贖)하였으니 이는 2등(等)을 감한 것이고, 김맹성과 김괴는 다만 형장만 속(贖)하였으니 이는 1등을 감한 것이므로 은혜가 고르지 못한 것입니다. 김맹성과 김괴에게 도형(徒刑)의 연한을 감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면  은혜가 고르고, 표연말과 벌이 다를 것입니다."   이에 성종이 말하였다. "김맹성과 김괴의 죄를 경은 적중하지 못하다고 하는가? 형장을 속(贖)한 것도 이미 넉넉하다."   그러면서 성종은 이숭원에게 “경의 뜻은 어떠한가?"고 물었다.   그러자 이숭원이 대답하였다. "이른바 ‘속여서 사실대로 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속이는 말을 가지고 계달하는 것인데, 김맹성과 김괴는 일을 말하는 데에 숨김이 있는 것이니, 속여서 사실대로 아뢰지 아니한 것과는 같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신하가 임금에게 알면서도 자세히 말하지 아니한 것은 죄가 막중합니다.” (성종실록 1478년  5월8일 3번째 기사) 사진 1. 창덕궁 희정당  앞면      2. 창덕궁 희정당 뜰 마침내 성종은 임사홍(任士洪)을 의주(義州)에, 유자광(柳子光)을 동래(東萊)에, 박효원(朴孝元)을 부령(富寧)에, 김언신(金彦辛)을 강계(江界)에 유배(流配)하고, 김맹성(金孟性)을 고령(高靈)에, 김괴(金塊)를 강진(康津)에 도배(徒配)하였으며, 박효원과 김언신은 결장(決杖)하고, 나머지는 모두 속(贖)하였다. 1) (성종실록 1478년 5월 8일 4번째 기사)  이어서 5월9일에 성종은 표연말을 산음(山陰)에 도배(徒配)하였다. 이 날의 실록에는 사신(史臣)의 논평이 있다. "표연말은 효행이 있었고, 부모가 죽자 재산을 모두 형제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나는 이미 과거에 올랐으니 반드시 성상의 은혜를 입을 것이나, 너희들은 생활이 매우 어려우니 이것을 가지고 살라.’고 하니, 고을 사람들이 칭찬하였는데, 이때에 이 죄를 받자 사람들이 애석해 하였다." (성종실록 1478년 5월9일 1번째 기사) 1) 도배(徒配)는 형벌기간 동안 관아에 구금하고 노역을 시키는 형벌이고, 유배(流配)는 변방이나 바닷가로 귀양 보내는 형벌이고 노역이 부과되지 않는다.
뉴스등록일 : 2019-08-20 · 뉴스공유일 : 2019-08-20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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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영 · http://edaynews.com
  영광군은 제19회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 추진과 관련해 지난 16일 군청 2층 소회의실에서 ‘제19회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 행정지원계획 시달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축제 준비에 나섰다.   이날 회의는 추진위원회로부터 제19회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 주요행사 및 세부계획을 듣고 축제 준비에 따른 각 실과소, 읍면별 추진 계획 및 협조사항을 전달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제19회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는 오는 9월 18일부터 24일까지 7일간 ‘상사화, 천년사랑을 품다.’라는 주제로 가족들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와 참여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올해는 축제장 내 쉼터 조성과 편의시설 확대를 통한 관광객 체류시간을 늘리고 상사화 주제공연과 신규 야간 프로그램 편성 등 다양한 공연·전시·야간 행사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 공간을 제공한다.   특히 축제 총감독을 선임하여 축제기획 전반을 업그레이드하는 한편 축제주제와 맞는 ‘경운스님과 인도공주’ 개막식 주제공연과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야간 프로그램 강화 및 레드원 EDM 공연을 통해 관객들이 다함께 뛰어 놀 수 있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축제 첫날 9월 18일 오전 10시부터 삼정자 주차장에서 ‘사랑의 연줄 드리우기’행사를 시작으로 군민과 관광객이 함께 걷는 ‘상사화 꽃길걷기’ 및 주제공연으로 본격적으로 축제가 시작된다.   전국다문화모국춤 페스티벌, 상사화 군민가요제, 상사화 어린이 가요제, 커플 상사화 가요제, 오케스트라 공연, 국악공연 등 무대 행사, SNS 사진 인증샷, VR/AR 체험 등을 비롯해 지역동호회가 중심이 된 상사화, 야생화, 산약초, 수석, 분재, 사진·미술·서예·시화전 등 전시행사가 풍성하게 열린다.   올해 처음 선보이는 상사화 쌀을 포함하여 지역 특산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특산품 판매장과 굴비시식회 및 마을장터를 운영하여 지역주민들이 축제에 직접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자리도 마련되었다.   상사화는 9월 한 달간 개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영광군은 많은 사진작가 및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보고 주차장 정비 등도 세심하게 준비하고 있다.   김준성 영광군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가을 꽃 축제로 자리 잡은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 등을 풍부하게 준비됐다.”며 “많은 방문객들이 붉게 타오르는 상사화 꽃길을 걸으며 정열적인 사랑과 아름다운 추억을 나누고 남도의 맛과 멋에 흠뻑 취해보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영광불갑산상사화 축제는 전라남도대표축제 및 문화관광육성축제로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대표 가을축제로 자리 잡았다.
뉴스등록일 : 2019-08-20 · 뉴스공유일 : 2019-08-20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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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우 기자 · http://www.areyou.co.kr
[아유경제=조현우 기자] 혁신이란 이름 아래 움직이는 현대미술과는 달리 우리에게 익숙한 평면 속 `이미지ㆍ색` 그리고 반복된 `선`으로 시대에 속한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담아낸 전시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최근 아르세갤러리(Arce Gallery)는 오는 8월 30일까지 강석형 작가의 개인전 `반항을 위한 방황`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미술ㆍ문화계에선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 개인이 가진 무의식의 언어 `선`을 활용해 무의식의 형상을 시각화한 강석형 작가의 작업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한다. 아울러 전시를 통해 관객들이 생각하는 평면에 대한 고정관념을 새롭게 제시하고 자유로운 선의 표현에 주목한 신작들을 만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 전문가는 "보다 현대적인 미적 감수성을 작품에 반영하는 작가들의 출현은 매우 고무적이다. 강 작가의 표현 및 대상은 선의 움직임ㆍ터치, 뒤엉킴 등과 색채형식에 국한하지 않는 다양하고 폭넓은 시야를 보여준다"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선들의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디인지` 따라가는 체험을 통해 충동과 일탈의 손짓을 느끼도록 그려냈다"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그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구성적 복합성으로 처리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눈길을 끈다. 화면의 공간감, 어디로 갈지 모르는 선의 처리, 색과 색에 대한 반응의 효과 등을 활용함으로써 자신만의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들을 거듭 발표해왔다. 그 결과 강석형 작가는 샌프란시스코, 런던 등지에서 여러 단체전을 연 것을 비롯해 국내에서는 서울과 김포 등에서 기획전 등을 가졌다. 한편, 이번 전시는 인간의 내면과 무의식을 표현하는 언어 중 가장 우선되는 `선`을 통해 `평면`에 대한 고정관념을 새롭게 풀어냈다. 그의 작품들은 예술 그 자체와 `나만이 느끼는 해석`의 조화에 목마른 이들에게 갈증을 해소해줄 전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강석형 작가의 3번째 개인전 `반항을 위한 방황`은 지난달(7월) 16일부터 오는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로146길 9(청담동) 2층 아르세갤러리에 마련된다. 관람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오전 11시~오후 6시에 가능하다. [인터뷰] ARCE갤러리 기획초대전 강석형 작가 "3번째 개인전 `반항을 위한 방황` 展 눈길… 단순하지만 섬세한 전시" "숨겨진 감정과 도전적 의지를 선과 색채로 표현" 미국 샌프란시스코 Academy of Art UniversityㆍBFA Fine art, 영국 Kingston University의 MFA Fine art를 졸업한 강석형 작가에게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뜻깊다. 바로 대망의 3번째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보는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는 강 작가에게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느낀 감회와 향후 계획을 물었다. - 그동안 활동을 설명해준다면/ 나의 모든 생활이 작품활동의 일환인 편이다. 최근의 일정을 보면 지난해 1월 말 영국에서 학업(석사)과 일련의 과정들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고, 이어서 예정됐던 첫 개인전 준비부터 올해 8월 지금까지 3번째 개인전을 마련했다. 그 과정 중간중간 오로지 작품에 대해 집중하며 정신없이 작업을 해왔던 것 같다. 특히 한국에 돌아오기 전에 전시에 대한 아이디어와 방식 등을 많이 구상해왔었는데 나름대로 전시마다 처음에 생각했던 표현들이 만족스럽게 나왔다. - `반항을 위한 방황` 전시를 기획하면서 중점을 둔 사안은/ 본인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는 현대미술에 대한 스스로 `개인의 감정표출`이라고 생각한다. 1번째 개인전과 2번째 개인전은 평면예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 중점을 뒀다면, 이번 개인전은 `예술을 한다`는 총체적인 경험에 있어서 완벽한 자유가 없다는 막막함과 답답함을 표현한 전시라고도 볼 수 있다. 늘 혁신을 추구하는 현대미술과 학계 일각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통해 메시지와 표현방식을 찾는 것을 `구시대적이지 않나`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다양성을 모두 인정하지 않는 그런 견해와 쏠림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하지 못하게 만들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망을 좌절시키는 현상이란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이번 전시 `반항을 위한 방황`은 현재 작가로서의 본인의 위치와 책임에 대한 불안ㆍ방황, 그리고 현대미술이란 시스템 안에서 한 명의 작가의 반항심을 표현한 전시라고 말하고 싶다. - 작품을 준비ㆍ진행하면서 소재(메시지)를 찾는 방식 혹은 활력ㆍ영감의 원천이 있다면/ 시간이 날 때마다 이미지를 찾고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분야는 정해져 있지 않고 인테리어ㆍ건축ㆍ사진ㆍ패션 또는 인물 등을 찾는다. 이미지를 보는 과정이 본인 작품의 `이것`이라거나, 소재나 영감의 원천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주로 다음 작품을 어떻게 할지 구상이 안 되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미지들을 찾아보게 된다. 서점에 가서 하루를 할애해 잡지를 모두 본다던가 인터넷과 SNS를 활용해 둘러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미술 작가들 작품들도 많이 찾는다. 일반적으로 현대미술이라 해서 꼭 난해하고 복잡한 작품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명성을 떠나 정말 마음에 닿는 작품들과 작가들을 찾고 그 작가들(현대미술)의 작품들을 보면서 지금 시대에 내가 하는 활동ㆍ작품의 현재 위치와 의미를 알게 되고 `어떻게 하면 작가ㆍ관객들과 타협할 수 있을까`란 질문들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한편으론 본인이 가진 잠자는 작품 속에서도 찾는다. 일례로 수년 전 작업을 멈추고 먼지가 수북한 그림 위에 또 다른 차원을 씌운다. 이어서 표현방식 등의 수정과 보완을 거치고, 재료의 사용법 등을 고민하면서 영감을 얻는 경우도 있다. - 향후 전시 일정과 계획은/ 개인전 이후 진행하던 작품들의 마무리와 새로운 활동 구상 등을 꾸준히 진행하려고 한다. 다음 전시는 2020년 1월께 GS건설 로비에서 2인전을 가질 예정으로 해당 전시는 신작보다는 사랑받았던 기존 작품들을 위주로 다시 전시한다는 구상 중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꾸준한 창작활동과 함께 전시와 레지던시를 찾아볼 예정이다. - 전시를 찾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격려해주시고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미술을 일반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특히 작가가 본인의 작품에 대해 완벽하게 풀이하거나 설명한다는 일은 어렵고 망설여지는 일이다. 방식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풀이가 되레 작품의 해석에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이란 우리 모두 가진 무의식 속에 언어지만 관객들은 자신이 속한 처지와 상황에 따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표현력을 갖고 있다. 평면을 넘어 `선ㆍ색`을 통해 자유로운 소통을 하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AU경제(http://www.areyou.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뉴스등록일 : 2019-08-19 · 뉴스공유일 : 2019-08-19 · 배포회수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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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김무선 · http://edaynews.com
대구․경북은 새(SE)로운 내일로 가는 사회적 경제 선도 도시로 비상했다.   8월 16일부터 2일간 처음으로 대구와 경북이 함께 공동 주최한 ‘대구․경북 사회적경제 박람회’에 약 1만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등 17일 성황리에 폐막했다.   지난해 전국 최초「대한민국 사회적경제 통합박람회」를 성공적으로 이끈 대구의 자신감과 경북의 풍부하고 다양한 사회적 경제기업이 만나 성사된 사회적경제 축제 한마당의 자리였다. 이로써 대구와 경북이 사회적경제 활동영역에서 상생과 화합의 의미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이번 박람회의 성공은 지속적으로 사회적경제 활성화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사회적경제를 통한 지역발전의 새 패러다임을 구축한 결과다.   지난 ’14년과 비교하면 사회적경제 기업수는 400여개에서 900여개로, 일자리수는 4,000명에서 7,800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사회적경제기업의 매출액 또한 1,600억원으로 2배 이상 향상됐다.   특히, 청년과 노인, 경력단절여성, 장애인 등 취약계층 고용률이 70%정도로 고용의 사각지대에 놓인 시민들의 고용정책의 하나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2019년을 대구․경북 상생협력의 실질적 원년으로 삼기 위해 시·도의 사회적경제가 가진 장점과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8월 9일 경부고속도로 서울방향 칠곡휴게소(칠곡군 왜관읍)에 대구기업이 경북지역에 처음으로 ‘사회적경제 팝업스토어’를 오픈, 대구와 경북의 사회적경제가 지역을 초월하고 협업하는 최초의 사례가 됐다.   아울러, 담보력이 부족한 사회적경제기업의 자금융통을 지원을 위해 특례보증을 실시해 14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6월 신용보증기금과 ‘대구․경북 사회적경제 금융지원 및 제품구매 업무협약’을 체결해 대구와 경북의 2,000여개의 사회적경제기업들이 필요한 자금을 손쉽게 지원받아 시장경제 내에서 홀로 설 수 있는 튼튼한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 해 7월부터는 ‘대구 사회적경제 청년인턴 지원사업’을 추진해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과 젊은 인력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지역의 사회적경제기업이 만나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내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금까지 사회적경제가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기업발굴과 성장촉진, 자립기반조성 등 현장에 꼭 필요한 정책을 추진해 사람이 중심이 되는 행복한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고령화․양극화 현상으로 나타나는 사회문제를 사회적경제 모델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공공서비스와 연계한 지속 가능성을 확장하고자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뉴스등록일 : 2019-08-19 · 뉴스공유일 : 2019-08-20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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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조강봉 · http://edaynews.com
(2) 일본 자료   위의 ③의 독도에 관한 일본자료를 바탕으로 왜인이 사용했던 독도(獨島)에 관한 문서나 지도 등에 이칭들의 출현 빈도를 표를 만들어 보이면 다음과 같이 松島, 竹島, 子山, 于山, 蔚島가 나타난다. 이를 보면 일본인들은 獨島를 주로 松島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異 稱 松島 竹島 子山 于山 蔚島 계 빈도수 9 3 1 1 1 15 ① 于山島 (九鬼嘉隆, 朝鮮國地理圖)   1592년 구키 요시다카(九鬼嘉隆) 등이 제작한『조선국지리도』에 들어 있는 ‘팔도총도’와 ‘강원도별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于山島와 鬱陵島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팔도총도’를 그대로 따른 지명으로 독도를 우산도로 표기한 자료다.   ② 松島 (隱州視聽合記)   일본에서는 獨島를 주로 松島라 표기하였는데 이런 자료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1667년 이즈모(出雲)의 관리 사이토 호센(齋藤豊仙)이 명에 의해 오키섬을 돌아보고 보고 느낀 바를 채록한『은주시청합기』의 기록에는 “隱州는 북해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隱岐島다....북서쪽으로 이틀 낮 하룻밤을 가면 松島가 있고 또 하루를 더 가면 竹島(俗言에 耆竹島)라고 말하는데”라 하여 獨島을 松島라 표기하고 있다. 1823년 大西敎保가 은주시청합기를 기초로 하고, 또 오키섬 어부 등의 실재 경험담 등에 의하여 『은주시청합기』를 증보, 수정한 ‘隱岐古記集’에 “亥의 방향으로 40여리에는 松島가 있다.”라 하여 독도를 松島로 표기하고 있다. 1870년「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에 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을 조사한 항목에 竹島와 松島로 표기했다. 1876년 일본 육군참모국이 간행한「朝鮮全圖」에 강원도 동쪽에 울릉도, 독도가 다케시마(竹島)와 마츠시마(松島)로 기록했다. 1878년 야마무라(山村淸助)가「大日本分見新圖」에 竹島가 하나, 松島를 두 개 그렸다.1882년 기무라(木村文造)가 그린 「동판조선국전도(銅版朝鮮國全圖)」는 동해상에 그려진 竹島와 松島 즉, 울릉도와 독도는 모두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③ 子山島 (청조일통지도)   子山島란 지명이 우리나라 자료에 맨 처음 출현한 것은 안용복의 도일을 기록한 『숙종실록』에서다. 子山은 울릉도의 부속 島嶼란 뜻으로 불렸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于山島의 ‘于’자를 ‘子’자로 잘못 사용하여 생긴 지명일 가능성도 있다. 일본 자료는 다음과 같이 한 번 나타난다. 1835년 그려진 淸朝一統地圖에는 강원도 옆에 울릉도와 독도를 鬱陵과 子山을 그려 넣고 또 울릉과 子山島가 竹島와 松島인지 모르고 일본 가까이에 또 다케시마(竹島)와 마츠시마(松島)로 표기한 2개의 섬을 그려 놓았다. 섬을 4개 그렸다.   ④ 蔚島 (조선전도)   1873년 일본 海軍水路寮에서 만든「朝鮮全圖」에 于山島와 蔚島로 기록했다. 이는 우릉도를 줄여 표기한 지명이라 생각한다.   ⑤ 竹島 (육지측량부발행지도구역일람도)   1904년 9월 29일 오키섬 사이고마치(西鄕町)의 나카이 요사부로(中井養三郞)는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하고, 자신에게 빌려달라”는「리앙꼬島領土編入竝貸下願」을 일본 외무성, 내무성, 농상무성에 제출하자, 1905년 1월 28일 일본 내각은 ‘독도는 주인 없는 무인도(無主島)로서, 일본인 나카이 요사부로에 의해 실효적 경영이 있었으니, 지금부터 다케시마(竹島)로 칭하고, 일본 島根縣 隱岐島司의 관할 하에 둔다”고 결정하였다. 이후 1936년, 일본 합동참모본부 산하 陸地測量部發行地圖區域一覽圖를 만든다. 당시 가장 정확한 공신력을 자랑하던 이 지도에서 독도는 竹島로 표기되었다. 일본 자료를 보면 獨島에 대한 名稱은 대부분의 자료에 松島라 표기되었다. 竹島로 표기된 자료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표기한 사례만이 있다. 사실 竹島는 實錄에 “왜인들이 말하는 죽도란 곳은 곧 우리나라의 울릉도인데, 울릉이란 칭호는 신라, 고려의 사서와 중국 사람의 문집에 나타나 있으니 그 유래가 가장 오래 되었다. 섬 가운데 대나무가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또한 죽도란 칭호가 있지마는, 실제로 한 섬에 두 명칭인 셈이다.”이라 하여 鬱陵島에 대나무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獨島와는 거리가 먼 이름이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뉴스등록일 : 2019-08-19 · 뉴스공유일 : 2019-08-19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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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건강정보
강하늘아름 · http://edaynews.com
시흥시(시장 임병택)는 8월 6일부터 9월 27일까지 <찾아가는 미세먼지 저감단>을 운영 중이다.   <찾아가는~ 미세먼지 저감단>의 세부사업으로는 ‘미세먼지 저감 컨설팅’과 ‘미세먼지 저감 시민공감대’가 진행되고 있다.   우선 ‘찾아가는 미세먼지 저감 컨설팅’은 지난 4월, 청정도시 시흥을 위해 전부서가 시행하는 미세먼지저감 1부서 1정책사업의 진행내용을 확인하고 개선방안을 논의해 부서들이 진행하고 있는 사업들의 지속적이고 더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컨설팅을 하는 내용이다.   ‘찾아가는 미세먼지 저감 시민공감대’는 각 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통장협의회 및 주민자치위원회 등 유관단체를 대상으로 시에서 추진 중인 미세먼지 저감 사업을 설명하고, 천식이나 호흡기질환, 심혈관계 질환 등을 유발하는 미세먼지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 선택법·착용법 등을 교육해 가정의 실내공기질 개선과 가족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한다는 것.   더불어 △공회전하지 않기 △공기정화 식물 키우기 △실내청소는 물걸레로 하기 등 생활주변 미세먼지 줄이기 10가지 약속과 미세먼지 7가지 행동요령 등 미세먼지와 관련한 교육과 홍보를 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시흥시민 모두가 마음껏 맑은 공기를 마시고, 푸른 환경을 누리는 그날까지 지속적인 저감사업을 시행할 것”이라며 “시민 모두가 함께 공감하고 동참해 달라”고당부했다.
뉴스등록일 : 2019-08-19 · 뉴스공유일 : 2019-08-19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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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책
안무월 · http://dsb.kr
사랑 시와 꽃 그림이 있는 마을  최택만 시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학창 시절 김소월의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는' 라는 진달래꽃 시를 읽지 않는 분이 없을 것이다. 한 때 이 시(詩)가 로마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 시인의 시 '하늘의 옷감'과 비슷하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두 분은 꿈과 시를 통해 연인 또는 일반 시민들을 감동시킨 것이 공통적이다. 그러니 65년부터 딱딱한 기사나 평론을 써온 본인에게 감동을 준시는 따로 있다. 직장과 가까이 있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렸다가 우연히 이명순 시인이 쓴 '바람의 가슴에 무늬를 새기며"라는 시집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그 이후 이 시인의 작품을 필사하고 암기도 하면서 습작(習作)에 열중했다. 그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매주 발행하는 '상의 주보'에 경제평론을 집필하면서 시 공부는 잊었다. 대한상의 회원사들은 회사마다 사보(社報)를 내고 있는데 그 회사 간부나 홍보실애서 자신의 회사 사보에도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이 끊이지 않아서 경제평론을 써 주면서 가끔 시도 한 편 씩 보내 주었다   한국문학사 홍상화 회장(본인과 대학 동기)이 어느 회사 사보에 실린 내 시를 읽고 "시를 쉽게 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격려에 힘을 얻어 시작(詩作)을 계속하게 된 것이다   요즘에는 교수신문과 대한언론인회 회보 그리고 파크골프신문에 평론, 산문, 시를 쓰고 있다. 이번 시집 출판을 위해 작품(그림)을 주신 정온모 전 이화여대 교수님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린다. 요즘 본인 시를 읽고  많은 조언을 해준 박현주 문우(文友)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그동안 9권의 전자책(e-book)을 출판해준 한국문학방송 안재동 주필에게 깊은 사의(謝意)를 드린다. ― <머리말>         - 차    례 -    머리말  제1부  숭고한 사랑을 꿈꾸며 양평에서 부른 영혼의 노래  긴 세월 접어둔 이야기  단 하나뿐인 사람  숨이 멈추는 일각까지  천상(天上)의 사랑  세월이 흐르면  귀중한 사람  맑은 영혼  바보가 되고 나서야  결국 하나입니다  영혼이 깃든 사랑  사랑꽃 피우려나  하얀 마음  사랑의 힘  사랑의 완성  늘 가까운 까닭은  당신의 눈을 보면  오작교  뜨거운 입술  밤하늘에 가득한 별  뜨거운 마음  그대를 사랑해요  제2부  생활 속에서 본 이야기 어디로 떠나고 싶던 날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한 장의 카렌더  한 노인의 자화상  이름 석 자  진달래꽃  눈빛으로 주고받는 사랑  진실한 사랑  살다가 힘들면  장미꽃 열 송이  사랑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고대산(高臺山)  시의 길을 여는 샛별에서  행복의 조건  비 오는 날의 환영  하얀 속살 드러낸 목련꽃  바다의 탄생  님이 오시는 길  그대 어서 오세요  눈이 내리는 날이면  나의 기도  동백꽃  계양산  따뜻한 말 한 마디  인천공항  노년의 꿈과 사랑  소요산  제3부  문우(文友) 늘해 박현주 시(詩) 법주사 풍경 소리  봉정암을 오르며  불암사에 가슴을 묻고  선운사 동백꽃  정열이 타오른 사랑  당신을 위해서라면  [2019.08.17 발행. 102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뉴스등록일 : 2019-08-18 · 뉴스공유일 : 2020-07-12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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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김세곤 · http://edaynews.com
1592년 4월13일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4월27일에 신립장군이 탄금대에서 패하자 선조는 4월29일 밤에 한양을 떠나 북으로 피난 갔다. 5월3일에 왜군은 한양에 무혈입성하고 조선 전역을 점령했다. 오직 남은 곳은 전라도와 평안도 일부였다.    이때 나라를 구한 것은 전라수군과 의병들이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한산대첩으로 제해권을 장악했고, 호남의 김천일 · 고경명, 경상의 곽재우, 충청의 조헌 등이 의병으로 나서 왜군과 싸웠다.    그런데 담양에서 거의하여 6천명의 의병을 모은 고경명(1532∽1592)이 7월10일 금산전투에서 순절했다.    이 소식을 듣자  박광전은 병(病)중에 격문(檄文)을 썼다.    “7월 모일에 전라도 전(前) 현감 박광전, 임계영등은 능성현령 김익복 등과 더불어 삼가 두 번 절하며 열읍 여러 벗님에게 통문을 돌립니다.   아! 국가가 의심없이 믿고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하삼도(下三道)인 경상, 충청, 전라도가 건재하기 때문이었는데, 경상도와 충청도는 이미  적의 소굴이 되었고 오직 호남만이 겨우 한 모퉁이를 보전해서 군량의 수송과 군사의 징발이 오직 전라도만을 의지하고 있으니, 국가를 일으켜 세울 기틀이 실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중략) 이 격문이 도착하는 날에 즉시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 달 20일 보성 관아의 정문 앞으로 모이십시오. 창의를 도모하십시오.   7월20일, 보성관아에 700명의 의병이 모였다. 전라좌의병은 임계영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와병 중인 박광전의 큰 아들 박근효는 참모관이 되었고, 동생 박근제도 의병에 참여하였다. 박광전은 두 아들을 의병으로 보낸 것이다. 전라좌의병은 순천에서 장윤과 합류하여 장윤을 부장으로 삼았다. 이후 전라좌의병은 경상우도감사 김성일의 요청으로 최경회가 이끄는 전라우의병과 함께 진주성 전투에 참여하여 10월의 진주대첩에 일조한다.     1593년 12월27일에 광해군은 전주에서 과거를 보여 문신(文臣) 11명과 무신(武臣) 1천6백 명을 뽑았다. 광해군의 사부였던 박광전은 병든 몸으로 전주로 달려갔다. 그는 광해군에게 ‘시무책 10조문’을 올린다. 시무책의 핵심은 먼저 민생이 안정되어야 하고, 백성들이 농사를 지어 식량을 생산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광해군은 시무책을 자세히 살피고 박광전을 극진히 대접했다.    1597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왜군은 전라도부터 초토화시켰다. 8월16일에 남원성을 함락하고 8월18일에 전주에 무혈 입성했다. 이 때 전라감사 황신과 고을 수령들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황신은 부안으로 피신했고 정읍현감, 진원현감 등 도망간 수령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다행히도  9월7일에 명나라 군대는 직산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왜군은 남하하면서 9월16일에 정읍에서 회의를 하고 시마즈 등 13명의 장수들이 전라도에 주둔하기로 했다. 왜군들은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코를 베었으며 산하를 불태웠다. 이러자 백성들은 산속으로 숨고 배를 타고 피난 가기에 바빴다.   72세의 박광전도  보성군 문덕면 천봉산으로 피신했다. 10월에 생원 박사길이 숲속에서 나와 말했다. “국가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찌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의병을 일으켜서 국가의 일에 죽읍시다.”   그러자 사람들이 박광전을 의병장으로 추대했다. 박광전은 “난리는 날로 급박해지고 나의 병세도 날로 위중하니 나는 곧 죽을 것이요. 그러나 한 줄기 목숨이 아직 붙어 있으니 맹세코 이 왜적들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는 없소.” 하고 결속을 다졌다.   박광전 의병은 동복전투(화순군 동복면)에서 시마즈의 왜적을 물리쳤다.  보기 드문 값진 승리였다. 이러자 왜적들은 일시 순천 쪽으로 물러났다.   그런데 도망간 고을 수령들은 관내를 이탈한 죄도 큰 데 박광전의 공을 시기하여 전라감사 황신에게 모함하였다. 황신은 박광전을 전주감영으로 불러 조사했다. 박광전은 참담했다. 의병으로 나섰는데도 자신을 죄인 취급하다니. 전주감영에서 조사를 받은 박광전은 조상의 묘소가 있는 진원현(장성군 진원면)에 들렀다.  비참한 심정을 조상님에게 말하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그의 마지막 길을 예감하여서였을까. 11월18일에 죽천 박광전은 세상을 떴다.    칠순의 의병장 박광전, 그는 정녕 실천의 선비였다.    사진  박광전 묘소  (참고문헌) o 김세곤,  도학과 절의의 선비, 의병장 죽천 박광전, 온새미로,2016 o 송의호, 애민 · 충절로 의병 일으킨 죽천 박광전, 월간 중앙, 2019년  4월호, p 336- 340 
뉴스등록일 : 2019-08-18 · 뉴스공유일 : 2019-08-18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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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책
안무월 · http://dsb.kr
거절할 수 없는 투정 이학순 시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시란 풀피리를 부는 것이라는 이해인 시인의 말에 공감하면서 나도 지금 풀피리를 불고 있습니다.   가락이 맞는지 음정이 맞는지 나 몰라라 하고 당당하고 뻔뻔하게 풀피리를 붑니다.   그리고 무척 행복하고 흐뭇합니다.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시를 쓰고 있음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이 내게 임함입니다.   나의 글을 무조건 칭찬하고 박수를 보내며 시인이 분명하다고 위로해주는 가족들의 응원에 힘입어 시집을 내어 봅니다. 시를 접하도록 권유하고 아시아문예에 등단을 허락한 島松 송병훈 박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서문>         - 차    례 - 서문 축시 제1부  춘(春)의 단상(斷想) 춘(春)의 단상(斷想)  단추 1  단추 2  걸쇠 없는 심장  그리움  민들레  나의 봄  봄이 왔어요  민들레 홀씨  휴식  봄이 간다  제2부  산책길 인생  스프링클러   구름  날개  유치원 가는 길 Ⅰ  해당화 꽃 질 무렵  신도시  치자꽃  감  공원 벤치에서  산책길  가을바람  이승과 저승  기다림  제3부  황혼 황혼Ⅰ  새 해  고목나무  황혼Ⅱ  2월의 오후  정호승씨의 시를 읽으며  봄을 기다리며  세월  죽음  위문객  불면증  제4부  여우팥꽃 물음과 답  여우팥꽃  성찬식  길치  시간Ⅰ  시간 Ⅲ  돌이킬 수 있다면  소원  질량불변의 법칙  제5부  사랑하는 사람아 老부부  사랑하는 사람아  시간 Ⅱ  부부는 사팔뜨기  이사 하는 날  이별  친구  그 옛날 선생님은  눈물  거절 할 수 없는 투정  유치원 가는 길 Ⅱ  어머니  여보!  제월(霽月)  자화상  [2019.08.17 발행. 111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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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강한빛 · http://edaynews.com
  고흥군(군수 송귀근)은 제74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8월 14일부터 8월 26일까지 군청 1층에서 독립운동가 활동사진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8월 14일부터 시작된 전시회에서는 일제의 국권침탈로 억압 받고 있던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활동사진 3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대한민국상이군경회 고흥군지회(회장 배용성)에서 주최 하였고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전라남도지회에서 사진 등을 후원하였다.   배용성 회장은 “8.15광복절을 맞아 우리 후손들이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렸했다”면서 “최근 일본의 경제 침략에 맞서 대한민국 국가유공자로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고흥군에서는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유족위문 및 위문금을 지급하는 등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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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건강정보
강한빛 · http://edaynews.com
광주 서구(청장 서대석)가 취약계층 임산부 및 영유아의 빈혈, 저체중, 영양불량 등 영양문제 해소를 위한 영양플러스 사업을 추진중이다.   정기적인 영양교육과 보충식품을 지원하여 취약계층의 건강수준을 향상시키고자 마련된 이번 사업은 기준 중위소득의 80%이하 소득기준 가정의 영유아, 임산부, 출산․수유부를 대상으로 한다.   대상자의 선정은 영양위험 요인인 빈혈검사(혈중 헤모글로빈 농도 측정), 신체계측(신장 및 체중 측정), 영양섭취상태 조사(24시간 회상법), 기타 영양위험요인 조사를 통해 진행된다.   사업은 대상자별 단계별 필요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맞춤형 식품패키지(6종) 공급과 올바른 식습관 형성 및 빈혈개선 등을 위해 매월 1회 영양교육 실시로 진행되며 6개월 후 영양 상태를 평가해 연장여부를 결정한다.   또, 아이를 키우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영양플러스 대상자에게 심폐소생술 및 응급처치 관련 교육도 실시한다.   서구 관계자는 “취약계층의 임신부 및 영양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올바른 식생활 유도 및 건강한 삶의 질을 제고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쳐 나가겠다.” 고 말했다. 한편, 서구 보건소에서는 영양플러스 사업 외 임산부를 위한 “예비엄마 건강교실” 및 예비부모를 위한 “야간부부 출산교실”을 운영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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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책
안무월 · http://dsb.kr
미세기로 본 한국, 하루에 7번 밀물 드는 나라 조선  최두환 지음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미세기潮汐[조석]는 나의 인생에서 황금과 같다. 이것 때문에 인생의 슬픔과 기쁨의 맛을 보았고, 지금의 나를 존재케 하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1978년 여름 해군대학 지휘참모과정 3개월 동안 내내 충무공 리순신 연구에 파묻혀 임진왜란 해전을 육하원칙에 따른 전투결과보고서 형식으로 총정리 하느라고 정작 중요한 많은 과목을 소홀히 하여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그 뒤에 고속정 편대장을 맡고서 인천항을 드나들면서 스스로 명량해전의 승리의 비결을 캐기로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명량울돌목은 수로가 좁고 조류가 강한 때문에 모든 배들의 운항이 어려움에도 겨우 판옥선 13척으로 왜적선들133~333척과의 첫 교전 시간이 익히 배워 온 조성도 교수의 논리대로 ‘아침 7시 저조 정조시간’이라는 것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속정 정장과 편대장 시절에 겪었던 것으로 서해 이작도에는 그 두 섬 사이의 수로가 물살의 세기라든지 빙빙 돌며 흐르는 바닷물이라 계류 바지에 고속정이 출입항하고 배를 대기조차 무척 힘든 조건이기 때문에 어쩌면 명량수로와 지형이 매우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악조건의 수로를 드나들면서 생각하였다. 그 많은 왜적선들은 어떻게 이동했으며, 충무공은 임진왜란 당시에 무척 열악한 상황의 해전에서 배들을 어떻게 지휘했으며, 울돌목에서는 그 강한 조류를 어떻게 이용했을까? 첫 교전이 과연 저조시였을까? 아니면 고조시였을까? 참을 수 없는 탐구욕이 끓어올랐다.   그래서 인천항수로국을 찾아갔다. 팔미도 근처의 조석 및 조류를 조사한 자료를 1년치만 복사하여 왔다. 400년쯤 전의 조석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당시로서 만만찮은 복사비를 들였지만, 그 방대하고 복잡한 수치를 분석해내는 일은 생각보다는 진척을 보지 못하였고, 내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기도 하거니와 너무도 힘들어 결국에는 그 분석을 포기하였다. 그렇게 허탈한 상태에서도 끈을 놓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았다. 낚시꾼이나 어부들이 즐겨 쓰는 사리와 조금이 달마다 같은 날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원리를 알지 못하고 있다가, 생도 시절에 배운 “지문항해” 과목에서 ‘조시약산법潮時略算法’이 떠올랐다. 그 책을 찾아 다시 꺼내들고 계산해 보았다. ‘월령月齡이 같은 달의 조석은 1개년 거의 같다. 월령에 월평균 지차遲差 50분을 곱하고 60으로 나누면 대략 그 날의 정중시가 되며, 여기에 평균고조간격을 더하면 오후의 고조시가 된다.’는 원칙을 찾아냈다. 참으로 간단하다. 이제 1000년이든, 몇 만 년 전의 미세기라도 찾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미 고속정 정장 때부터 자료를 수집하면서 5년에 걸쳐 정리해놓은 하나의 논문에다 마지막으로 이 원리를 적용하여 「임란시 강강수월래의 군사적 의의」를 1985년도에 해군대학에서 간행하는 『해양전략』지에 투고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명량해전 최초 교전시간’의 문제점이 ‘아침 저조정조 때인 7시 전후’가 아니라, ‘고조의 최강유속인 오전 10시 45분경’이라고 밝혀서 제시되었다. 청천벽력처럼 들렸을 단지 그 한 사람의 ‘게재불가 소견’ 때문에 3년이나 뒤늦은 1988년에야 편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원문 수정요구 없이 싣기로 했다는 것을 해군대학 김일상 선임교수의 편찬회의 뒷담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자료보충이 더 필요한, 당시 음력 9월 16일이 양력 10월 26일인 1988년도의 조석을 더 보충하여 『해양전략』 제55호에 실렸다. 이런 시점에 나는 미세기 특성의 요점을 알아내고, 풀어내는 비법처럼 하나의 비밀스런 것을 캐냈기에 미세기에 관하여 더 발전적 연구가 필요함을 깨닫고 자료를 더 수집하였다. 그러던 중에 해군사관학교 박청정 군사학 교수의 논문 「물때―조류의 세기」가 『해양전략』 제51호(1987년)에 실린 사실을 알았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나와 같은 원리의 미세기를 알아내었고, 뒷날에 “세계해양월력”을 만들어 특허까지 냈다. 반면에 나는 논문 원고를 더 일찍 내고도 늦게 실리게 되어 선수를 뺏기는 결과가 되었지만, 연구 방향을 꾸준히 충무공 리순신의 전략전술과 휫손리더십에 두었다. 명량해전의 연구는 내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함께 준 고귀한 산물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임진왜란 연구가 거듭 될수록 역사의 진실에 의문이 더 생겼다. 지명에서 송미포 적진포 소비포 오리량 등등이 지도 위에는 잘 나타나지 않고 이름뿐이라는 것에 현장을 찾아 나섰지만, 성과는 별로 없었으며, 웅천땅 합포를 두고 그곳이 진해라지만, 정작 진해는 딴 곳에 있는 진동이라고 하며, 또 마산은 뭐냐고 하면서 갈등만 생기고, 그런 모순 속에서 여전히 선학들의 글들을 앵무새처럼 답습하는 것에 그쳤다. 더구나 1596년병신 9월 15일에 선조 임금이 통제사 리순신에게 보낸 격려문에서 “습기 찬 독한 안개 속에서”라는 원문이 “瘴霧蠻烟장무만연”인데, 이것은 그 번역과는 달리 ‘중국 남방 지방[蠻地]’에 풍토병을 발생케 하는 고약한 기운[惡氣]이 올라 생긴 뿌연 안개와 가랑비[烟雨]를 말한다. 게다가 통제사 리순신이 전사하자, 선조 임금이 지은 제문에 “한바다를 가로막음 그대 힘만 믿었더니”로 알고 있었던 원문은 “蔽遮江淮폐차강회 惟卿是倚유경시의”였고, 그 번역 ‘한바다’는 사실 ‘장강[江]과 회하[淮]’인 것이다. 이런 현상에서 보면, 의역으로 대변되는 번역은 진실과 사실에서 동떨어진 또 다른 창작물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동의보감』에 나오는 “瘴毒”은 소리로 보아 [장독]이니, 불쑥 매[곤장]를 맞아 덧난 ‘杖毒’을 끄집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는 이렇게 잘못된 번역에 너무도 익숙하여 그것이 잘못인 줄을 깨닫지 못한다. 더구나 S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어느 문학박사가 “瘴毒”의 특질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자는 『고려사』『조선왕조실록』은 두말할 것도 없고, 옛날 유명한 학자들, 특히 거제니 남해 제주 해남 등의 남방으로 귀양간 사람의 문집 속에는 많이도 나오기 때문이다. 알아야 할 것을 모르면, 백치와 무엇이 다르랴. 지금의 역사를 마치 삼인성호三人成虎 증삼살인曾參殺人처럼 거짓말을 참말로 믿는 것과 같다.   그리고 미세기 현상에 이르면 더 기가 찬다. 누구나 찾아 읽을 수 있도록 만든 「한국고전번역원」에서는 제목이 “조신潮迅/미세기”이라 했음에도 “세 마리의 토끼와 세 마리의 용의 물이요, 세 마리의 뱀과 한 마리의 말의 때로구나.”라는 번역문이 있고, 다른 원문의 글도 바로 찾을 수 있더라도, “三兎三龍水 三蛇一馬時”를 찾아본들, 이 뜻이 무엇인지를 알겠는가? 토끼·용·뱀·말은 맞지만, 사실 그런 뜻이 아니라, 그것은 “밀물은 달마다 첫날부터 묘시卯時에 사흘[卯初卯中卯末]과 진시辰時에 사흘[辰初辰中辰末]의 미세기”라는 날짜에 따른 그 시간의 명칭이다. 이러고서야 어찌 학문이 이루어지며 진실 탐구가 이루어지겠는가 싶다. 이것을 두고 실사구시實事求是는 강 건너 불구경하기와 같다는 말이 제격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흐르고, 진실은 밝혀지게 되어 있다. 나의 갓 30살 젊음의 도전이 지금까지 이어져 이제 『미세기로 본 한국 : 하루에 7번 밀물이 드는 나라 조선』을 펴내게 되었다. 내 스스로의 숙제가 40년이 지나서야 풀렸다. 잘못된 국사 한반도에서 올바른 역사의 세계로 향하여 그 강역이 넓혀지고 역사의 진실이 조금은 드러난 셈이다.   그래서 『기효신서紀效新書』의 병법이 조선의 수군에서도 활용했을 것임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여 「임진왜란시 광주양 해전 고찰」에서 명군 함정 39척이 좌초된 까닭을 밝혀냈다. 그것은 한반도의 조석으로는 고조시이되, 『기효신서』의 절동조후浙東潮候로서는 저조시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임진왜란 때의 조선수군도 『기효신서』의 병법을 적용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명량해전 또한 미세기조석에 따른 지리적 문제를 새롭게 분석할 필요가 대두된 것이다.   그리고 물론 절동浙東이란 말이 절강의 동쪽인데, 절서浙西란 말이 잘 쓰이지 않아 전당강錢塘江을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전당강 조석이 절동 조석과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절동 조석에 맞아 떨어지는 곳이 어딘지를 찾아보았다. ‘월령이 같은 곳에서는 조시潮時는 같다.’는 원칙에서 보면, 절동의 조석은 아프리카 동부 바닷가의 조석과 일치한다. 그래서 절강과 전당강은 지리적 위치와 역사를 따로 분리하여야 마땅하다. 이제야 말로 중국과 조선의 지리적 문제와 상호관계를 전혀 새롭게 해석해야 할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미세기[潮汐]라면 대개 반일주조 내지 일주조를 생각하는데, 무려 하루에 일곱 번의 밀물, 즉 일일칠조一日七潮란 말이 있는가 하면, 『등단필구』에서 강북조후江北潮候가, 『단구첩록』에는 서북조후西北潮候라는 무척 생소한 글자로 실려 있지만, 글자 하나 틀리지 않는 같은 글월이라 이것이 어디에서 일어나는 현상일까에 중점을 두고 세계 조석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ADMIRALTY TIDE TABLES』 (The UK Hydrographic Office, 2011) 두 권(Vol.3/Vol.4)을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였다. 거기에서 www.sailwx.info를 알고서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까지 세계 곳곳의 조석을 더욱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서북조후는 유럽 서북쪽 발트 해의 서쪽, 북해의 남쪽 바닷가에 해당된다. 여기서부터 자연 현상의 미세기에 따른 역사의 오랜 비밀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비밀은 나의 오랜 숙제가 되었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세종대왕은 죄인을 사이四夷로 내쫓기도 하고, 사이를 정벌하기도 했으며, 세조는 사이에 위엄을 보였으며, 성종은 선왕 때부터 사이를 통치해왔다고 강조했으며, 임진왜란의 당사자인 선조는 사이가 와서 복종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사이는 중국을 중심으로 동이·남만·서융·북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절대로 한반도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낱말이고 통치범위이다. 이 사이를 통치했다는 조선의 임금이 황제가 아니면 불가능하고, 이것이 풀리지 않으면 역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미세기로 본 아프리카는 조선에서 무엇인가? 그리고 유럽은 조선에서 무엇인가? 조선 강역의 정체성, 한국은 과연 무엇인가? 오로지 이에 대하여 그 개괄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제 역사는 불편한가? 반드시 진실로 다시 쓰여야 한다. ― <머리말>                   - 차    례 -  머리말 | 이 불가역적 역사는 불편한 진실일 뿐인가  일러두기  제1장 미세기란 무엇인가?  제2장 하루에 7번 미세기가 드나드는 나라       제1절 조석과 조류의 특성       제2절 하루에 7번 밀물, 일일칠조一日七潮의 지역  제3장 서북조후, 중국의 서북쪽 해안 조석     제1절 서북조후西北潮候는 어디인가?     제2절 강북조후江北潮候는 어디를 가리키는가?     제4장 동남조후, 중국의 동남쪽 해안 조석     제1절 동남조후東南潮候는 어디를 가리키는가?     제2절 절동조후浙東潮候는 어디를 가리키는가?     제3절 절동조후와 동남조후와의 만남 그리고 헤어짐  제5장 절강浙江과 조강祖江의 미세기     제1절 절강 지역의 특성과 지리적 위치     제2절 조강은 어디인가?     제3절 강경읍 포구 옥녀봉 해조문解潮文  제6장 미세기와 임진왜란 해전사     제1절 임진왜란 때에 『기효신서』의 미세기를 적용     제2절 명량鳴梁/울돌목 해전     제3절 광주양光洲洋 해전     제4절 임진왜란, 원숭이와 흑인을 동원  제7장 전통 미세기 현상과 해당 지역 판단       제1절 비밀 같은 조선    1. 조선의 서해 : 흑해와 지중해    2. 오로라로 본 조선      3. 빙하가 있는 조선        4. 사막이 있는 조선    5. 조천록朝天錄, 중국으로 가는 길    6. 모세의 기적 같은 적도로 피난       제2절 동남 전당강 조후와 아시아 지역       제3절 절동 조후와 아프리카 지역       제4절 아프리카 : 백제에 이은 전라도 땅    1. 일식으로 본 조선    2. 펠리칸의 땅  제8장 결론  부록-1 : 오로라 출현 실태  부록-2 : 미세기[조강부/1일7조/동해무조]  1. 서긍徐兢의 『고려도경』 해도  2. 리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전집』의 조강부祖江賦  3. 성현成俔/의 『용재총화』 조수의 왕래  4. 한백겸韓百謙의 『구암유고』 조석변  5. 줄리오 알레니Giulio Aleni의 『직방외기』 1일7조  6. 장유張維의 『계곡만필』 동해에 밀물과 썰물이 없는 것에 대한 글  7. 리익李瀷/의 『성호사설』 1일7조一日七潮  8. 안정복安鼎福/의 『순암부부고』의 조석설  9. 성해응成海應/의 『연경재전집』의 「조강도지祖江濤志」에서  10. 정약용丁若鏞/의 『여유당전서』의 동해무조변東海無潮辨  11. 리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조석변증설  12. 리유원李裕元의 『림하필기』의 조석  부록-3 : 조석표  1. 주바 강Jubba River  2. 아시아 동부 해안  3. 아시아 동남부 해안  4. 유럽 서북부 해안(1)  5. 유럽 서북부 해안(2)  6. 유럽 서북부 해안(3)  7. 유럽 서북부 해안(4)  8. 아프리카 동부 해안  9. 아프리카 동남부 해안  10. 아프리카 남서부 해안  11. 아프리카 서부 해안(1)  12. 아프리카 서부 해안(2)  참고 문헌  [2019.08.15 발행. 525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책은 콘텐츠몰.com 에서 바로 구매 및 열람이 가능합니다. 콘텐츠몰 바로가기(클릭) ◑ 전자책 미리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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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봉 · http://edaynews.com
(3) 일본 자료 연도 도서 및 문서와 지도 울릉도 독도 1693 안용복 사건 기록 竹島 松島 1751 기따구니 미찌앙『竹島圖說)』 竹島 松島 1775 長久保赤水, 『日本輿地路程全圖』 竹島 磯竹島 松島 1785 하야시시헤이林子平 三國接壤之圖 동해 가운데 섬 2개 사이에 竹嶋를 표기한 후(朝鮮ノ持ニ) 『三國通覽圖說』附圖5장중 1圖 가 朝鮮八道之圖 鬱陵嶋 千山國   1787 -1797 프랑스 영국이 조선가까이 다즐레 죽도 서쪽 먼바다, 아르고노트, 송도 1823 大西敎保가 은주시청합기를 수정 증보한 ‘隱岐古記集’ 竹島 松島 1835 『淸朝一統地圖』(섬 4개 그려짐) (鬱陵) 竹島 (子山) 松島 1854 러시아 동해얀 실측 아르고노트가 실제섬아님 밝힘 1867 『大日本防正全圖』(隱岐 북쪽 두섬) 두 섬사이에竹島표기 1870 『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 竹島 松島 1873 일본 海軍水路寮「朝鮮全圖」 于山島 蔚島 1876 일본 육군참모곡「朝鮮全圖」 竹島 松島 1876 일본海軍水路寮「朝鮮東海岸圖」     1877 일본 내무성이 태정관에 제출 日本海內竹島外一島地籍編纂方伺 竹島 外一島 <이하 표 생략> 2) 獨島 지명 검토   위의 자료를 중심으로 문서나 지도에 표기된 獨島의 이칭들이 12개나 된다. 우리는 獨島의 명칭을 선인들이 ‘于山島’라 칭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于山島’는 본대 울릉도를 칭하는 ‘于山國’ 이름이었기에 혼동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于山國은 신라가 정벌하여 없어졌지만 于山이란 이름은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한 개념으로 계속 사용되어 왔다. 울릉도는 亏陵, 亏陵 武陵, 茂陵 등으로 표기되었고 獨島는 于山島로 표기되었기 때문에 독도와 울릉도의 명칭에 혼동이 야기되었다.           (1) 우리나라의 자료     ①  于山島 (고려사, 세종실록, 八道全圖)     獨島는『고려사』地理志와『世宗實錄』地理志에서 ‘于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한 원문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鬱陵島 在縣正東海中 新羅時稱于山國 一云武陵 一云羽陵 …중략…一云于山武陵本二島 相距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고려사』권58, 地理志)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新羅時 稱于山國 一云鬱陵島” (『世宗實錄』권153, 地理志)  위에서 “于山과 武陵은 본래 二島로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한 날이면 가히 볼 수 있다” 하였다. 이는 당시에 분명히 ‘于山武陵’은 鬱陵島와 獨島를 지칭한 것이다. “날씨가 맑으면 볼 수 있다”는 기술에 부합되는 섬은 獨島와 鬱陵島 밖에 없기 때문이다.   獨島가 처음으로 그려지고 또 지도에 獨島를 ‘于山島’로 표기한 우리나라의 지도는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부속 지도인「八道總圖」(강원도편)이 있다. 이 지도에는 울릉도와 함께 그려졌는데 獨島는 ‘于山島’라 하여 鬱陵島보다 서쪽에 그려져 있고, 1868년 이후 제작된『八道全圖』는 道里圖表에 수록되어 있는 6장의 道別 道里表와 함께 구성된 지도첩이 있는데 이 지도에서도 獨島를 ‘于山島’로 표기하고 있으며, 1908년 대한제국에서 발간된『증보문헌비고』에서는 “鬱陵于山 皆于山國地 于山則 倭所謂松島也)”이라 하여 獨島를 于山이라 표기하고 있다.       ②  子山島 (肅宗實錄의 안용복 渡日 기록)   1696년 안용복이 武陵島에 갔다가 왜인의 꼬임에 넘어가 일본을 건너간 후 일본의 正官 귤진중과 함께 돌아온 후 제2차로 渡日하기 작전 울릉도에 들렸는데 왜인이 울릉도에 와서 정박하여 있으므로 안용복은 너희들은 왜 우리 地境을 침범하였으니 포박 하겠다고 말하자, 왜인은 “우리는 본래 송도에 사는데 우연히 고기를 잡으러 나왔으니 다시 本所(松島)로 가겠다”고 대답하므로 안용복은 “松島는 본대 우리나라의 子山島로서 감히 거기에 사는가” 하고 꾸짖고 그들을 쫓아 子山島에 갔다는 내용을 실록에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獨島를 子山島라 부른 기록이다.   그러나 子山島의 ‘子’는 于山島의 于자를 ‘子’자로 잘못 인식하여 ‘于山島’를 ‘子山島’라 부른 데에서 생긴 오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③ 石島 (1900년 고종황제 칙령 제41호)   대한제국 광무4년(1900) 10월 24일 의정부회의는 내무대신 이건하가 제출한 ‘鬱陵島’를 ‘鬱島’로 개칭하고, 島監을 郡守로 개정하는 請議書를 의결하였다. 고종황재는 의정부회의에 따라 결재하고 대한민국 칙령 제41호를 10월 27일자 관보(제1716호)에 게재하여 공포했다. 칙령 41호는 모두 6조로 되어 있다    그 중 제1조와 제2조를 들면 “제1조 을릉도를 울도로 개칭하여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여 관제 중에 편입하고 군등은 5등으로 한다”이고, “제2조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鬱陵島와 竹島 石島를 관할한다”이다.  이렇게 울릉군의 관할구역을 鬱陵全島와 竹島, 石島로 선포했는데 이때의 石島는 獨島가 흙이 거의 없는 바위로 이루어졌으므로 불린 이름이다.       ④  獨島 (황현의 매천야록)   1905년 1월 28일 일본 閣議에서 中井養三郞의 청원을 받아들이는 형식을 빌려 “독도는 주인없는 무인도(無主地)로서, 다케시마(竹島)라 칭하고 일본 島根縣 隱岐島司의 관할하에 둔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한 후 2월 22일 일본 소위 「시마네현(島根縣)고시 40호」를 날조하여 국제법상 無主地先占에 있어 ‘영토취득의 국가 의사’라는 요건을 모두 충족시켰다는 합법성을 가장하였다. 그러나 이 고시는 실제 고시되었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5월 17일 일본 독도를 官有地로서 시마네현 토지대장에 등재했다.   이어 11월 9일 독도와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마쯔에(松江) 사이에 해저전선 부설되고. 11월 17일 일본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완전 박탈했다.   1906년 2월 1일 統監府와 통감 휘하의 理事廳이 업무를 개시하여, 대한제국은 일본 통감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3월 28일 島根縣 제3부장 神西由太郞과 隱岐島司 東文輔 등이 울도(鬱島)를 방문하여 울도군수 심흥택에게 독도가 일본영토가 되었으므로 시찰차 왔다고 하므로 심흥택은 다음 날 강원도 관찰사 서리인 춘천군수 이명래에게 “本郡所屬 獨島…”로 시작되는 긴급보고서를 올렸으며, 이명래는 4월 29일 이 내용을 내부와 의정부에 보고하니 내부대신 이지용은 “독도를 일본속지라고 칭하는 것은 전혀 이치가 없는 것이니, 지금 이 보고한 바가 심히 아연할 일”이라 하였으며, 의정부 참정대신 박제순은 “獨島가 일본영토라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며, 독도의 형편과 일본인의 동향을 다시 조사해 보라”는 지령을 보냈으며 9월 24일 鬱島郡을 강원도로부터 경상남도로 이속시켰다.  이 때 정부뿐 아니라 언론과, 지식인들은 격분해 이 사실을 널리 알렸는데「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는 심흥택 군수의 보고서 전문을 기사로 실어 중앙정부(내부)가 “전혀 이치에 맞지 않으니 심히 아연한 일”이라 지령했다는 사실을 보도했고, 구한말의 대표적 지식인 황현은 그의 저서『梅泉野錄』에서 “울릉도 100리 밖에 속도가 하나 있어 獨島라고 부르는데, 일본인들이 지금 일본영지가 되었고 심사하여 갔다”며 격분했는데 이 때 獨島라는 이름이 쓰였다.    ‘獨島’는 본래 이 섬이 돌로만 이루어졌으므로 1900년 고종황재의 칙령에서 그 명칭을 ‘石島’라 부르도록 정했는데 ‘石’의 훈이 ‘독’이므로 우리말 ‘독’을 한자로 표기하며 ‘獨’자를 빌었기에 생긴 지명이다. 그러므로 獨島의 어원은 ‘독’(표준어:돌)에 있다.  
뉴스등록일 : 2019-08-17 · 뉴스공유일 : 2019-08-17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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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여자    DSB앤솔러지 제96집 (전자책) / 한국문학방송 刊    이 책은 한국문학방송(DSB) 회원들이 엮은 앤솔러지 제96집으로, 시인 13인의 시 26편, 수필가 2인의 수필 2편 등이 담겼다.         - 시 -    [김사빈 시인]  동그란 것 하나 무엇을 주시렵니까    [김소해 시인] 포구나무 집 정오의 손님 [김숙경 시인] 꽃앓이 1 - 천묘화(天妙華) 꽃앓이 2 - 달맞이꽃 [나광호 시인] 시냇물도 시인도 나그네 등대 같은 새 [민문자 시인] 행복한 여자 예술 [박인혜 시인] 겨울나무 외로울 땐 [안재동 시인] 사과를 베어 물며 당신이라는 말 [이규석 시인] 지우며 살자  희망(希望) [이병두 시인] 청산녹수 파도 [전홍구 시인] 택배 속의 향수 어쩌면 좋습니까 [정태운 시인] 고독 공존 [조성설 시인] 쉬어가는 구름 팽이와 채찍 [최두환 시인] 벨 에뽀끄 돌개바람과 비의 신         - 수 필 - [박인애 수필가] 신체발부수지부모 [이태순 수필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사육신 박팽년 소묘 [2019.08.15 발행. 78쪽. 정가 5천원(전자책)] ◑ 이 전자책은 무료로 열람이 가능합니다(클릭) 
뉴스등록일 : 2019-08-16 · 뉴스공유일 : 2020-07-12 · 배포회수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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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봉 · http://edaynews.com
(1) ‘于山國’과 ‘亏陵 或云 于陵’ 관계   『三國史記』지리지에서 ‘于山國’처럼 첫음절에 ‘于’자가 쓰인 지명을 찾아보면 于尸郡과 于尸山郡이란 지명이 있고, “有隣郡本高句麗于尸郡景德王改名今禮州今禮州”<『三國史記』35>  “于尸郡{于市郡}”<󰡔三國史記󰡕권37.> 또 󰡔삼국사기󰡕 권44에도 ‘于尸山國’이란 지명이 있다.     “居道, 失其族姓, 不知何所人也, 仕脫解尼師今, 爲干. 時, 于尸山國 ․ 居柒山國, 介居隣境, 頗爲國患. 居道爲邊官, 潛懷幷呑之志, 每年一度, 集群馬於張吐之野, 使兵士騎之, 馳走以爲戱樂, 時人稱爲馬叔{技}. 兩國人, 習見之, 以爲<新羅>常事, 不以爲怪. 於是, 起兵馬, 擊其不意, 以滅二國.”<󰡔삼국사기󰡕 권44, 열전4, 거도(居道)>     위의 ‘于尸郡’과 ‘于尸山國’에는 ‘于’자뿐 아니라 ‘尸’자가 하나 더 있다. 그러면 ‘于尸郡’과 ‘于尸山國’에서 ‘于尸’는 어떻게 읽히는 지명일까?   도수희(2007:118)는 고지명에서 ‘阿尸兮:阿乙兮’의 대응에서 尸와 乙이 대응을 보이고, ‘文峴:斤尸波衣’, ‘沙尸(사리)良>新(사이)良>黎(샐)陽’에서 尸가 ‘리 ․ ㄹ’일 가능성이 있고, ‘召尸:水銀’(水銀城本召尸)에서도 尸가 ‘리’로 추독될 수 있다 하였다.    ‘于尸郡’과 ‘于尸山國’도 ‘于’는 ‘우’로 음독하고 ‘尸’를 ‘ㄹ’로 읽으면 ‘于尸-’는 ‘우리, 우ㄹ-’로 읽을 수 있다. 鬱陵島의 옛 지명인 ‘亏陵, 羽陵’도 ‘亏’와 ‘羽’는 ‘우’로 읽고 ‘陵’을 ‘ㄹ’로 읽으면 ‘우ㄹ-’로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于尸郡’과 ‘于尸山國’의 ‘于尸-’와 ‘亏陵, 羽陵’은 모두 ‘우ㄹ’로 읽을 수 있다.   앞에서 소개한 ‘于尸山國’이라는 이름과 鬱陵島의 옛 이름인 ‘于山國’을 비교하면 ‘于山國’에는 ‘尸’자로 발음되었음직한 차자가 없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기록된 ‘于山國’의 異稱인 ‘鬱陵’, ‘亏陵, 羽陵’에는 ‘ㄹ’음이 존재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于山國’의 이름도 애초에는 ‘ㄹ’음을 가졌을 만한 글자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있다.   다시 말하면 ‘于山國’은 본래 鬱陵島라는 島名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되는데, 그런데도 ‘于山國’은 鬱陵島國, 또는 鬱陵國, 鬱陵山國, 亏陵國, 亏陵山國 등으로 불리지 않고 ‘于山國’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것이 國名이므로 島名과는 차별화할 목적도 있었을 것이며, 또한 ‘于山國’의 본 명칭이 ‘于尸山國’에서 ‘尸’가 탈락하여 ‘于山國’이 되었다는 근거는 없지만 󰡔삼국사기󰡕에 ‘鬱陵島’란 기록과  '삼국유사'에 ‘亏陵, 羽陵’라 한 기록, 그리고 '고려사'의 고려 태조 때의 ‘于陵’이란 기록으로 보아 이들 지명에는 ‘ㄹ’음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 '삼국사기'의 ‘于山國’은 ‘于’자 아래 ‘ㄹ’음을 빌린 ‘陵’자처럼 어떤 차자가 탈락하고 이후 ‘山’자가 새로 첨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① 于+(陵:탈락)+山(존재)+國(島)     ② 于+(陵:탈락)+山(첨가)+國(島)     도수희(2007:117)는 󰡔삼국사기󰡕권34(지리1)의 지명인 ‘古尸山郡’은 진흥왕 15년(서기 554)에 ‘菅山城’으로 고쳐졌고, 경덕왕 16년(서기 757)에 ‘菅城’으로 줄여졌고, 고려 충선왕 때(1309~1313)에는 ‘沃州’로 고쳐졌는데 이후 조선 태종 13년(서기 1413)에 ‘沃川’으로 고쳐졌다. 이를 보면 서기 554년~757년 사이에 이미 ‘菅山城’이란 3자 지명이 ‘菅城’인 2자 지명으로 개정되었다고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于山國’은 ‘ㄹ’음을 가진 글자를 탈락시키고 글자를 줄여 부른 國名이 아닐까 생각하며, 고로 󰡔삼국사기󰡕의 ‘于山國’은 󰡔삼국유사󰡕의 ‘亏陵 或云 羽陵’과 그 뿌리가 같은 데에서 나온 이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2) 于山과 亏陵 ․ 于陵 ․ 羽陵 ․ 芋陵의 관계  『삼국사기』에 기록된 “于山國 或云 鬱陵島”에 쓰인 ‘于山’은 鬱陵島의 신라시대의 명칭이다. 그런데 이 ‘于山’은 고려 초기까지 쓰였고, 『삼국유사』에 기록된 “亏陵 今作 羽陵”도 ‘亏’자가 ‘于’자의 本字이므로 󰡔삼국사기』의 명칭 ‘于山’과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또한 『고려사』에 ‘于陵’으로 기록되고 있으니 역시 ‘于’자의 맥을 잇고 있다.    또한 ‘亏陵’과 ‘于陵’의 ‘于’나 ‘亏’는 ‘우’음의 차자표기이고, ‘陵’은 ‘ㄹ’음을 빌린 표기자라 생각하며 아울러 ‘羽陵’과 ‘芋陵’의 ‘羽’와 ‘芋’는 ‘亏 ․ 于’자와 음이 같기에 차자한 표기라 짐작되므로 ‘亏陵 ․ 于陵 ․ 羽陵 ․ 芋陵’은 모두 동일 지명의 이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3) 鬱陵과 亏陵 ․ 于陵 ․ 羽陵 ․ 芋陵 관계   앞에서 울릉도의 지명은 『삼국사기』에는 “于山國, 鬱陵島”로 표기되었고, 『삼국유사』에는 “亏陵 今作 羽陵”으로 표기되었다고 했다. 그러면 鬱陵과 亏陵(于陵 ․ 羽陵 ․ 芋陵)은 어떤 관계였을까?   먼저 鬱陵과 亏陵, 羽陵의 字音의 구성을 살펴보면      ㉠ 亏陵 ․ 于陵 ․ 羽陵 ․ 芋陵은 ‘우+릉’,       ㉡ 鬱陵은 ‘울+릉’로 구분된다. 그리고 ㉠과 ㉡을 비교하면 제2음절 ‘陵’은 같고, 제1음절은 ‘亏’와 ‘鬱’로 말음 ‘ㄹ’이 있고 없음이 다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 亏陵(羽陵, 芋陵, 于陵)과 ㉡ 鬱陵의 두 갈래로 나누어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고대국어에서 단어를 개음절로 읽은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亏陵 ․ 于陵 ․ 羽陵 ․ 芋陵은 개음절 표기이고, 鬱陵은 폐음절 표기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① 亏陵島, 羽陵島, 芋陵島, 于陵島는 ‘울+은+셤’으로 분석할 수 있으니 이는 개음절 발음 규칙에 따라 ‘우른셤’으로 발음되므로 제1음절 ‘우’는 ‘亏’를 빌리고 어간 말음 ‘ㄹ’과 관형사형 어미 ‘은’이 합해진 ‘른’은 표기할 마땅한 한자가 없어 ‘陵’자를 빌어 표기하게 되면서 ‘우른셤>우릉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亏陵島, 羽陵島, 芋陵島, 于陵島는 ‘우르+ㄴ+셤’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더라도 ‘亏’는 ‘우’를 차자한 표기자이고, ‘陵’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르+ㄴ>릉’을 차자한 표기자로서 ‘우른셤>우릉셤’으로 굳어져 생겼을 것이므로 결국 같다고 생각한다.   ② ‘鬱陵島’는 ‘울+은+셤’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는 개음절 발음 규칙에 따라 ‘우른셤’으로 발음되어야 할 것인데 처음부터 1음절 어근 ‘울’을 ‘鬱’자를 차자함에 따라 ‘울은셤>울른셤>울릉셤’으로 발음되면서 굳어진 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편 ‘울+은+셤’은 개음절 발음 규칙에 따라 ‘우른셤’으로 발음되어야 할 것이 ‘우른셤>울른셤’으로 설측음화 되었다가 마침내 ‘울릉셤’으로 발음되며 鬱陵島로 표기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능하다.   우리말에 “산에 오르다”란 말이 있다. 登의 뜻이다. ‘오르다’를 15세기 표기법으로 표기하면 ‘오-’가 된다. ‘오-’의 ‘ㆍ’는 양성모음이다. ‘오-’를 음성모음과 교체하면 ‘우르-’가 된다.   鬱陵島의 자연환경은 망망대해에 조그만 섬이 떠 있는 형상이다. 이런 환경에서 선인들은 울릉도와 독도를 바라보면서 넓은 바다에 작은 섬이 하나 ‘솟아올랐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런 발상을 지명에 연결시키면 于陵島, 鬱陵島는 망망대해에 솟아 ‘오른 섬’이 된다.    한글학회 지은 󰡔우리말사전󰡕에서 ‘우ㄹ’을 어근으로 하였음직한 단어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①우리다:[옛]프른 믈든 뵈 므레 가 우려 그 므를 머그라<분문27>    ②우러나다:[옛]쳥 믈든 뵈 가 우러난 즙 서 되 머그라<구간>    ③우럴다 :[옛] ⇒울월다(仰). 우러러하늘로 춤밧고<역해>    ④울잣 :[옛] 울타리, 니영이 다 거두치니 울잣신들 셩소냐(靑p43>    ⑤울통불통 :[옛]洛陽 十里 밧게 울통불통 져 무덤아<靑大 p.83>    ⑥울뚝불뚝 : 울둑불뚝한 꼴      ⑦울뚝 : 울뚝한 꼴    ⑧울겅거리다 : 단단하고 우둘우둘한 물건이 잘 씹히지 않고 입안에서                   이리저리 미끄러지다.    ⑨울렁거리다 : 큰 물결이 자꾸 설레며 흔들리다    ⑩울다 : 아프거나 슬프거나 좋아서 눈물을 흘리는 것    ⑪울다 : 남포가 터져 바위에 금이 가다    ⑫울컥 : 갑자기 토하는 때 나는 소리 또는 그 꼴    ⑬울놀음 : [민속]윗놀음       ⑭울가리 : 윗가리(제주)    ⑮울목 : 윗목(전남)    (16) 우리 : [옛], 우리(圈), 겨유 우리<譯語上,19>    (17) 우 : [옛], 우뢰. 우ㅅ 소리(雷響)<譯語上,2>         우리는 위에서 ‘우ㄹ’이 명사와 동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①~② ‘우리다’, ‘우러나다’는 무엇을 속에서 나오게 하거나 나오는 것을 뜻하는 말이고, ③의 ‘우럴다’는 위쪽을 향하여 바라보는 뜻이나 한편으로는 위로 향하는 뜻을 내포한다고 생각되는 어휘다. ④의 ‘울잣’은 ‘울타리’로 ‘잣’은 城을 뜻하는 말인데 ‘울’은 城처럼 무엇으로 높이 솟게 한 것을 의미하는 뜻이 있는 말이고, ⑦은 ‘울-’은 무엇이 위로 솟아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고, ⑤~⑥의 ‘울통불통’과 ‘울뚝불뚝’과 ⑧~⑨의 ‘울겅’과 ‘울렁’은 무엇이 움직이며 솟았다가 가라앉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고, ⑩~⑪의 ‘울다’와 ⑫의 ‘울컥’은 무엇이 속에서 터져 나오는 뜻이 있고, ⑬~⑮ ‘울놀음’, ‘울가리’, ‘울목’의 ‘울’은 뜻이 ‘윗(上)’의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진흥왕 때의 가야국에서 12현금을 만들었던 ‘우륵(于勒)’이 란 사람이 있다. ‘우륵(于勒)’은 당시 가야금 분야에서 뛰어난 분이었다. ‘우륵(于勒)’이란 이름이 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면 이는 울릉도의 이칭인 ‘亏陵’의 ‘우ㄹ’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우리는 ‘울-’이라는 어사가 무엇이 ‘솟아나오는 뜻’을 나타내는 말임을 보았다. 鬱陵島, 亏陵島, 羽陵島는 망망대해에 무덤처럼 ‘솟아 오른’ 형상이다. 그러기에 鬱陵島, 亏陵島, 羽陵島는 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 고대어 ‘우ㄹ’에 어원을 둔 지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4) 于山國과 流山國   『삼국사기』지명 ‘于山國’은 고려초와 조선 태종대와 세종대의 문헌에도 ‘于山’이란 이름으로 계속 출현하고 『태종실록』에는 ‘流山國’이란 명칭도 아래와 같이 1회 출현한다.   “流山國島 사람 백가물 등 12명이 고성 어라진에 와서 정박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武陵島에서 생장하였는데, 그 섬 안의 인호가 11호이고, 남녀가 모두 60여 명인데, 지금은 本島로 옮겨 와 살고 있습니다.”     위의 내용을 보면 流山國島 사람 백가물 등 12명이 ‘武陵島’에서 생장하여 本島에 옮겨와 살고 있다고 하여 ‘武陵島’와 관련이 있으므로 ‘流山國島’는 ‘于山國島’의 ‘于山’이 ‘流山’으로 표기된 지명이라 생각한다.           (5) 于山武陵等處安撫使의 ‘于山武陵’의 해석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종부터 세종, 세조의 기록에 ‘于山武陵’와 ‘于山武陵等處安撫使’란 말이 나온다. 鬱陵島는 신라 때 于山國이라 불렸고, 조선시대에는 武陵島와 茂陵島라고도 불렸는데 또 ‘于山武陵’이란 지명이 쓰인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왕조실록』에는 于山, 亏陵, 羽陵, 武陵, 茂陵 등의 기록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獨島에 관한 기록은 잘 알 수 없어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于山武陵等處安撫使’란 관직명이 보이므로 해석에 혼란이 온다. 우선 옛 문헌에서 관련 자료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① “以前判長鬐縣事金麟雨 爲于山武陵等處安撫使”   ② “于山武陵等處按撫使金麟雨 搜捕本島避役 男婦二十人來復命.”   ③ “賜于山武陵等處安撫使金麟雨 冬衣二領笠靴”   ④ “江陵人言 牛山茂陵兩島 可以設邑”   ⑤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⑥ “江原道監司柳季聞啓 武陵島牛山 土沃多産”     위의 ①~③을 보면 ‘于山武陵等處按撫使’는 于山과 武陵 등 울릉도 지역의 여러 곳을 관리하는 안무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④의 “牛山茂陵兩島”은 ‘牛山’과 ‘茂陵’이라는 두개의 섬으로 해석되고, ‘兩島’는 울릉도 주변에 鬱陵島와 獨島 밖에 없기 이 두 섬을 지칭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⑤에는 “于山과 武陵의 2섬이 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어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므로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하였으니, 이는 두 섬이 평시에는 잘 볼 수 없는 거리에 있지만, 특별히 날씨가 맑으면 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서 이런 관계를 가진 섬은 바로 鬱陵島와 獨島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는다.   그렇다면 ‘于山’과 ‘武陵’ 중 鬱陵島와 獨島를 지칭하는 명칭은 각각 어떤 말일까? 필자는 武陵은 鬱陵島를 지칭하고, 于山은 獨島를 지칭하는 어사라 생각한다. 우리 선조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초기부터 명확히 인식하고 관리해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이런 인식이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1953년의『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부속지도인「八道總圖」(강원도)와,「八道總圖」에 울릉도와 함께 獨島를 그려 于山島로 표기하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八道全圖』의 道里圖表에 수록된 6장의 전국지도에도 獨島가 于山島로 표기한 것은 예로부터 조상들이 이렇게 알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6) 鬱陵과 蔚陵, 武陵과 茂陵   鬱陵 이외에 蔚陵으로도 표기되었다. 蔚陵은 『고려사』의 고려 중기 인종때부터 원종 때까지의 기록에 4회 출현한다. 이 기간에도 羽陵과 芋陵은 1회씩 출현하지만 그래도 蔚陵은 4회 출현하므로 고려시대에 주로 쓰인 명칭인 셈이다. 蔚陵은 鬱陵과 음이 같아 불린 이름으로 보인다. 이는 고려 조정에서 신라의 鬱陵이란 명칭과 차별을 두기 위한 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참고로 鬱은 그 뜻이 ‘막히다, 무성하다’는 뜻이고 蔚도 ‘무성하다’는 뜻이 있다. 고로 鬱陵, 蔚陵, 茂陵의 명칭은 쓰인 한자의 字意로 볼 때 약간 상통하는 점이 있다.   武陵은 史書에 고려 우왕 때부터 출현하여 조선 세종대부터는 茂陵과 혼용하다가 성종 이후 鬱陵이 쓰였다. 조선 태종대 말부터 세조대까지는 于山武陵과 于山武陵等處按撫使 등도 쓰였다.   武陵은 한문학의 융성으로 중국의 고사 ‘武陵桃源’의 영향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茂陵은 鬱陵島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무성하였다는 『실록』의 기록으로 보아 산림이 무성하다는 의미에서 武陵의 ‘武’와 음이 같은 ‘茂’를 빌어 茂陵으로 표기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4.  독도(獨島) 지명 연구     1) 독도(獨島) 자료         (1) 우리나라의 자료 연도 도서 및 문서와 지도 울릉도 독도 1530 『신증동국여지승람』「八道總圖」   于山島 1701 안용복 渡日 사건의 肅宗實錄』 竹島 子山島 1868 『八道全圖』의 6장의 전국지도   于山島 1900 고종황제칙령제41호 鬱島郡 설치 鬱島,竹島 石島 1908 융희 2년『증보문헌비고』 鬱陵 于山 1910 황현 『매천야록』 鬱陵島 獨島 (2) 외국 자료 연도 지도(地圖) 독도 1787 프랑스함대Lepaute Dagelet Dagelet섬 1849 프랑스 포경선 Liancourt號 Liancourt Rocks 1849 미국 William Thompson號 3 Rocks 1849 미국 Cambria호 ‘two small islands’ 1854 러시아극동원정대 Unkovski대령 올리부차(서도) 메넬라이(동도)   미국 포경선 Cherokee호 ‘two small islands’   (3) 일본 자료 연도 도서 및 문서와 지도 울릉도 독도 1592 九鬼嘉隆, 朝鮮國地理圖 鬱陵島 于山島 1667 사이토호센(齋藤豊仙)隱州視聽合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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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맛집
김종영 · http://edaynews.com
광주 남구(구청장 김병내)는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배우고자 하는 20~40대 직장인과 50~70대 중년 남성을 위한 요리교실 프로그램을 각각 운영한다. 16일 남구에 따르면 오는 9월에 2040 직장인 요리교실과 5070 남성 요리교실 프로그램이 문을 연다. 이 프로그램은 교육과 문화가 어우러진 평생학습 도시를 만들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남구는 100세 시대를 맞아 요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주민들의 수요를 반영해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먼저 2040 직장인 요리교실은 오는 9월 21일부터 11월 23일까지 두 달간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봉선동 아시아요리학원에서 진행된다. 양장피를 비롯해 잡채, 매운 닭찜, 쇠고기 편채, 칠리 새우, 삼성 해물볶음. 해물 쟁반짜장 소스, 리코다 치즈를 곁들인 부르스게타, 클럽 샌드위치, 토스트 브런치, 봉골레 스파게티 및 돼지 안심구이 등 다양한 종류의 요리 레시피를 배우게 된다. 요리의 맛과 멋에 매료된 중년 남성들을 위한 요리교실 프로그램은 오는 9월 18일부터 10월 23일까지 같은 장소의 요리학원에서 펼쳐진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전문 요리사로부터 고급 레시피를 전수받는다. 궁중 찜닭을 비롯해 오삼 불고기, 표고무밥, 해물 된장찌개, 들깨 토란탕, 콩나물 해물찜, 영양밥과 강된장찌개, 낙지 두루치기, 쇠고기 육개장, 꼬막 초무침, 고등어 무조림 등 중년 남성과 여성들 사이에서 각광 받는 음식 조리법을 익히게 된다. 2040 직장인 요리교실은 남구에 주소를 둔 20~40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참가 신청은 오는 19일부터 30일까지이며, 신청서 접수는 광주남구 문화교육행사 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모집 인원은 20명이며, 수강료는 무료이다. 5070 남성 요리교실 참가자 모집은 오는 19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며, 선착순 20명을 모집한다. 접수는 폭염과 무더위에 따른 불편 최소화를 위해 남구청 교육지원과 전화(☎ 607-2431)를 통해서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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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봉 · http://edaynews.com
위의 자료를 보면 울릉도의 지명으로 쓰인 한자 지명들은 于山, 流山, 鬱陵, 亏陵, 于陵, 羽陵, 蔚陵, 武陵, 茂陵 등10 개의 다른 표기가 있는데 이들 지명이 실제 문헌에 쓰인 예문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1)  于山國  “十三年 夏六月 于山國歸服 歲以土宜爲貢 于山國 在溟州正東海島 或名鬱陵島 地方一百里 恃嶮不服 伊湌異斯夫 爲何瑟羅州軍主 謂于山人 愚悍難以威來 可以計服 乃多造木偶師子 分載戰船 柢其國海岸 誑告曰 汝若不服 則放此猛獸踏殺之 國人恐懼則降”(『三國史記』권44, 列傳 4, 異斯夫傳)  “以于山國被東北女眞所寇廢農業遣李元龜賜農器”(『高麗史』)       (2) 鬱陵島 “十三年 夏六月 于山國歸服 歲以土宜爲貢 于山國 在溟州正東海島 或名鬱陵島 ”(三國史記 권4 新羅本紀 4 智證麻立干 13年條)       (3) 亏陵島 ① “又阿瑟羅州(今溟州)東海中 便風二日程 有亏陵島(今作羽陵) 周迴二万六千七百三十步 島夷恃其水深 憍慠不臣 王命伊湌朴伊宗 將兵討之 宗作木偶師子 載於大艦之上 威之云 不降則放此獸 島夷畏而降 賞伊宗爲州伯.”(三國遺事 권1 紀異 智哲老王條)       (4) 羽陵城主  “羽陵城主遣 子夫於仍多郞 來獻土物.”(『高麗史』)       (5) 芋陵島  ① “芋陵島遣 白吉土豆 貢方物 拜白吉爲正位 土豆爲正朝”(『高麗史』)  ② “東界芋陵島人來朝”『高麗史』       (6) 蔚陵島 “溟州道監倉使 李陽實遣人 入蔚陵島 取菓核木葉異尙者 以獻”(『高麗史』)       (7) 武陵島  “李子庸還 自日本九州節度使源了俊 歸被虜人二百三十餘口 獻槍劒及馬 倭入武陵島 留半月而去.”(『高麗史』)       (8) 流山國島  “流山國島人白加勿等十二名 來泊高城 於羅津言曰 予等生長武陵 其島內人戶十一 男女共六十餘 今移居本島”(『太宗實錄』)       (9) 于山武陵 “命右議政韓尙敬六曹臺諫議刷出于山武陵居人便否”(『太宗實錄』)       (10) 武陵島于山 “江原道監司柳季聞啓 武陵島牛山 土沃多産 東西南北各五十餘里 沿海四面 石壁周回 又有可泊船隻之處 請募民實之 仍置萬戶守令 實爲久長之策 不允.”(『世宗實錄』)       (11) 牛山茂陵 “初前中樞院副使柳守剛上書言臣嘗任江陵府於嶺東防禦之事耳聞目擊 謹條陣…江陵人言牛山茂陵兩島可以設邑”(『世宗實錄』)       (12) 茂陵 “傳旨禮曹戶曹 茂陵入歸時 敗船物故 江原道船軍招魂 致祭致賻”(『世宗實錄』)       (13) 于山島 鬱陵島 一云武陵 一云羽陵  “于山島 鬱陵島 一云武陵 一云羽陵 二島在縣正東海中 三峯岌嶪撑空 南峯稍卑 風日淸明則 峯頭樹木 及山根沙渚 歷歷可見 風便則二日可到 一說于山鬱陵 本一島”(『新增東國輿地勝覽』)       (14) 竹島  “倭人所謂竹島 卽我國鬱陵島”(『肅宗實錄』)  “雖然我氓漁採之地 本是鬱陵島 而以其産竹 或稱竹島 此乃一島二名也”.(『肅宗實錄』)       (15) 礒竹島  “臣見芝峰類說(故判書李晬光所著 芝峯卽其號) 倭奴占據礒竹島 礒竹 卽鬱陵島也”(『肅宗實錄』)       2) 울릉도 지명의 종합적 검토     울릉도에 관한 명칭이 우리나라 고문헌에는 于山, 流山, 鬱陵, 亏陵, 于陵, 羽陵, 蔚陵, 武陵, 茂陵 등으로 퍽 다양하게 쓰였다. 지명은 전쟁 등으로 인하여 다스리는 주체가 달라질 경우 병합된 지역을 합리적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개칭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鬱陵島의 경우에는 동해의 먼 바다에 위치해서 지역이 병합되거나 분리되지 않은 곳인데도 이칭이 많은 특이한 사례다.   鬱陵島에 관한 이칭을 한자음에 따라 분류하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① 우산(于山, 流山) 계통    ② 우릉(亏陵, 于陵, 羽陵, 芋陵) 계통,    ③ 울릉(鬱陵, 蔚陵) 계통    ④ 무릉(武陵, 茂陵) 계통,    ⑤ 우산무릉(于山武陵, 牛山茂陵, 武陵牛山) 계통,    ⑥ 죽도(竹島) 이를 시대별로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구 분 國名 鬱陵島名 鬱陵島․獨島名 우산 우릉 울릉 무릉 竹島 신 라 于山國 亏陵島 鬱陵島     고 려 于山國 于陵島 羽陵島 芋陵島 蔚陵島       조선 태종 流山國     武陵島   태종,세종       于山武陵   세종,세조,성종           武陵牛山 茂陵島 牛山茂陵   명종,숙종 이후     鬱陵島 鬱島 竹島 대한제국(고종황제)     鬱島       위의 鬱陵島와 獨島地域의 이칭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을 발견할 수 있다. ① 于山과 ‘亏陵 或云 于陵’ 관계 ② 于山과 亏陵, 于陵, 羽陵, 芋陵 관계 ③ 鬱陵과 亏陵, 于陵, 羽陵, 芋陵 관계 ④ 于山國과 流山國 ⑤ 于山武陵等處按撫使의 의미 ⑥ 鬱陵과 蔚陵, 武陵과 茂陵 관계 위의 문제들 중 『삼국사기』에 기록된 ‘于山’과 ‘鬱陵’ 그리고 『삼국유사』에 기록된 ‘亏陵’과 ‘羽陵’이 이곳 지명의 핵심이라 생각되므로 이들의 상호 관계와 어원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뉴스등록일 : 2019-08-14 · 뉴스공유일 : 2019-08-14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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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봉 · http://edaynews.com
조 선 1403(태종3)       武陵   太宗實錄권6,太宗3. 1407(태종7)       武陵   太宗實錄권13,太宗7. 1412(태종12)       武陵   太宗實錄권23,太宗12. 流山         太宗實錄권23,太宗12. 1416(태종16)       武陵   太宗實錄권32,太宗16. 1417(태종17)       武陵   太宗實錄권32,太宗17. 于山         太宗實錄권33,太宗17.       于山武陵   太宗實錄권33,太宗17. 1419(세종1)       武陵   世宗實錄권 3,世宗1. 1425(세종7)       于山武陵   世宗實錄권30,世宗7.       武陵   世宗實錄권30,世宗7.       茂陵   世宗實錄권30,世宗7. 1426(세종8)       茂陵   世宗實錄권 ,世宗8. 1432(세종14)       于山武陵   世宗實錄권153,지리지. 1436(세종18)       武陵牛山   世宗實錄권73,世宗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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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원 · http://edaynews.com
순천시(시장 허석)은 순천 창작예술촌 김혜순 한복공방에서 지난 8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무형문화재 전수자인 금복현 작가의 부채작품 전시회‘바람이 드리운다’를 전시하고 있다.   부채는 옛날부터 더운 여름을 식혀주던 도구이자 그 자체로 고고한 아름다움을 담은 예술품으로 활용되어 왔다. 전통부채의 맥을 이어가는 금복현 작가의 작업과 그의 작품은 전통부채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특히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은 김혜순 한복공방의 한복을 입은 인형들과 전통소품이 멋스럽게 어우러져 시선을 끈다. 부채의 곡선과 부채의 살, 그 위에 펼쳐진 색감과 자수, 문양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전시는 순천창작예술촌의 거점스튜디오인 김혜순 한복공방 예정(藝丁)에서 열리고 있으며(전남 순천시 옥천길 26, 영동)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이다. 전시는 무료로 상시 관람할 수 있다,   한편 시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전통부채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이를 시민들에게 소개하며 동시에 순천의 전통문화를 발전시키고, 문화예술이 삶이 될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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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 · http://edaynews.com
광주광역시는 13일부터 17일까지 시청 1층 시민숲에서 ‘사진으로 만나는 광주 100년’ 전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제74주년 광복절을 기념하고 지난 7월부터 운영중인 광주시 시청각자료실 홈페이지(www.gjarchive.kr)를 홍보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는 ▲일제강점기 광주 기록물 ▲광주 사람들의 삶과 문화 ▲광주, 도시화의 여정 ▲광주의 사라진 경관과 문화유산 등 4개 분야 70여 점으로 구성된다.  ‘일제강점기 광주 기록물’에서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기숙사 전경 등 근로정신대 강제 동원의 가슴 아픈 시대상과 독립운동, 광복과 관련된 사진으로 생생한 역사 현장을 전한다.  ‘광주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서는 광주장터, 조탄보 등 1900년대 광주의 옛 모습과 빨래터, 지게꾼, 결혼식 등 당시 생활문화와 관련된 사진을 전시한다. ‘광주, 도시화의 여정’에서는 광주 시가지 전경과 광주역, 무등경기장 등 주요 지역의 변화 과정을 시대별로 감상할 수 있다.  ‘광주의 사라진 경관과 문화유산’에서는 태봉산, 경양지, 사직공원 수영장, 시민관 등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사라진 명소와 풍물을 소개한다.  김준영 시 자치행정국장은 “역사현장을 담은 한 장의 사진에는 문헌에서 느낄 수 없는 생생함과 감동이 있다”며 “광복과 광주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 전시를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과 애향심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뉴스등록일 : 2019-08-13 · 뉴스공유일 : 2019-08-13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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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 http://edaynews.com
1571년에  46세의 박광전은 비로소 출사한다. 전라감사 유희춘은 박광전을 전주 경기전 참봉으로 특별 채용한 것이다. 1) 사진 1  경기전의 태조 이성계 어진 1573년에는 헌릉(태종의 능)참봉에 임명되었는데 1575년에 부친 봉양을 위해 사직하였고 부친은 1577년에 별세하였다.  1581년(선조14년)에 박광전은 왕자사부에 제수되었다. 그는 사저에 있는 임해군(1574∽1609)과 광해군(1575∽1641, 재위1608∽1623)을 가르쳤다. 임해군은 7세, 광해군은 6세였다.   박광전은 왕자들에게 글을 정밀하고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가르쳤다. 어느 날 선조가 왕자의 독서를 살펴보다가 “글 읽는 것만 탐닉하면 글의 뜻을 명확히 알지 못하게 되니, 마땅히 박사부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며 죽천의 교육방법을 칭찬하였다.          1583년 겨울에 죽천은 함열현감에 제수되었다. 함열현은 전북 익산시 일대이다. 그는 관저와 동헌 벽 위에 “시민여상(視民如傷 다친 사람을 보살피듯이 백성들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긴다.)” 네 글자를 크게 써 붙여 놓고 백성들을 대하였다.  사진 2  시민 여상 시민여상(視民如傷)이란 중국 춘추시대에 진(陳)이 오(吳)나와 초(楚)나라 사이에서 줄다리기 외교를 한데서 나온 말로 『춘추좌전(春秋左傳)』 ‘애공(哀公) 원년(BC 494)’에 나온다.  오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했을 때 오나라 왕 부차는 사람을 보내 진나라 회공(陳懷公)을 불렀다. 이에 진회공은 신하들을 모아놓고 의논했다. 이때 대부 봉활(逢滑)이라는 신하가 오나라의 요청을 거절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자 진회공은 오나라의 후환을 걱정하자 봉활은 이렇게 말했다. "나라에는 이러한 일쯤은 많이 있는 것이니 어찌 반드시 회복하지 못한다고 하겠습니까? 작은 나라도 회복하는데 하물며 큰 나라가 어찌 회복하지 못하겠습니까? 신이 듣건대, ‘나라가 흥할 때는 백성을 다친 사람을 보살피듯 대하니 이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國之興也 視民如傷, 是其福也,) 그러나 나라가 망하려면 백성을 흙이나 쓰레기 대하듯이 하므로 이것이 화가 되는 것입니다(其亡也 以民爲土芥, 是己禍也)’ 초나라는 비록 덕은 없으나 백성을 베어 죽이지는 않습니다. 오나라는  백성을 전란 중에 끌고 다녀 백골이 풀 더미와 같이 널려 있으니 덕행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하늘이 초나라를 깨우칠 가르침을 내린 듯합니다. 오나라가 재앙을 입을 날이 멀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진회공은 봉활의 의견에 따랐다. 한편 BC 494년은 오나라 왕 부차가 선왕 합려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하여 2년간 와신(臥薪 :섶에서 눕다)하여 월나라 구천을 굴복시킨 해였다. 구천은 부차에게 돈과 여자를 바치는 등 애걸하여 살아남았다. 그리고 구천은 21년간 상담(嘗膽 : 쓸개를 맛보다)하여 BC 473년에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부차를 죽였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이윽고 1587년에  박광전은  회덕현감에 제수되었다. 회덕현은  대전광역시 동구 · 대덕구 일대이다. 그가 회덕현에 도착하니 왕실의 종친이 촌민과 노비 문제로 송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송사는 11명의 관원이 바뀌도록 해결되지 않고 미결로 남아 있었다. 죽천은 소송 자료와 관련 문적을 살펴보고 정상(情狀)을 살피어 촌민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왕실 종친은 죽천을 사헌부에 고발했다. 사헌부에서 조사해 보니 죽천이 제대로 일을 처리한 것이 밝혀졌다.   또 한 번은 어떤 여자가 과부집의 종이 되었는데 족질 간에 서로 다투다가 차지하지 못한 자가 충청감사의 위세를 빙자하여 그 종을 무고하여 죽이려 하였다. 박광전이 그 원통한 정상을 보고하자 감사가 격노하여 순찰을 내려와서 죽천을 문책하였다. 그러나 박광전은 시비를 구분하여 조목조목 변론하자 감사가 부끄러워하며 승복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는 이런 일들로 말미암아 재상어사(災傷御使 재해로 손상된 농산물상황을 감정하는 어사)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어 1589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죽천 선생처럼 너무 강직하면 부러진다. 하지만 죽천 같아야 공정한 사회가 된다. 우리가 죽천에게 배우는 것은 무엇인가?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공직자이다.     1)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곳이다.  
뉴스등록일 : 2019-08-13 · 뉴스공유일 : 2019-08-13 · 배포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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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봉 · http://edaynews.com
 ② 안용복 제 2차 渡日사건   숙종 22년(1696) 안용복, 유일부, 유봉석, 이인성, 김성길과 스님 뇌헌 등이 함께 배를 타고 울릉도에 가서 일본국 백기주(伯耆州)로 들어가 왜인과 서로 송사한 뒤에 양양현 지경으로 돌아왔으므로 강원감사 심평이 이들은 치계(馳啓)하고 비변사에 내려. 推問하자 안용복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본디 동래에 사는데, 어미를 보러 울산에 갔다가 마침 중[僧] 뇌헌(雷憲) 등을 만나서 근년에 鬱陵島에 왕래한 일을 자세히 말하였더니, 뇌헌 등이 이롭게 여겨 함께 울릉도에 이르렀는데, 왜선도 많이 와서 정박하고 있기에 제가 '울릉도는 본디 우리 지경인데, 왜인이 어찌하여 감히 지경을 넘어 침범하였는가? 너희들을 모두 포박하여야 하겠다.'하였더니 왜인이 '우리들은 본디 松島에 사는데 우연히 고기잡이 하러 나왔다. 이제 본소(本所)로 돌아갈 것이다.' 하므로, 내가 '松島는 子山島로서, 그것도 우리나라 땅인데 너희들이 감히 거기에 사는가?' 꾸짖었다.   이튼날 우리 일행은 배를 몰아 자산도에 가서 왜인들을 쫓다가 광풍을 만나 표류하여 옥기도(玉岐島)1)에 이르러 '근년에 내가 이곳에 들어와서 울릉도, 자산도 등을 조선의 지경으로 정하고, 관백의 서계까지 있는데, 이 나라에서는 정식이 없어서 이제 또 우리 지경을 침범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 하고 따지자, 마땅히 백기주(伯耆州)2)에 전보하겠다고 하면서도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제가 곧장 백기주로 가서 鬱陵子山兩島監稅라 가칭하고 장차 사람을 시켜 본도에 통고하려 하는데, 그 섬에서 사람과 말을 보내어 맞이하므로 그 고을로 가서 도주에게 '전일 두 섬의 일로 서계를 받아낸 것이 명백할 뿐만이 아닌데, 대마도주가 서계를 빼앗고는 중간에서 위조하여 두세 번 差倭를 보내 법을 어겨 함부로 침범하였으니, 내가 장차 관백에게 상소하여 죄상을 두루 말하려 한다.' 하며 이인성에게 疏를 지어 바치게 했다. ----------------------------------------------------------------- 1)  隱岐島 즉 隱州(오키섬) 2)  伯耆州는 伯州로 이곳은 요나코(米子)가 있으며 本州에 속한다.  도주의 아비가 백기주에 간청하여 소를 올리면 내 아들이 반드시 중한 죄를 얻어 죽게 될 것이니 바치지 말기 바란다 하기에, 관백에게 품정(稟定)하지는 못하였다. 도주 아비는 '두 섬은 이미 너희 나라에 속하였으니, 뒤에 혹 다시 침범하여 넘어가는 자가 있거나 도주가 혹 함부로 침범하거든, 모두 국서를 만들어 역관을 정하여 들여보내면 엄중히 처벌할 것이다.' 하며 양식을 주고 차왜를 정하여 호송하려 하였으나, 제가 데려가는 것은 폐단이 있다고 사양하고 왔습니다.3)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鬱陵島에 대한 일은 이제 이미 명백하게 밝혀졌으므로 이제 2년 간격으로 수토(搜討)토록 하여 마무리되었다.4)       (7)  프랑스 포경선 Liancourt호 獨島 발견   1849년(헌종 15) 프랑스 포경선 리앙꼬르(Liancourt)호가 독도를 발견(북위 37도 2분, 동경 131도 46분)하여 Liancourt Rocks으로 명명했다. 이 사실이 프랑스 해군 수로지와 海圖에 실림으로써 서양에 알려지게 되었다.       (8)  일본이 鬱陵島 獨島를 우리나라 영토로 인정한 지도   1869년 12월 조선에 밀파된 일본외무성 관리들이 귀국하여 1870년 4월 복명서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朝鮮國交際始末內探書)'를 제출함. 이 복명서에는 ‘竹島(울릉도)와 松島(독도)가 조선의 영토로 되어 있는 始末’을 조사한 내용이 실려 있음.     1875년(고종 12) 일본육군 參謀局이 작성한 朝鮮全圖에 獨島가 松島로 표기되어 실림으로써, 독도를 竹島(울릉도)와 함께 한국영토로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5)   1876년(고종 13)에 일본 해군이 작성한 「朝鮮東海岸圖」는 1857년 러시아 해군이 제작한 지도를 저본으로 하여 재발행 작전지도인데, 독도를 울릉도와 함께 조선의 부속도서로 표기하고 있다.6)       (9)  일본 太政官이 獨島를 일본과 무관함을 인정   1876년 10월 16일 일본 국토의 地籍을 조사하고 근대적 地圖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시마네현에서 내무성으로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를 시마네현 지도에 포함시키는지의 여부를 내무성에 질의하였다. ------------------------------------------------------------------------------------------------ 3)『肅宗實錄』 권30, 숙종 22년 9월 25일(戊寅)條 4) 『肅宗實錄』권31, 숙종 23년 4월 13일(壬戌)條. 5) 參謀局의 朝鮮全圖 6) 일본해군성 수로국(1876), 「朝鮮東海岸圖」 내무성은 이에 대하여 약 5개월간에 걸쳐 시마네현에서 올라온 부속문서와 원록연간 안용복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교섭한 관계문서들을 모두 조사해 본 후, 죽도와 송도는 조선의 영토로 일본과는 관계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武藤平學는 송도개척지의(松島開拓之議)를 일본 외무성에 제출하자, 해군성이 1878년 4월과 9월 군함 天城丸을 파견, 송도의 실체에 대해 조사결과 송도가 조선의 ‘울릉도’로 판명되어 武藤平學의 송도개척지의(松島開拓之議) 각하되었다.   그런데 1877(고종 14) 3월 17일 내무성은 죽도(울릉도)외 1도(송도-독도)가 일본과 상관없지만, “판도의 취사는 중대한 사건”이라는 이유로 국가최고기관 太政官에게 질품서를 부속문서들과 함께 올려 최종결정을 요청하자, 3월 20일 일본국가최고기관인 太政官은 “품의한 취지의 竹島外一島의 件에 대하여 本邦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心得할 것”이라는 지령문을 작성. 3월 29일 내무성으로 지령문을 보냈고, 4월 9일 일본 내무성은 태정관의 지령문을 시마네현으로 보내 이 문제는 마무리 되었다.7)   1883년 4월 일본해군수로국 '환영수로지(寰瀛水路誌)'를 발간했는데 제2권 「조선국일반정세」에서 독도(リヤコ-ルト 列岩)를 소개함으로써,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스스로 밝혔다.8)       (10)  1900년에 고종황제 칙령 41호 반포   1882년(고종 19) 전석규(全錫奎)를 島長에 임명했고9), 1898년(대한제국 광무 2) 5월 30일 칙령 제12호(5월 26일)로 울릉도감(鬱陵島監) 설치를 반포했다. 10)   1900년 10월 27일 칙령 제 41호(10월 25일)를 반포하여 울릉도(鬱陵島)를 울도(鬱島)로 개칭하고, 도감(島監)을 군수(郡守)로 바꿈으로써, 강원도의 27번째 郡으로 지방관제(地方官制)에 편입됨. 칙령에 의하면 군청의 위치는 태하동(台霞洞)으로 하고, 울도군수(鬱島郡守)의 관할구역은 鬱陵全島와 竹島(댓섬), 石島(독도)로 한다고 하였다.       (11) 1905년 일본의 시마네현(島根縣) 고시 40호 날조   1904년(광무 8) 2월 10일 일본 러시아에 선전포고하고, 2월 23일 「제1차 韓日議定書」 강제조인. 이로써 일본은 러일전쟁을 위해 한국영토를 임의로 점령,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8월 22일 「제1차 --------------------------------------------------------------- 7) 公文錄 內務省之部 1. 8) 日本 海軍水路局(1883,4). 寰瀛水路誌 第2卷. 9) 承政院日記 高宗19年 8月 20日條, 備邊司謄錄, 高宗實錄 권19, 李奎遠의 鬱陵島檢察日記. 10 高宗實錄 권37, 官報 제962호 光武 2年 5月 30日. 한일협약」 강제조인. 일본 대한제국의 정부내에 재정과 외교고문을 설치하였다. 9월 1일 러시아함대의 감시를 위해 울릉도에 설치한 망루가 준공되고 9월 24일 독도에 망루설치가 가능한지 조사하기 위해 일본군함 新高가 울릉도를 출발. 新高號는 독도에 대해 “리앙꼬루도岩은 韓人은 이를 獨島라고 書하고 本邦 漁夫들은 양고島라고 호칭”하며, 망루설치가 가능하다는 보고했는데 9월 29일 일본 어민 中井養三郞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하고, 자신에게 빌려달라”는 「리앙꼬島領土編入並貸下願」을 외무성, 내무성, 농상무성에 제출했다.11)   1905년(광무 9) 1월 28일 일본 閣議에서 中井養三郞의 청원을 받아들이는 형식을 빌려 “독도는 주인없는 무인도(無主地)로서, 다케시마(竹島)라 칭하고 일본 島根縣 隱岐島司의 관할하에 둔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2월 22일 일본 소위 「시마네현(島根縣)고시 40호」를 날조하여 국제법상 無主地先占에 있어 ‘영토취득의 국가 의사’라는 요건을 모두 충족시켰다는 합법성를 가장하며 5월 17일 일본 독도를 官有地로서 시마네현 토지대장에 등재했다.       (12) 대한민국의 「인접해양 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   1952년 1월 18일 한국전쟁발발 후 일본어선의 맥아더 라인의 침범이 잦아짐에 따라 한국정부가 「인접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선언」(국무원 고시 제14호)을 공포 함(일명 평화선, 혹은 李라인). 그 범위는 북위 38도 동경 132도 50분까지로 독도를 기점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에 1월 28일 일본정부 평화선 선포에 항의함과 동시에 독도에 대한 한국 영유권을 부정하는 외교문서(구술서)를 보내 왔으나 2월 12일 한국정부, 일본정부의 1월 28일자 구술서를 반박하고 독도영유권을 재천명하는 구술서를 일본정부에 보냈다.   이후 한일간에는 독도에 관해 200여회의 외교문서가 교환되고 있으나 독도는 우리가 실효 지배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우리의 영토임이 확실하게 입증된다.        3.  울릉도(鬱陵島) 지명 연구     1) 울릉도 지명 자료   鬱陵島는 우리나라 옛 문헌 기록에 의하면 于山, 流山, 鬱陵, 亏陵, 于陵, 羽陵, 蔚陵, 武陵, 茂陵 등으로 표기되고 있다. 이들 지명들을 옛 문헌에 출현한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1) 官報 號外 光武 8年 3月 8日, 極秘明治三十七八年海戰史, 軍艦新高戰時日誌, 島根縣誌(1923), 隱岐島誌(1933), 軍艦對馬戰時日誌 연 대 명 칭 출 전 신 라 512(지증왕13) 于山   鬱陵     三國史記권4,신라본기4 512(智哲老王)   亏陵羽陵       三國遺事권1,奇異,智哲老王13 고 려 930(태조13)   于陵       高麗史권1,太祖世家1 1018(현종9) 于山         高麗史권4,현종세가1 1032(덕종1)   羽陵       高麗史권5,덕종세가 1141(인종19)     蔚陵     高麗史권17,仁宗世家3, 1157(의종11)   羽陵       高麗史권18,毅宗世家 2. 1243(고종30)     蔚陵     高麗史권129,列傳叛逆3,     蔚陵     高麗史권23,高宗世家2. 1273(원종14)     蔚陵     高麗史권27,元宗世家3, 1346충목왕2)   芋陵       高麗史권37,忠穆王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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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여행/레저
안정민 · http://www.itfocus.kr
  어느새 입추가 지났지만 여전히 무덥다. NHN여행박사가 8월 무더위를 피해 지금 떠나기 좋은 해외여행지 3곳을 소개한다. ◇대자연 여행의 끝판왕 ‘캐나다 밴프’ 한 여름에도 청량감 가득한 여행지를 찾는다면 캐나다 밴프가 있다. 캐나다 앨버타주에 위치한 밴프는 캐나다 로키 여행의 중심지이자, 캐나다 서부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해마다 여름이면 로키산맥의 짧은 여름을 만나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밴프를 찾는다. 밴프에서 로키산맥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로키의 관문 밴프 국립공원에서는 잘 정비된 트레일에서 하이킹과 사이클링, 승마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밴프 국립공원에 위치한 레이크 루이스는 영롱한 에메랄드빛을 띠는 호수로, 유네스코 선정 세계 10대 절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카누를 타고 호숫가와 어우러지는 운치 있는 로키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설퍼산 정산까지 이어지는 밴프 곤돌라는 가장 편하게 로키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다. ◇별빛 샤워하러 떠나는 ‘몽골’ 여름 휴가로 조금 특별한 여행지를 찾는다면 몽골은 어떨까. 바람과 별의 고향인 몽골은 가족과 함께 자연 속에서 힐링하고,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도 감상할 수 있는 낭만 여행지다. 몽골에서는 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사막인 고비사막을 볼 수 있다. 고비사막은 세계 3대 별 관측지로 별을 보기 좋은 곳이다.   유네스코 자연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테를지 국립공원에서는 말을 타고 푸른 초지를 달리거나 몽골 전통 숙소인 게르에서 숙박하는 등 몽골 유목민의 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   양고기와 야채를 달궈진 돌과 함께 냄비에 넣어 쪄내는 몽골의 전통 음식인 허르헉도 즐길 기회다. 몽골의 8월 날씨는 최저기온 8도, 최고기온 19도로 우리나라 초봄 날씨와 비슷하다. 9월이면 온도가 더 내려가 우리나라 초겨울 날씨를 보인다. 여름에도 겉옷은 필수다. ◇가장 가까운 유럽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우리나라에서 2시간 반 정도면 닿을 수 있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가장 가까운 유럽 여행이다. 한 여름 평균 기온이 20도 내외로 선선하여 지금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저렴한 물가, 킹크랩, 곰새우 등 풍부한 먹거리가 매력이다. 작은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는 주요 명소가 대부분 도보 이동이 가능한 시내에 있어서 자유여행을 해도 큰 부담이 없다.   주요 관광지로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블라디보스토크의 심장이라  불리는 혁명광장, 니콜라이 개선문과 꺼지지 않는 불꽃,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독수리 전망대, 유명 맛집과 카페가 많은 아르바트 거리 등이 있다. [자료제공:뉴스와이어](ITFOCUS ⓒ www.itfocus.kr)이 뉴스는 아이티포커스(www.itfocus.kr) 공유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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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화
김필중 기자 · http://www.areyou.co.kr
[아유경제=김필중 기자]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는 3ㆍ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오는 15일부터 12월 22일까지 국립등대박물관에서 `항일운동과 등대의 역사 특별전`을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일제 강점기, 광복, 6ㆍ25 전쟁 등을 거쳐 왔던 우리나라의 역사와 관련해 등대의 변화, 발전사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크게 5가지 주제로 구성돼 있다. ▲1876년 병자수호조약(강화도조약) 이후 개항과 등대 설치과정을 고문서와 함께 소개하는 `개항과 등대` ▲구한말 건립된 등대에 새겨진 황실문양(오얏꽃)과 태극문양을 통해 대한제국의 자주성을 살펴보는 `대한제국과 등대` ▲1909년 완도 당사도등대를 배경으로 일어난 소안도 주민의 의병활동 자료를 통해 선조들의 애국정신을 되새겨보는 `등대와 항일운동`을 살펴볼 수 있다. 이어 ▲신라 지증왕 13년(서기 512년) 이래로 이어온 독도의 영유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1954년 설치한 `독도등대 건립사` ▲광복과 6ㆍ25전쟁 이후 파손된 등대의 재건사업과 우리나라 항로표지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광복과 항로표지의 발전`에 대한 전시를 볼 수 있다. 전시기간 주말에는 선조들에게 보내는 등대엽서 만들기, 탁상등대 만들기 등 체험행사와 등대전문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마당 등 부대행사가 다채롭게 열릴 예정이다. 김민종 해수부 해사안전국장은 "광복절을 맞아 국립등대박물관에서 등대의 역사를 살펴보며 선조들이 지키고자 했던 자주정신의 가치를 되새겨 보고 국민 모두의 힘으로 이뤄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가져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AU경제(http://www.areyou.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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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김세곤 · http://edaynews.com
1478년 5월7일에  성종은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임금이 좌우에게 이르기를, "내가 일찍이 듣건대, 정숙공주가 일찍이 예종을 여의고 임사홍에게 의지하여 아버지로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임사홍이 엄형에 처해지니 슬퍼하고 있다고 들었다. 형장(刑杖)을 속(贖 형장 대신 돈을 바침)하려고 하는데, 어떻겠는가?" 하였다.   홍응이 아뢰었다.  "공주께서 슬퍼함은 진실로 가엾고 민망스러우나, 사형을 감한 것도 성상의 은혜가 지나치게 중한데, 형장을 가볍게 속(贖)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성종이 말하였다.   "경등이 법을 고집함은 진실로 아는 바이나, 공주가 본래 병이 있어서 이로 인하여 더해질까 두렵고, 또 공주의 일로 인해 삼전(三殿 세조 비 정희왕후, 덕종 비 소혜 왕후, 예종 비 안순왕후를 말함)께서도 애처로워하시니, 나 또한 마음을 잡을 수가 없다."   다시 홍응이 아뢰었다. "일시의 은정(恩情)은 이와 같을지라도, 인정으로 인해 법을 굽힐 수는 없습니다.“   이어서 도승지 손순효가 아뢰었다. "신이 임사홍과 더불어 일찍이 동료가 되었으나, 간사함이 이와 같은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임사홍은 바로 죄의 괴수입니다. 김맹성 등과 같은 두세 사람은 임사홍의 간사함을 알면서도 즉시 아뢰지 아니하였으니  진실로 죄가 있으나, 임사홍에 비하면 경중(輕重)이 있습니다." 이러자 성종이 물었다.   "누가 가볍고 누가 무겁다고 이르는가?"   손순효가 아뢰었다. "김맹성 등은 처음에는 박효원에게 속은 바가 되었다가 나중에 박효원의 간사한 꾀를 깨닫고 의논하여 반격하려고 하였으나 한때의 동료이기 때문에 마침내 중지하고 실행하지 못하였으니, 그 본래의 뜻은 임사홍과 같지 아니합니다."   성종이 말하였다. "그렇다. 과연 그런 것이 있었다."   이러자  홍응이 아뢰었다. "김맹성 등은 간관으로서 이미 간관의 도리를 잃었고, 또 성상 앞에서 바로 계달하지 않았으니, 죄 또한 작지 않습니다." 성종이 대꾸하였다. "죄가 없다고 하는 옳지 못하다." 다시  홍응이 아뢰었다. "이창신과 채수의 일은 증거가 없어서 실정을 알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성종이 말하였다. "이창신이 임사홍의 직려(直廬 승정원의 숙직하는 방)에 가서 어찌 말한 바가 없었겠는가? 전일에 대질하여 물을 때에 이 두 사람이 가장 말을 많이 하였으니, 혹시 이런 배척할 마음이 있어서 임사홍에게 말하고, 그 뜻을 엿보았을 것이다. 이것도 또한 간사한 것이다." (성종실록 1478년 5월7일  2번째 기사) 사진 1  선릉 (성종 임금의 능, 서울시 강남구 소재) 조금 있다가 대간이 합사(合司)하여 와서 아뢰기를, 임사홍의 죄를 감하여 준 것에 대해 부당성을 지적했다.   "임사홍 등의 죄를 특별히 명하여 사형을 감하셨는데, 신 등이 되풀이하여 생각건대, 임사홍은 대간에게 은밀히 사주(使嗾)하여 조정의 정사를 문란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전하를 속였으니 법대로 처단해도 오히려 남는 죄가 있습니다."   성종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내가 가볍게 논죄(論罪)했다고 하는가? 만약 내가 가볍게 논죄했다면, 내가 애초에 반드시 적발해 국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자광은 선왕조(先王朝) 때의 원훈(元勳)이므로, 결장(決杖)하는 것은 내가 또한 어려우며, 임사홍은 비록 공신은 아니지만, 그 아비 임원준이 또한 좌리 공신에 참여 하였다. 만약에 법대로 처단한다면, 전일에 삽혈동맹하기를, ‘영구히 죄를 용서한다.’고 한 뜻에 어긋남이 있다." 대사헌 유지 등이 다시 아뢰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호랑이를 기르면 스스로 근심을 남긴다.’고 하였으니, 임사홍 등을 비록 먼 지방에 귀양 보낸다 하더라도 다른 날에 다시 서용(敍用)할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청컨대 법대로 죄를 주소서."   성종은  "대간의 말을 다 믿을 수 있는가?"라고 전교하였다.   이러자 유지 등이 연거푸 아뢰었다. "지금 임사홍의 일은 개국이래로 없었던 것이니, 비록 다 베지는 못할지라도 청컨대 죄의 괴수를 베어서 그 나머지를 경계하면 뒤에 대간이 된 자가 자연히 경계하고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종은  들어주지 않았다. (성종실록 1478년 5월 7일 3번째 기사)      성종이 대간의 말을 들었다면 임사홍 유자광은 조선의 간신으로 역사에 안 남았을 것인데 정말 아쉽다. 이 날 정숙공주가 상언(上言)하여 그 시아버지인 임사홍의 형장(刑杖)을 속(贖)해 주기를 청하였다.   성종은 승정원에 전교하였다. "이 상언을 보건대 말이 매우 박절하니, 내가 임사홍의 결장(決杖)을 속(贖)하려고 한다."   이러자 어제 모여서 의논한 재상 한명회 등이 와서 아뢰었다. "사형을 감한 것도 족한데, 형장을 속(贖)할 수 없습니다.“   유지 등도  아뢰었다. "임사홍의 죄는 결코 가볍게 논할 수 없습니다."   이러자 성종이 전교하였다. "대신과 대간의 말이 진실로 옳으나, 다만 오늘 낮에 삼전(三殿)에 문안을 하였더니, 정숙 공주가 병든 몸으로 와서 통곡하고 삼전께서도 슬프게 눈물을 흘리셨다. 내가 법을 굽혀 은혜에 따르는 것은 부득이한 것이다. 또 유자광은 선왕조(先王朝) 때의 구신(舊臣)으로 일찍이 함께 삽혈 동맹하였는데, 종사(宗社)에 관계되지도 않는 일로써 하루아침에 형장(刑杖)을 가하는 것은 또한 의리에 옳지 못한 것이다.”   이러자  한명회가 아뢰었다. "청컨대 훈적(勳籍)에서 이름을 삭제하고 가산(家産)을 적몰(籍沒)하소서. 예로부터 훈적에 있으면서 귀양 간 자는 있지 않았습니다."   성종은 전교하였다. "김맹성과 김괴 등은 임사홍이 박효원에게 은밀히 사주한 것을 알고 서로 면책(面責)하였으며, 또 공박하여 다스리려고 하였는데, 마침내 그렇게 못한 것은 반드시 그 술책에 빠진 것이다. 형장을 속(贖)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한명회 등이 아뢰었다. "지금 임사홍 등은 사형을 감한 것도 족한데 또 형장을 속하면 너무 가볍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가산을 몰수하고, 훈적을 삭제하여 먼 지방에 귀양 보내소서. 또  죄의 괴수에게 형장을 속하면, 김맹성과 김괴도 마땅히 속해야 할 것입니다."   지평 강거효는 아뢰었다. "전하께서 공주의 일로 인해 특별히 임사홍의 형장을 속(贖)하시는 것은 그 허물을 아시면서 고의로 하시는 것입니다. 임사홍은 그만두고라도 그 나머지 유자광과 김언신·박효원은 법대로 처단하소서."   이러자 성종이 전교했다. "그들은 먼 지방에 귀양 보내고, 김맹성과 김괴는 형장을 속(贖)하라."   다시 한명회가 아뢰었다. "오늘 삭적하였다가 내일 다시 주는 것은 오직 성상의 재결에 달려 있습니다."   이어서 유지가 아뢰었다. "율문(律文)에, ‘공신을 삭적하고 가산을 적몰(籍沒)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전하께서 이미 사형을 감하시고, 또 형장을 속(贖)하시고, 또 처자를 종으로 삼는 것을 면제하셨으니, 그 나머지 조문(條文)은 율(律)대로 하소서."   이에 성종이 말하였다. "이는 반역이 아닌데, 어찌 가산을 적몰하는 데 이르겠는가? 또 율문(律文)에, ‘폐하여 서인(庶人)을 만든다.’는 문구도 없다. 그런데 정승들이 어찌 감히 옳지 못한 일로써 아뢰는가? 유자광을 공신적(功臣籍)에서 삭제하라.” (성종실록 1478년  5월7일 4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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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성 기자 · http://www.areyou.co.kr
[아유경제=박무성 기자] 문화재청이 `2019 창덕궁 달빛기행` 하반기 행사 개최를 위한 준비에 나섰다. 12일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나명하)와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은 오는 22일부터 10월 27일까지, 매주 목~일요일 `2019 창덕궁 달빛기행` 하반기 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2019 창덕궁 달빛기행`은 상반기 행사를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총 40회를 성공적으로 진행했고, 이번 하반기 행사는 오는 22일부터 10월 27일까지 총 60회가 예정됐다. 특히 이번 행사는 `달빛기행` 10주년을 맞이해 관람객들을 위해 `달빛비누(천연비누)`와 `창덕궁파우치`를 기념품으로 준비해 특별함을 더했다.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으며 일상생활에서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관람객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이 될 전망이다. 입장권은 오는 14일 오후 2시부터 옥션티켓에서 판매한다. 문화유산 보호와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회당 100명으로 참여인원을 제한하고 있으며, 사전예매로 참여할 수 있다. 내국인은 1인당 2매까지 예매할 수 있고, 매주 목ㆍ금ㆍ토요일에 관람할 수 있다. 만 65세 이상 어르신과 장애인, 국가유공자를 위해 총 10매(1인 2매 구매가능)는 전화예매를 병행한다. 외국인은 옥션티켓과 전화예매로 예매할 수 있으며, 매주 일요일에 관람할 수 있다. 2010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올해 10년째를 맞는 창덕궁 달빛기행은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에 모여 전통복식을 갖춰 입은 수문장과 기념촬영을 하며 입장한다. 해설사와 함께 청사초롱을 들고 어둠에 잠긴 창덕궁에 들어선 후에는 금천교를 건너 인정전과 낙선재, 연경당 등 여러 전각을 고루 둘러본다. 연경당에서는 전통차를 마시며 그림자극, 판소리, 전통무용 등의 다채로운 전통예술 공연을 즐길 수 있다. `2019 창덕궁 달빛기행`에 관한 더 자세한 문의는 한국문화재재단 누리집을 방문하거나 전화로 안내받을 수 있다. 조선 시대 왕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창덕궁은 조선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왕실 공간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우리 문화유산의 대표 활용 프로그램인 `창덕궁 달빛기행`을 통해 우리의 궁궐이 품격 있는 문화유산에서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AU경제(http://www.areyou.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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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있는 섬, 미래를 여는 섬’이라는 주제로 목포 삼학도 일원에서 열린 제1회 섬의 날 기념, 대한민국 썸 페스티벌이 15만 방문객을 불러모으며, 섬에 대한 뜨거운 관심 속에서 10일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섬의 날 행사는 지난해 8월 8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한 후 올해 처음으로 열렸다. 사람, 만남, 평화, 연결, 꿈, 자연, 행복, 미래 등 섬이 지닌 8가지 가치를 제시하고 미래 성장 동력으로서 섬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섬의 날 기념행사는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섬의 모든 것을 알리고 알기 위한 참여와 관심도 뜨거웠다.   국가 기념식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진영 행정안전부장관, 박지원・서삼석・윤소하・윤영일 국회의원, 전국 섬지역 시장․군수, 지방의원, 전국 53개 지자체, 기관, 단체와 103개 섬 주민이 대거 참여했다.   기념식에서 이낙연 총리는 그동안 전남도에서 지속적으로 건의해온 ‘국립 섬발전 연구기관’을 설립해 섬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고 공유할 계획임을 밝혔다.   전라남도는 섬 발전 분야 대통령 기관표창을,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은 국무총리 기관표창을, 글로벌 섬재단 곽유석 부이사장은 국민포장을 수상하는 등 전남지역 기관 단체에서 정부 포상을 대거 수상했다.   특히 전국의 섬 주민 400여 명이 유사 이래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섬에서의 삶의 애환과 성공스토리 등을 이야기하고 섬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섬 주민대회와 학술대회도 열렸다. 섬의 전통 문화 계승을 위해 섬 주민들이 참여하는 섬 민속 경연대회와 섬 특산품 홍보를 위한 경매 이벤트에선 행사 기간 모두 완판되는 성과를 거뒀다.   전국 어린이 그림대회・동요대회, 해양직업 체험관, 스타셰프 푸드쇼, 요트 체험, 유명가수가 출연하는 케이팝(K-pop)콘서트 등 부대행사는 어린이, 청소년이 대거 참여해 섬의 날 홍보에 톡톡히 기여했다.   김영록 전라남도지사는 “처음으로 열린 섬의 날 행사에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참여해준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전국에서 섬이 가장 많은 전남에서 섬 정책을 적극 추진해 가고 싶고 살고 싶은 섬으로 육성, 블루 이코노미를 실현해나가겠다”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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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문학행사
이지혜 · http://edaynews.com
울산 남구(구청장 김진규)는 12일부터 13일까지 이틀간 공동체창의지원네트워크 강연장에서 'VR 콘텐츠 허브 구축사업'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창업 아이디어톤'을 개최한다.   'VR 콘텐츠 허브 구축사업' 은 고용노동부의 지역산업맞춤형 일자리 창출공모사업으로 선정 ․ 추진 중인 사업으로 이번 대회는 그동안의 교육훈련 성과를 평가하고 창업지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아이디어톤이란 ‘아이디어’와 ‘마라톤’의 합성어로 최대 42시간동안 창의적인 사업 아이디어나 사업 모델제안서를 발표하는 방식의 경진대회다.   이번 경진대회에서는 VR 콘텐츠 허브 구축사업 중 창업기업 양성과정에 참여 중인 10명의 청년들이 1박 2일간 숙식을 함께 하면서 다양한 창업 아이디어를 공유해 사업모델제안서를 제작한다.   아이디어톤 과정에서 VR 콘텐츠와 창업지원 전문가를 초빙해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컨설팅과 멘토링도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제작된 사업모델제안서를 바탕으로 13일에는 6명의 우수 청년창업가를 선정해 총 7000만원 상당의 초기 창업지원금을 심사성적에 따라 차등지원 할 예정이다.   남구와 이번 사업의 수행기관인 공동체창의지원네트워크는 창업 아이디어톤 이후에도 청년창업기업에 대한 일대일 컨설팅 ․ 인큐베이팅 지원 ․ 사후관리 등을 통해 청년들이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김진규 남구청장은 “이번 대회가 청년들에게 미래 스타창업가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남구의 미래 주인공 세대인 청년들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창업생태계 조성 등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고민해 나가겠다”고 말했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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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 http://dsb.kr
미국 뉴욕의 대표급 라디오방송국 '케이라디오(KRADIO : AM1660)의 문학 프로그램 '김은자의 <詩쿵>(시즌 2)'을 소개합니다. 오늘 들으시는 방송은 '사랑하는 그대 이 세상에 온 것 행복입니다' 편입니다. ★ 방송듣기(클릭) http://www.am1660.com/kradio/board.php?bo_table=cinema&wr_id=111  방송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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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 http://dsb.kr
미국 뉴욕의 대표급 라디오방송국 '케이라디오(KRADIO : AM1660)의 문학 프로그램 '김은자의 <詩쿵>(시즌 2)'을 소개합니다. 오늘 들으시는 방송은 '개미도 파출소가 필요해' 편입니다. ★ 방송듣기(클릭) http://www.am1660.com/kradio/board.php?bo_table=cinema&wr_id=110  방송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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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 http://dsb.kr
미국 뉴욕의 대표급 라디오방송국 '케이라디오(KRADIO : AM1660)의 문학 프로그램 '김은자의 <詩쿵>(시즌 2)'을 소개합니다. 오늘 들으시는 방송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김용택 시인 편' 편입니다. ★ 방송듣기(클릭) http://www.am1660.com/kradio/board.php?bo_table=cinema&wr_id=109  방송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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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 http://dsb.kr
미국 뉴욕의 대표급 라디오방송국 '케이라디오(KRADIO : AM1660)의 문학 프로그램 '김은자의 <詩쿵>(시즌 2)'을 소개합니다. 오늘 들으시는 방송은 '쥐똥나무야 미안하다 공원에 나갔다가 반성문 한 장 쓰고 돌아왔다' 편입니다. ★ 방송듣기(클릭) http://www.am1660.com/kradio/board.php?bo_table=cinema&wr_id=108  방송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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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월 · http://dsb.kr
미국 뉴욕의 대표급 라디오방송국 '케이라디오(KRADIO : AM1660)의 문학 프로그램 '김은자의 <詩쿵>(시즌 2)'을 소개합니다. 오늘 들으시는 방송은 '염상섭의 '발가락이 닮았다' 창작비화' 편입니다. ★ 방송듣기(클릭) http://www.am1660.com/kradio/board.php?bo_table=cinema&wr_id=107  방송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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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의 · http://edaynews.com
전라남도국제농업박람회와 산림조합중앙회(회장 이석형), 함평군은 9일 농업기술원에서 각각 개최를 준비 중인 국제농업박람회, 대한민국산림문화박람회, 대한민국국향대전의 공동 홍보 및 관람객 유치 업무협약을 했다.   협약에 따라 세 기관은 농업과 산림 분야를 대표하는 국제농업박람회와 대한민국산림문화박람회, 지역 대표축제인 대한민국국향대전의 홍보, 홍보물 공동 제작, 관람객 유치 위한 상호 입장객 할인 혜택 등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상생 협력에 나선다.   세 행사가 농업과 산림, 화훼 산업을 대표하는 행사인데다 같은 시기에 전남 일원에서 개최되는 만큼 농가와 임가의 소득 창출과 농업과 산림 문화 향유를 통한 국민의 삶의 질 향상 등 상생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김성일 국제농업박람회 사무국 대표이사는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는 행사인 만큼 서로 힘을 합쳐 성공적 행사의 모범 사례가 되도록 하겠다”며 “앞으로도 전라남도와 산림조합중앙회, 함평군이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사업을 확대해 상호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라남도가 주최하고 전라남도국제농업박람회가 주관하는 국제농업박람회는 10월 17일부터 27일까지 11일간 나주에 위치한 농업기술원 일원에서 열린다.   산림청이 주최하고 산림조합중앙회, 전라남도, 장흥군이 공동 주관하는 대한민국산림문화박람회는 10월 11일 20일까지 장흥 수변광장 일원에서 개최된다.   함평군이 주최하고 함평축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국향대전은 10월 18일부터 11월 3일까지 17일간 함평엑스포공원 일원에서 펼쳐진다.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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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박고영준 · http://edaynews.com
한국사회의 권력은 극소수 대학의 출신들에 의해 독점되어 왔다. 입법, 사법, 행정, 경제계, 언론계, 학계 그리고 문화계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모든 공직에서 권력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극소수의 학벌집단에 의해 장악되어 온 것이다. 그럴 수 밖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직을 견제하고 감시할 정치계 또한 학벌집단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2019.8.9. 장관급 8명, 주미대사 등 3명의 직위를 교체하는 개각 인사를 단행했다. 이들 후보자 11명 중 SKY(서울대7명, 연세대2명, 고려대1명) 학사 출신이 무려 10명이었다. 나머지 1명은 국가보훈처의 또 다른 권력인 육사 출신이었다. 비단 이러한 독점현상은 장관 후보자에만 머물지 않고 지방선거・국회의원선거・대통령선거에도 비슷한 양상을 나타나고 있다.   장관 등 고위공직자의 특정학교 편중 문제는 공직자의 개인적 소양과 능력이 원인인 면도 있지만, 계급과 연공서열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 중심의 인사관리를 하겠다는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이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학벌・학연・지연 등 연고주의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특히 학벌문제를 근절해야 할 책무성을 지닌 이들 후보자(대학교수 등)의 출신학교가 얼마나 큰 보증수표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블라인드 면접을 도입하는 등 학력·학벌주의 관행 철폐’를 선거 당시 교육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오늘과 같이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특정 대학의 평판 인사가 단행되어 국민들을 실망시켰고, 이로 인해 블라인드 채용 및 지역인재 할당제 등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인사개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가 된다.   이처럼 장관 등 고위공직자 인사가 특정 대학에 집중될 경우 ‘학연에 의한 인사’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으므로, 청와대는 출신 대학과 무관하게 공정하고 공평한 인사가 될 수 있도록 엄격성을 기해야 할 것이다.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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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김종영 · http://edaynews.com
광주 남구(구청장 김병내)는 3‧1운동 100주년과 광복 제74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오는 15일 주월동 푸른길 공원에서 ‘친일‧항일 음악회’를 개최한다. ' 특히 일제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의 경제 보복에 따른 양국 간 갈등이 극에 달한 정국에서 음악을 통해 당시 일제가 행했던 친일파 양산과 역사 왜곡에 대한 이면을 파헤치고, 후손들에게 항일 정신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9일 남구에 따르면 오는 15일 오후 7시 30분부터 주월동 푸른길 공원 청로정 앞 공연장에서 ‘광복 제74주년 친일‧항일 음악회’가 열린다. 남구가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주관하는 이 음악회는 광복 72주년이었던 지난 2017년에 첫 선을 뵌 이후 2년 만에 다시 열리게 됐다. 이번 음악회는 지난 1910년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의 치욕적인 역사를 기억하고,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오늘날에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역사왜곡과 만행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90여분간 진행되는 이번 음악회에서는 우리가 즐겨 들으면서 불러왔던 동요와 대중가요, 가곡 가운데 친일 음악인이 만든 노래의 실태를 파악하고, 민족정신을 실천한 음악가들이 만든 노래를 만날 수 있다. 행사는 장애인 그룹 해와 달 밴드의 ‘둘이 타는 자전거’ 공연을 오프닝으로 일제 강점기에 불렀던 ‘애국가’, 친일 음악가인 조두남, 홍난파, 현제명씨가 만든 ‘선구자’, ‘희망의 아침’, ‘희망의 나라로’ 노래가 이어진다. 또 시 낭송가 김현서씨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띄운 편지를 낭송하고, 노래꾼 주하주씨가 무대에 올라 일제 강점기 시절의 대표적 항일 시(詩)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서시’를 노래로 선보인다. 이와 함께 서예가 서재경씨는 음악회에 참석한 관중들 앞에서 초대형 붓글씨 퍼포먼스를 펼칠 예정이다. 이밖에 미래 세대들에게 자랑스럽고 훌륭한 역사를 물려주기 위해 채동선 선생이 작곡한 ‘고향’과 최영섭 선생의 ‘그리운 금강산’, 정율성 선생의 ‘연안송’, 윤이상 선생의 ‘고풍의상’ 노래가 이어지며, 피날레는 참가자 모두가 ‘압록강 행진곡’과 ‘독립군가’를 함께 부르는 무대로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남구 관계자는 “우리가 부르던 노래 중에는 알게 모르게 친일 부역자가 만든 곡이 많다. 또한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항일 투쟁에 나선 음악가들이 있기에 이에 대한 실상을 재조명하고, 독립정신 계승에 기여하기 위해 이 음악회를 준비하게 됐다”고 밝혔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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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문학 > 칼럼
조강봉 · http://edaynews.com
2. 울릉도 ․ 독도 약사       1) 신라시대의 우산국정벌   『三國史記』에 의하면 鬱陵島는 于山國 또는 鬱陵島이라 하였는데 신라가 지증왕 13년(512)에 정벌하여 지배하였다.     “(지증왕)13년 6월 우산국이 귀복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기로 했다. 우산국은 명주(강릉)의 정동쪽 바다의 섬에 있었는데 혹 울릉도라고도 하였으며 땅 둘레는 백리이며 험준함을 믿고 (신라에) 귀복하지 않았다. 이찬 이사부가 하슬라주(현재 강릉지역)의 군주가 계략으로 나무로 된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함에 나누어 싣고, 우산국 해안에 도착한 후 속여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들을 풀어서 밟아 죽이게 할 것이라 하여 항복을 받았다       2) 고려시대       (1) 여진족 침입   『고려사』에 의하면  태조 13년(930)에 울릉도(芋陵島)에서 白吉, 土豆을 보내 方物을 바치므로 정위(正位)와 정조(正朝)의 벼슬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으니2) 이는 울릉도가 신라를 이어 고려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알 수 있고, 이어 현종 9년(1018)에는 于山國이 여진의 침구를 받아 폐농하게 되자 고려에서 농기구를 보내 돌보아3) 주었다. 또 현종 10년4)과 13년에는 여진족이 침입하자 고려에서는 울릉도 백성들은 본토로 피난케 하여 백성들을 돌보아 주었다5). 이후 여진족의 침입이 멎자 덕종 1년에 羽陵城主가 아들 夫於仍多郞을 보내 土物을 바침으로써6) 고려와의 관계를 복원하며 이후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되었다. ------------------------------------------------------------------------------- 2)『高麗史』' 권1 太祖世家 1. 3)『高麗史』 권4 顯宗世家1, 顯宗 9년 11월 丙寅條. 4)『高麗史』 권4 顯宗世家1, 顯宗 10년 7월條 5)『高麗史』 권4 顯宗世家2, 顯宗 13년 7월 丙子條. 6)『高麗史』 권5 德宗世家, 德宗 1년 11월 丙子條.         (2) 주민 쇄출〔空島化〕   울릉도의 환경는 열악하고 조정에서 멀어 관리가 어려우므로 주민들을 육지로 내보내는 쇄출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고려초에는 울릉도에 주민을 들여보내자는 의견이 있었기에 의종 11년(1157)에 羽陵島에 주민을 이주시키기 위하여 김유립을 들여보내 조사했으나, 암석이 많아 거주가 어렵다는 보고에 따라 의논을 중지하였으며9), 고종 30년(1243)7)에도 땅이 기름지고 진귀한 나무와 해산물이 많지만, 뱃길이 멀어 사람들의 왕래가 끊긴지 오래되어 파괴된 집터가 완연하지만 동쪽 군민들을 이주시켰다. 이후 바람과 파도의 험악하여 익사자가 속출하게 되자 주민 거주를 그만두게 했다10).   고종 33년(1246)에도 蔚陵島安撫使를 파견하였고9), 원종 14년(1273)에는 元이 大木을 요구하며 大木을 잘라 배에 싣고 갔기에 元에 허공(許珙)을 파견하여 벌목 요구를 중지 시켰으며, 우왕 5년(1379)에는 李子庸이 일본구주절도사 원료준에게 잡혀간 사람들 230여명을 데리고 돌아와 창검과 말을 바쳤기에 왜인을 무릉도(武陵島)에 보름간 머물다 돌아가게 했다.11)       3) 조선시대       (1) 대마도 수호의 울릉도 거주요청 불허     고려에 이어 조선에서도 울릉도에 거주하는 주민을 나오게 하는 쇄출정책이 실시되었다. 태종 3년(1403)에는 武陵島 거주민을 육지로 나오게 하였는데12) 이 때 울릉도에 우리 백성이 살지 않게 되자 태종 7년(1407)에 對馬島 守護 宗貞茂가 武陵島에 여러 부락을 거느리고 가서 옮겨 살고자 청원하였으나 불허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13)         (2) 울릉도 백성을 보살핌   태종 12년(1412)에는 강원도 관찰사가 流山國島 사람 백가물(百加勿) 등 12명을 통주 고성 간성에 나누어 살게 했으며14) 태종 16년(1416), 동왕 17년, 세종 1년, 세종 7년간에는 전만호 김인우를 武陵等處安撫使로로 임명하여 부역과 요역(徭役)을 피하기 위해 거주하는 사람들을 대려와 충청도 등에 옮겨 살게 했다. 15) -------------------------------------------------------------------------------------------------------------- 7)『高麗史』 권18 毅宗世家2, 毅宗 11년 5월 丙子條. 8)『高麗史』 권129 列傳. 9)『高麗史』 권23 高宗世家. 10)『高麗史』 권27 元宗世家 3, 권37. 忠穆王世家 11)李子庸還 自日本九州節度使源了俊 歸被虜人二百三十餘口 獻槍劒及馬 倭入 留半月而去.(『高麗史』 권134 叛逆6, 辛禑 1) 12)『太宗實錄』 권6, 太宗 3년. 13)『太宗實錄』 권13, 太宗 7년 3월 16일條. 14)『太宗實錄』 권23, 太宗 12년 4월 15일(己巳)條. 15)『太宗實錄』 권32, 『世宗實錄』 권29, 『世宗實錄』 권30,         (3) 요도(寥島) 찾기   조선 조정에는 동해 가운데 요도(寥島)가 있다거나 보았다는 보고가 잦았다. 조정에서는 세종 12년(1430)16), 세종 12년(1430)17), 세종 20년(1438)18), 세종 27년(1445)19), 성종 4(1473)20)등 수차례에 걸쳐 관리와 사람을 보내 요도(寥島)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했다21).   특히『세종실록』권109. 세종 27년조에는 세종이 요도를 찾으려한 연유가 백성을 걱정하는 애민정신에 있음이 잘 나타나 있다.22) -------------------------------------------------------------------------------------------------------------------------------- 16)奉常寺尹 이안경을 강원도에 보내어 요도(寥島)를 방문하게 하였다.(世宗實錄 권46, 世宗 11년 27월) 17)봉상시윤 李安敬이 요도(蓼島)를 방문하고 돌아오니, 함길도 감사에게 “과거 요도(蓼島)에 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나, 이 섬의 상황을 전부터 보고 들은 사람을 모두 찾게 하니, 함흥부 蒲靑社에 사는 김남련이란 사람이 일찍이 이 섬에 갔다가 돌아왔다고 하므로, 그 사람에게 역마를 주어 보내게 하되, 만약 늙고 병들었거든 이 섬의 생김새와 주민들의 생활은 어려운지 넉넉한지, 의복 언어 음식 등의 사정은 어떠한지 그 사람에게 자세히 물어서 아뢰라” 하였다.(『世宗實錄』 권48, 世宗 12년 1월 26일). 18)강원도 감사에게 전지하기를,"무릉도(茂陵島)는 본래 사람이 살던 곳이며, 옛날부터 왕래하던 땅이다. 그러나 근일에 사람을 파견하여 큰 바다를 건너게 하고서는, 오히려 그 험난함을 두려워하여 주야로 이를 우려하여 왔다. 하물며, 이 요도(蓼島)는 비록 모처에 있다고는 일컬어 왔으나, 본시 내왕하는 자가 없었으니, 내가 이미 쇠로한 나이에 감히 그의 탐방을 바라겠는가. 다만 본 섬이 양양(襄陽) 동쪽에 있다고만 일컬어 왔을 뿐이니, 어느 곳에 있다는 사실만은 불가불 알아야 할 것이다. 경은 마땅히 다시 이를 탐문하여 계달하라."하였다.(『世宗實錄』권82, 世宗 20년 7월 26일(戊申)條) 19) 세종 27년(1445)에도 왕은 “세상에 전하기를, 동해 가운데에 요도(蓼島)가 있다고 한 지가 오래고 또 그 산의 모양을 보았다는 자도 많다. 내가 두 번이나 관원을 보내어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世宗實錄』권109, 世宗 27년 8월 17일(戊午)條) 20)성종 4(1473)년에도 요도에 대하여 조사 한 기록이 있다.『世宗實錄』 권109, 世宗 27년 8월 17일(戊午)條 21)당시 먼 바다로의 항해는 조류에 의지했기 때문에 조류가 바뀌거나 풍향이 바뀌어 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망망대해에서 방향감각을 잃게 되므로 이런 때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섬을 보고서 이 섬이 울릉도인지 모르고 이를 다른 섬으로 인식하여 요도(寥島)를 보았다고 제보한 데에 원인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22)“내가 이 섬을 찾는 것은 토지를 넓히자는 것이 아니고 또 그 백성을 얻어서 부리자는 것도 아니다. 의뢰할 데 없는 무리가 바다 가운데에 모여 살아서 창고와 식량의 준비가 없으니, 한번 흉년을 만나면 반드시 굶어 죽게 될 것이다. 그것을 누가 구제 하겠는가”         (4) 三峯島 찾기   한편 요도(寥島)와 별도로 강원도 지경에 삼봉도(三峯島)라는 섬이 있다는 제보가 이어져 삼봉도를 찾기 시작했다. 성종 2년(1471)23), 성종 3년(1472)24), 성종 4년(1473)25), 성종 7년(1476)26), 성종 10년27), 숙종 19년28), 등 수차에 걸쳐 관원을 파견했으나 실패했다.    三峯島를 보았다는 것은 아마도 울릉도(독도)를 보고서 이를 잘못 생각하여 울릉도나 독도와는 별개의 섬이라고 착각하여 삼봉도라는 이름으로 보고함으로써 생긴 일이라 생각한다.         (5)  주민쇄출 ․ 수토정책   울릉도의 空島化 정책은 고려에 이은 정책이다. 태종 16년(1416) 武陵 거주민을 쇄환하기 위하여 前萬戶 김인우를 武陵等處 安撫使로 임명하여 왕 17년 2월에 于山島에 파견하여 토산물과 주민 3명을 데리고 돌아온 후 于山武陵에 주민 거주를 금하고 거주민을 쇄출(刷出)하는 수토정책(搜討政策)이 실시되었다29). ----------------------------------------------------------------------------------------------------------------------------- 23)于山島 鬱陵島 武陵, 羽陵이라고도 한다. 두 섬은 (울진)현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세봉우리가 높이 솟아 하늘에 닿았는데, 남쪽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진다.-중략-성종 2년(1471) 별도로 三峯島가 있다고 아뢰는 자가 있어 이에 박종원(朴宗元)을 파견하여 살펴보게 하였다. 바람과 파도로 정박하지 못하고 귀환하였는데, 동행한 한척은 울릉도에 정박하여 단지 큰 대나무와 전복을 취하였을 뿐이며, 돌아와 보고하기를 “섬 가운데에는 거주민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新增東國輿地勝覽』권45, 江原道 蔚珍縣 山川條) 24)①『조선왕조실록』성종 3(1472)년 3월조에 “삼봉도는 우리 강원도 지경에 있는데, 토지가 비옥하고 백성들이 많이 가서 거주하기 때문에 세종조 때부터 사람을 보내어 이를 찾았으나 얻지 못하였다. 어떻게 하면 그 땅을 얻어서 거민(居民)을 많게 할 수 있겠는가” 하여 대책을 올리게 하였다.(『成宗實錄』 권16, 成宗 3년 3월 6일條) 25)② 성종 3년 三峯島 경차관 박종원에게 삼봉도는 바닷길이 험악해서 부역과 조세를 도피한 자가 몰래 들어가서 살 것이므로 가서 잡게 한다는 교지를 내렸기에 朴宗元 곽영강 등이-중략-무릉도에 머물러 섬을 수색하였으나 사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다만 옛 집터만 있었으며 다만 섬에 대[竹]가 있는데 그 크기가 이상하여 數竿을 베어 돌아왔다 하였다.(『成宗實錄』 권19, 成宗 3년 6월 12일條) 26) ⑤ 성종 7년(1476) 김한경 등이 삼봉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하므로, 9월 김자주가 삼봉도에는 닿지 못하고 다만 그 형상을 그려왔다. 조정에서는 영안도 관찰사 정난종에게 三峯島와 요도에 대해서 조사케 했다.(『成宗實錄』 권76, 成宗 7년 10월 27일條) 27)성종 10년(1479) 영안도 경차관 조위가 김한경, 김자주 등 21명을 10월 27일 삼봉도로 들여보냈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成宗實錄』 권110, 成宗 10년 윤10월 6일條) 28)“대체로 울산의 고기잡이 하는 사람이 해변에서 표류하여 울릉도에 이르렀는데, 섬 위에는 세 봉우리가, 하늘에 닿아 있다”(『肅宗實錄』 권25, 숙종 19년 11월 18일條) 29)『太宗實錄』 권32, 33, 34.    이후 세종 18년 于山 ․ 武陵에는 산물이 많고 배를 정박할 수 있다하여 인민을 모집하여 채우고 萬戶와 首領을 두거나 郡縣․邑을 설치하여 주민이 살 수 있게 하자는 진언이 있었으나 조정에서 의논한 결과 불허되었으며, 세종 20년에는 무릉도에 도피한 자를 포획하여 본도에 살게 했다.   세조 3년에는 전 중추원 부사 류수강이 牛山島와 茂陵島에 읍을 설치할 만하다고 진언했으나 두 섬은 水路가 험하고 멀어 왕래가 어려운 孤島이므로 읍을 설치하면 지키기도 어렵고 인민이 두 섬에 방랑하여 우거할 폐단이 있다하여 朝官을 보내 쇄환(刷還)30)케했고31), 숙종 20년에도 성초형이 울릉도에 진을 설치하자 하였으나 시행되지 않음으로써32) 空島化 정책이 유지되었다.   이러한 주민 쇄출 정책은 일본이 明治 정부 수립 후 대외팽창 정책을 실시함에 따라 울릉도에 일본인의 잠입이 많아지자 수토정책을 폐기하고 주민 이주정책과 개발정책으로 바꾸어 전석규를 鬱陵島 島長으로 임명하여 다스리다 1895년 島長을 島監으로 개칭하였고 1900년 10월에는 鬱陵島를 鬱島로 개칭하고 島監을 郡守로 개정하는 안을 의정부회의에 제출 의결하고 황제의 제가를 얻어 勅令41호로 관보에 게재 발표 했다.  ---------------------------------------------------------------------------------------------- 30) 1 조선 시대에, 외국에서 유랑하는 동포를 데리고 돌아오던 일.   2 도망한 노비를 찾아서 주인에게 돌려보내던 일. 31)一云于山武陵本二島 (『世祖實錄』 권7, 世祖 3년 4월 16일(己酉)條) 32)『肅宗實錄』 권25, 숙종 20년 7월 16일(壬午)條.   (6)  안용복 渡日 사건            ① 1차 渡日    숙종 19년(1693) 봄에는 울산의 어부 안룡복 등 40여 명이 울릉도에 배를 대었는데, 왜인의 배가 마침 이르러, 박어둔, 안룡복 등 12인을 꾀어내 잡아갔다. 그 해 겨울에 대마도에서는 우리 조정에 正官 귤진중을 파견하여 박어둔 등을 보내며, 우리나라 사람이 竹島에 고기잡는 것을 금하기를 청하였는데 그 서신에 이르기를,     "귀역의 바닷가에 고기잡는 백성들이 해마다 본국의 죽도에 배를 타고 왔으므로, 土官이 국금(國禁)을 상세히 알려 주고서 다시 와서는 안된다는 것을 굳이 알렸는데도, 올봄에 어민 40여 명이 죽도에 들어와서 난잡하게 고기를 잡으므로, 토관이 그 2인을 잡아두고서 한때의 증질(證質:증거와 인질)로 삼으려고 했는데, 본국에서 번주목(幡州牧)이 동도(東都)에 빨리 사실을 알림으로 인하여, 어민을 폐읍(弊邑)에 맡겨서 고향에 돌려보내도록 했으니, 지금부터는 저 섬에 결단코 배를 용납하지 못하게 하고 더욱 禁制를 보존하여 두 나라의 교의(交誼)로 하여금 틈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십시오."하였다. 예조에서 회답하는 서신에 이르기를,"폐방(弊邦)에서 어민을 금지 단속하여 외양(外洋)에 나가지 못하도록 했으니 비록 우리 나라의 울릉도일지라도 또한 아득히 멀리 있는 이유로 마음대로 왕래하지 못하게 했는데, 하물며 그 밖의 섬이겠습니까? 지금 이 어선이 감히 귀경(貴境)의 죽도에 들어가서 번거롭게 거느려 보내도록 하고, 멀리서 서신으로 알리게 되었으니, 이웃 나라와 교제하는 정의는 실로 기쁘게 느끼는 바입니다. -중략- 이후에는 연해 등지에 과조(科條)를 엄하게 제정하여 이를 신칙하도록 할 것이오." 라 하였다.    귤진중이 우리나라의 회답하는 서신을 보고 서신 중에 '우리나라의 울릉도'라는 말을 보고는 매우 싫어하여 통역관에게 이르기를, "서계에 다만 죽도(竹島)라고만 말하면 좋을 것인데, 반드시 울릉도를 들어 말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하면서, 이내 여러 번 산개(刪改)하기를 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숙종 20년(1694) 8월 대마도의 왜사 귤진중이 2월에 받아간 회답서계를 가지고 와서 “우리나라 울릉도”라는 문구의 삭제를 다시 요청하자 조정에서는 일본의 간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로 하여 왜사를 꾸짖고 ‘울릉도와 죽도는 하나의 섬에 붙여진 두 이름이며, 울릉도는 조선의 영토’라는 내용의 2차 회서를 전달하여 울릉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울릉도에 정기적으로 수토관(搜討官)을 파견하기로 하였다.33) ----------------------------------------------------------------------------- 33)『肅宗實錄』 권27, 邊例集要 권17 雜條 附 鬱陵島, 蔚陵島事蹟.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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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공연/전시
강하늘아름 · http://edaynews.com
인천 서구(구청장 이재현)와 인천서구문화재단(대표이사 이종원)이 공동 주관하는 2019년도 ‘제2회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이 8월 30일부터 9월 8일까지 검단 능내체육공원, 청라호수공원, 서구문화회관, 엘림아트센터 등 인천 서구 전역에서 펼쳐진다.   정서진 피크닉 클래식은 지난 해 인천에서 처음 선보인 클래식 축제로 구민에게 잊지 못할 추억과 감동을 남겼다. 올해도 국내외 최정상급 연주자들과 남녀노소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뜻깊은 추억을 선사하고자 풍성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피크닉 클래식 시리즈”    온 가족이 피크닉을 즐기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피크닉 클래식 시리즈는 검단 능내체육공원, 청라호수공원, 서구문화회관에서 모두 무료로 진행된다.    8월 31일(토) 저녁7시 검단 능내체육공원에서 열리는 개막식에는 레너드 버스타인에게 수학하고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세계적인 지휘자 ‘지안 루이기 잔피에리(Gian Luigi Zampieri)’가 참여한다.    또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로 대중들에게 친숙한 대한민국 대표 바리톤 ‘김동규’, 다양한 오페라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메조소라노 ‘김순희’가 함께 오페라 카르멘의 ‘투우사의 노래’, ‘사랑은 제멋대로인 한 마리 새’ 등을 함께 부르며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9월 6일(금) 저녁7시30분 청라호수공원 야외음악당에서 뮤지컬 ‘엑스칼리버’, ‘엘리자벳’, ‘명성황후’ 등 주연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 배우 손준호, 루마니아 크라이 오바 오케스트라 명예 연주자 팬플루리스트 안드레라 키라(Andreea Chira)가 참여하며, 뮤즈 윈드 오케스트라(지휘 김동수)와 서구립합창단의 합동무대가 펼쳐진다.   9월 7일(토) 저녁7시 청라호수공원 야외음악당에서는 미래의 음악가들과 전문연주자들의 만남으로 무대를 꽉 채운다. 뮤지컬 ‘파리넬리’의 OST에 참여한 카운트 테너 루이스 초이가 인천 청소년 연합 오케스트라와 함께 헨델의 울게 하소서, 이탈리아 거리의 노래 등을 연주하며 인천신포니에타와 오보이스트 임유빈, 소프라노 양지, 크로스오버 앙상블 인치엘로의 무대도 만나볼 수 있다.   10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정서진 피날레 콘서트는 9월 8일(일) 오후5시 서구문화회관에서 펼쳐진다. 세계 유수의 성악가들과 왕성한 협연을 하며 최근 영역을 확대하여 MBC 드라마 ‘주몽’의 주제곡 녹음에 참여한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박상현), 2017년 한국 음악대상 수상, 2016년 예술의전당 예술대상을 수상한 보이스 오케스트라 이마에스트리가 참여해 10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 한다. 폐막공연은 사전 예약자에 한해 무료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 또 다른 감동, 실내악 공연 “체임버 음악회 시리즈”    오케스트라 공연과는 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실내악 공연 체임버 음악회 시리즈는 8월 30일, 9월 3일, 4일, 5일 저녁7시30분에 엘림아트센터에서 펼쳐진다.    8월 30일(금)에는 “작곡가 김효근의 아트팝”을 선보인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예술경영대학원장이자 제1회 대학가곡제 대상을 수상하고 ‘내 영혼 바람되어’, 김효근 연가곡집 ‘사랑해’ 등 다수의 작곡 앨범을 발간해, 보편적인 사람의 감성을 가곡 속에 녹여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보여주며 한국 현대 가곡을 이끌어가고 있는 작곡가 김효근의 곡으로 꾸며진다. 소프라노 김순영, 테너 김승직, 앙상블 퀸에버(QuineveR)도 함께한다.    9월 3일(화) 두 번째 공연은 친철한 해설이 함께하는 김상진의 클래식 포 유 공연이 펼쳐진다.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의 해설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상진의 해설과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첼리스트 김민지, 아코디어니스트 알렉산더 셰이킨(Alexander Sheykin)이 함께한다.   9월 4일(수)에는 세계 3대 콩쿠르로 손꼽히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수상자들의 연주도 만나 볼 수 있다. 2019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1위, 2위를 차지한 바이올리니스트 스텔라 첸(Stella Chen), 티모시 추이(Timothy Chooi)과 함께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의 공식 피아니스트인 Liebrecht Vanbeckevoort(리브레히트 반베케부르트)가 출연해 젊은 아티스트들의 힘을 보여 줄 예정이다.   9월 5일(목) 마지막으로 따뜻한 감성과 판타지, 아이디어가 넘치는 연주로 청중을 사로잡는다는 평을 받는 최고의 피아니스트 김정원의 피아노 스토리가 펼쳐진다. 상호명:(주) 이데이뉴스 | 제호: 이데뉴스닷컴 | 사업자번호 : 409-86-29149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 4-9번지 2층 / 북구 금재로75번길 21. 2층(북동) 등록번호: 광주 아-00144 | 등록일: 2005년 10월 4일 | 발행인/편집인: 강대의(010-4192-5182)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대의 (010-4192-5182) | 제보 및 각종문의 : (062)673-0419(代) | FAX : (062)456-5181 Copyright(c) 2016 :::이데이뉴스닷컴:::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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